제국의 발명품, 화약과 반도체 전쟁의 승자는?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갖고 있는 반도체 기술이 충돌 대상이다. 미국은 '반도체'를 무기로 중국 성장을 견제하고 있다.
세계를 지배하는 두 거대 제국의 충돌은 세계 시장의 판도도 한순간에 바꿔놓을 수 있다.
20세기 이전의 최고의 발명품인 화약, 종이, 나침반, 인쇄기술 등을 만든 중국이,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인 반도체를 만든 미국과 21세기 전세계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화상회의에 참석해 "반도체는 모두의 인프라"라며 미국 반도체 재건을 선언했다.
중국은 지식의 축적수단이었던 종이와 이 종이로 지식과 데이터를 전수할 수 있도록 한 인쇄술, 이를 전세계로 퍼나를 수 있는 대항해 시대의 핵심 기술인 나침반을 1000여년전에 발명해 세계의 변화를 이끌었다. 특히 화약은 칼과 창, 화살 등 인력에 의존하던 무기체계를 과학의 힘으로 한순간에 바꿔놓은 발명품이다.
화약은 총과 대포 등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무기의 기초소재로서 세상의 변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중국 발명의 한계는 거기까지였다.
이런 훌륭한 발명품에도 불구하고, 주변과 소통하고 아우르는 협력이 아닌 '중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에 매몰돼 더 높은 단계로의 발전을 하지 못했다.
외부 문물을 받아들이기보다는 다른 문화를 오랑캐 문화로 인식하고 낮게 본 것이 중국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근대화가 늦은 결정적 이유다.
등샤오핑 주석의 '흑묘백묘론'을 기반으로 시장경제를 받아들이고 개혁개방에 나선 후에도 값싼 제조업 공장으로서의 중국에 머물렀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중국이 칭화대 출신의 시진핑 주석 체제 이후 과학기술에 힘을 쏟으면서 21세기 산업의 쌀인 반도체 투자에 올인(반도체굴기)하자 미국이 긴장한 것이다.
중국과 달리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은 1776년 건국 이래 도전적이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했다. 외부의 우수인재들을 적극 영업해 과학문명을 진화시켰다. 그 과정에서 1948년 AT&T 벨랩에서 진공관을 대체하는 트랜지스터를 발명함으로써 '반도체 시대'를 열었다.
반도체는 중국 채륜이 발명한 종이도, 인쇄술도 나침반도 무의미한 것으로 만드는 시대를 이끌었다. 종이는 디스플레이와 메모리로 대체되고, 반도체의 총아인 스마트폰은 나침반 역할을 물론 모든 지도 정보를 담아 세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시대를 만들었다.
화약으로는 할 수 없는 정밀타격을 가능하게 하는 신무기들은 반도체가 없이는 구동자체가 불가능한 시대가 됐다. 20세기 미국에서의 발명은 20세기 이전의 중국의 많은 발명품을 밀어내고 세계 패권의 핵심 키 역할을 하고 있다.
석기와 청동기, 철기시대에 이은 '실리콘(Si)시대'엔 반도체를 쥐는 나라가 세계의 패권을 쥐는 시대다.
최근 선례만 보더라도 일부 자동차용 반도체의 생산 차질은 전세계 생산시스템의 마비를 가져왔다. 모든 자동차는 전기를 기반으로 하는 자동차로 바뀌어가고 있고, 모든 무기의 첨단화도 반도체에 기반을 두고 있다. AI(인공지능) 등 4차 산업혁명기에 반도체는 없어서는 안될 '전략무기'다.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에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중국 견제의 무기로 첨단 반도체 장비와 소재를 활용하는 것도 실리콘시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시작된 반도체 산업은 1980년대 미국과 일본의 반도체 특허전쟁을 틈 타 1990년대 한국과 대만에게 기회가 왔고, 우리나라는 이를 잘 활용해 1993년경부터 30년 가까이 반도체 강국의 위상을 이어오고 있다. 2010년대부터는 중국이 반도체굴기에 나선 상황에서 미국이 주도권을 넘기지 않기 위해 견제에 나선 것이다.
중국이 화약, 미국이 반도체라는 발명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라는 인쇄술이 있었다.
고려 때 상정고금예문과 직지심체요절 등 금속활자를 만든 우리 선조들의 기술이 오늘날 한국의 세계 최고 반도체 설계 및 회로 기술에 녹아 있다. 금속활자를 깎고(식각), 요철 부분에 먹을 입히고(포토레지스터), 이를 종이 위에 찍어내는(마스크와 노광) 것이 어쩌면 반도체의 미세회로 공정과 대량생산 체제와도 유사하다.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이 일본이나 대만, 중국, 미국, 독일 기업을 앞서는 이유도 오래 전 우리나라의 최고 발명품인 금속활자에서 그 DNA를 찾을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그 DNA는 미국 벨랩에서 1960년 세계 최초로 금속 산화막 반도체 전계효과 트랜지스터(MOS-FET)를 개발해 현재 반도체의 대량 양산시대를 연 고 강대원 박사와, 1960년대 미국과 소련의 핵 경쟁 속에서 미국이 핵공격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고 한국 최초의 반도체 전공정 공장인 한국반도체를 부천에 설립한 강기동 박사 등으로 이어졌다. 이들의 반도체 설계기술과 제조기술이 한국 반도체 산업의 씨앗이 됐다.
12일 바이든 정부가 삼성전자를 불러 미국에 반도체 투자를 요청하고, 앞서 지난 11일에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분쟁을 조정한 이유는 'K-테크놀러지'에 대한 필요성 때문이다.
중국 정부도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등 국내 기업을 자국에 유치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경주했다. 그리고 기술이 확보되면 여지없이 '토사구팽'하는 모습을 보였다. 배터리의 경우도 자국 배터리 업체 제품을 쓰는 전기자동차에는 보조금을 지급하고, 한국 배터리를 탑재하는 전기차는 보조금 대상에 제외함으로 자국 산업육성에 나섰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이 시점에서 우리 정부는 미국과 중국의 양강 사이에서 '대한민국 우선 정책'을 바로 세워야 한다. 누구도 우리를 가여워하거나 도와주지 않는다. 스스로 생존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기업과 기업가를 제대로 대우하고 K-테크놀러지 편대를 잘 갖춰 세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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