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 양성소 'ENA' 폐지 찬반론 불붙은 프랑스
[경향신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국립행정학교(ENA) 폐지 결정을 두고 찬반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상류층의 고위공직 독점을 막는다는 취지로 폐지론을 꺼내들었지만, “보여주기식 정책일뿐 본질적인 해결책은 아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8일(현지시간) 고위 공무원 회의에서 “다양성 확보를 위해 2022년에 ENA를 폐지하고 공공서비스연구소(ISP)라는 새로운 기관을 세우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ENA의 입학 전형과 교육 과정을 쇄신해 다양한 계층의 학생이 ISP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ENA는 1945년 샤를 드골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설립된 고위 공직자 전문 양성 기관이다. 드골 대통령은 “신분, 배경과 상관 없이 모두가 고위 공무원으로 자라날 수 있는 등용문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ENA를 만들었다. ENA는 마크롱 대통령을 비롯해 발레리 지스카르 데스탱, 자크 시라크, 프랑수아 올랑드 등 전후 8명의 제5공화국 대통령 중 4명이 이 학교 출신이다. 9명의 총리도 배출했다.
하지만 ENA는 상류층이 ‘그들만의 세상’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아왔고 이는 폐지론으로 이어졌다. 특히 1년에 80명 내외만을 뽑는 환경에서 입학 경쟁이 치열해지며 문제가 생겼다. 고액의 사교육을 통해 까다로운 입학시험과 면접을 미리 준비할 수 있는 학생들만이 입학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조사에 따르면 1950년대 부모가 고위 공직자나 기업 임원인 상류층 집안 출신의 입학생은 약 45%였지만, 1960년대 약 60%, 2005년~2014년에는 약 70%로 그 비율이 점점 늘었다.
고위 공직을 ENA 출신이 독차지한다는 문제도 발생했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ENA 동문인 올랑드 전 대통령에 의해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발탁되며 정계에 발을 처음 내딛었고, 2년 후 37세로 최연소 경제산업부 장관이 됐다. ENA와 군주(monarch)를 합친 ‘에나크(Enarque)’라고 일컬어지는 ENA 동문들은 공직 진출 이후 기업의 사외이사도 도맡아 프랑스 정·재계를 쥐락펴락 하고 있다.
ENA 폐지에 대한 비판도 제기된다. ‘노란조끼 시위’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는 마크롱 대통령의 보여주기식 정책이며 프랑스 사회의 계층 이동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8~2019년 유류세 인상과 사회·경제 불평등에 분노한 시민들이 일으킨 ‘노란조끼’ 시위가 일어난 직후 ENA 폐지론을 꺼내들었다. 프랑스 경제·사회·환경위원회 위원으로 있는 다니엘 켈러 ENA 동문회장은 “ENA를 폐지한다고 나라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며 “마크롱은 선거 혜택을 얻기 위해 이를 이용하고 있다”고 르몽드에 말했다.
[관련기사] 프랑스 ‘노란 조끼’ 시위…“마크롱 퇴진” 구호까지
프랑스 언론 NPA의 기자 사이먼 데레로프는 “ISP가 고위 공직자를 양성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 한 이 기관은 부르주아의 자녀들의 사회·문화적 자본을 재생산시키는 역할을 똑같이 수행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노란조끼 시위에 참가한 중·고등학생들은 프랑스 전반적인 입시제도와 교육 개혁을 요구했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는 ENA 폐지만 추진하고 있을뿐, ISP 운영 방안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다. 파리정치대학 등 다른 그랑제꼴(전문직업인을 양성하는 대학) 혁신 방안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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