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차량 아파트 출입금지' 이곳은 주민들이 해결했다

고희진 기자 2021. 4. 13.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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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택배 노동자가 아파트 입주민들이 마련한 전동 카트에 물품을 싣고 있다. 지상 차량 출입을 금지하는 이 아파트는 대형 택배차량이 지하 주차장으로 진입할 수 없자 소형 전동 카트를 구매해 이용할 수 있게 했다. 독자 제공
갑질·떠넘기지 않고 대화 협의
카트 관련 비용, 아파트서 부담

12개동 656가구 규모인 세종시 호려울마을 10단지 아파트는 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하는 공원형 아파트다. 택배차량의 지상 출입을 금지해 택배노동자들이 ‘배송 불가’를 선언한 서울 강동구 고덕동 아파트와 같은 구조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민과 택배기사들 사이에 분쟁은 없다. 입주민과 택배노동자들이 대화한 끝에 해법을 찾았기 때문이다. 단지에는 주민들이 택배노동자를 위해 구매한 전동카트 두 대가 놓였다. 주차장 출입이 어려운 대형 택배차량은 아파트 입구에서 전동카트에 물건을 옮겨 배달하는 것으로 양측이 합의한 것이다.

처음부터 갈등이 없었던 건 아니다. 이 단지에 입주가 시작된 것은 2016년. 다른 아파트처럼 택배차량의 지상 진입을 무조건 금지하려고 했다. 택배사가 반발하자 입주자대표회의가 택배노동자들을 소집해 협의를 시작했다. 주민들이 택배노동자를 대화 상대로 인정하고 해결책을 모색하자 이들도 화답했다. 당시 상황을 지켜본 한 택배노동자는 “아파트 측이 택배기사들을 존중한 것이라 의미가 있었다”고 말했다.

협의 결과 소형 차량은 지하 주차장을 이용하고 주차장 출입이 어려운 대형 차량은 전동카트에 물건을 옮겨 배달하기로 했다. 골프장 등에서 사용하는 전동카트는 한 대에 1000만원이 넘었다. 두 대 모두 아파트에서 적립해 놓은 돈으로 구매했다. 1년에 200만~300만원에 달하는 카트 충전 및 바퀴 등 소모품 수리 비용, 50만원 정도 되는 자동차보험료도 아파트에서 부담하기로 했다. 택배노동자도 차량에서 물품을 꺼내 카트로 옮겨 실어야 하는 불편함이 있지만 이를 받아들였다. 처음엔 사용을 꺼렸던 택배기사들도 지금은 자연스럽게 카트를 이용한다고 한다.

입주민 A씨는 13일 “비가 올 경우에 물건을 옮겨 싣는 과정에 물품이 젖을 수 있어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동대표들이 고민 중”이라며 “모두가 100% 만족하는 방안이 아니더라도 약자에게 비용을 전가하지 않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해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파트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주민들이 지상으로 차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택배를 받는 데는 문제가 없으니 만족해한다”며 “주변 아파트에서도 이 방식에 관심을 보여 문의해온다. 다만 비용 문제로 고민하는 것 같다”고 했다.

택배노동자들도 만족하는 표정이다. 아파트 구조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노동자에게 떠넘기지 않고 주민들이 함께 풀려고 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아파트에 배송을 하는 택배노동자 B씨는 “주민과의 분쟁 없이 배송을 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말했다. 택배노조 관계자는 “우리가 ‘갑질’이라 주장하는 것은 입주자대표회의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 노동자에게 책임을 다 전가하는 행위”라며 “내용이 좋건 나쁘건 노동자와 협의해서 방안을 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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