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웨이퍼 치켜들고 "반도체 공격적으로 투자"

신헌철,노현,박재영 2021. 4. 13.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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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프라 예산중 500억弗 투입
엔비디아, CPU도 넘보는데
韓정부는 이제야 '뒷북 대응'

◆ 위기의 K반도체 ②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한국 삼성전자 등 반도체·자동차 업계 19개사 경영진을 상대로 백악관에서 진행한 반도체 영상회의에서 "이것이 21세기의 인프라스트럭처"라며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를 들어올리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이날 참여 기업들에 미국 내 반도체 생산능력을 키워달라고 주문했다. [AP = 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 공급망 영상회의에 참석해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겠다"며 "중국 등 다른 나라가 기다려주지 않는데 미국도 기다릴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정부는 2조달러 규모의 인프라스트럭처 투자 예산안 가운데 반도체 분야에만 500억달러를 책정한 상태다.

그는 이날 삼성전자 등 19개 대기업이 참석한 회의에서 반도체 웨이퍼를 직접 들어 보이며 "이 웨이퍼는 인프라스트럭처"라며 "우리는 과거의 인프라를 고치려는 게 아니라 미래의 인프라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여야 상·하원 의원 65명에게서 반도체 지원을 주문하는 서한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공산당이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고 지배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는 서한 내용을 소개하며 "그들이 하는 것처럼 우리도 반도체, 배터리 같은 분야에서 공격적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열린 반도체 공급망 회의는 차량용 반도체 칩 부족으로 인해 일부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감산에 돌입하는 사태에 직면하자 백악관이 긴급 소집한 것이다. 이날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가 데이터센터용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계획을 내놓으면서 인텔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인텔 주가는 4.18% 급락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글로벌 반도체 산업 경쟁구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사건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반도체를 둘러싼 국가 간, 기업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분야별로 확고한 강자가 시장을 지배하던 기존 분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으며, 이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공격을 하지, 수비를 하지 않는다"며 엔비디아의 CPU 시장 진출을 평가절하했다. 대신 차량용 반도체를 만들겠다는 깜짝 발표를 내놨다. 그는 "제품 인증에 6개월 정도 걸릴 것"이라며 연내 양산을 자신했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서울 = 노현 기자]

비메모리 확 키우는 인텔 엔비디아…한국 메모리 초격차도 흔들

엔비디아 "서버용 CPU 진출"
인텔은 "연내 車반도체 양산"

비메모리 반도체 수요 급증에
글로벌 기업 속속 대규모 투자

비메모리 존재감 미미한 한국
메모리 초격차 지위도 불안
"지금 반도체 시장에서는 '양'의 경쟁이 벌어지면서, 동시에 최첨단 분야에서는 '질'의 경쟁도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13일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세계 최대 그래픽처리장치(GPU) 업체 엔비디아의 중앙처리장치(CPU) 출시 선언과 인텔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 소식을 전하며 이같이 평가했다. 글로벌 완성차 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 사태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을 둘러싼 치열한 경쟁이 동시 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양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것이다. 앞서 12일(현지시간) 엔비디아는 인텔의 아성인 데이터센터용 CPU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엔비디아는 지난해 인수한 반도체 설계 기업 ARM의 기술을 활용해 데이터센터용 CPU인 '그레이스'를 2023년 초에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엔비디아는 GPU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하고 있지만 CPU 시장에서의 입지는 열악했다. 엔비디아의 GPU는 인텔 CPU가 장착된 컴퓨터에서 CPU의 연산 처리 부담을 덜어주는 보조 수단에 그쳤다. 하지만 '그레이스' 출시로 이 같은 상황은 바뀔 전망이다. 그레이스는 엔비디아 GPU와 인텔의 CPU를 결합한 기존 시스템보다 AI 처리 속도가 10배 빠를 것이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엔비디아는 그레이스를 통해 서버용 CPU 시장 90% 이상을 장악한 인텔의 아성을 무너뜨린다는 게 목표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면서 이날 엔비디아 주가는 전일 대비 5.62% 급등한 반면 인텔 주가는 4.18% 하락하는 등 양사의 희비가 엇갈렸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엔비디아의 영역 확장을 상징적 사건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 산업을 둘러싼 경쟁이 유례없이 치열해지면서, 분야별로 확고한 강자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분업 구조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탄이라는 시각이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CPU 시장 진출은 혁신과 도전 없이 기존 사업에 안주하다가는 경쟁에서 도태될 수도 있다는 일종의 경고 메시지"라며 "한국 반도체 업계도 '메모리 강자'라는 지위에 안주해서는 장기적인 생존을 담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엔비디아에 허를 찔린 인텔은 이날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계획을 들고 나왔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이날 백악관이 소집한 반도체 공급망 대책 회의 이후 로이터통신과 한 인터뷰에서 "최근 전 세계적으로 공급 부족 사태를 빚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제조에 직접 나서겠다"며 "향후 6~9개월 내에 실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도록 차량용 반도체 설계 업체와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텔은 기존 설비 일부를 전환해 차량용 반도체를 생산할 계획이다. 앞서 인텔은 지난달 200억달러(약 22조52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반도체 공장 2곳을 짓고 반도체 위탁생산 사업 부문인 '인텔 파운드리 서비스'를 신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김정호 KAIST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인텔의 차량용 반도체 생산 계획 발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며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에 전혀 준비돼 있지 않은 한국과 달리 미국은 정부의 생산 확대 요청에 업계가 즉각 화답하는 등 민관이 혼연일체가 돼 공급난 해소에 나서는 저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반도체 업계에선 5세대(5G) 이동통신을 기반으로 한 AI·사물인터넷(IoT)·증강현실(AR)·가상현실(VR) 등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핵심 역량인 반도체 주도권 확보를 위한 '반도체 전쟁'이 시작됐다고 보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는 핵심은 시스템 반도체다. 자율주행차의 경우 최소 3개의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와 10여 개의 이미지센서, 최대 30개의 전력관리반도체(PMIC), 4~5개의 디스플레이 구동칩(DDIC) 등 다양한 종류의 시스템 반도체가 들어간다. 시스템 반도체는 저장장치인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전자제품에서 정보처리·제어·가공 등을 담당한다. 한국은 압도적인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선 아직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시스템 반도체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업체)가 설계한 뒤 파운드리 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이를 고객에게 납품하는 구조인데 2019년 기준 한국의 팹리스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부(2.4%)를 포함해 3.2% 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삼성전자를 빼면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메모리 반도체 초격차도 흔들리고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하며 선두 자리를 놓치지 않고 있지만, 한 수 아래로 간주했던 경쟁사들에 세계 최초 타이틀을 잇따라 빼앗기는 등 최근 기류가 심상치 않다. 메모리 반도체 3위인 미국 마이크론이 지난해 11월 176단 낸드를 업계 최초로 공개한 데 이어 올 1월에는 세계 최초로 4세대 10나노급 D램 생산을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노현 기자 /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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