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한국전력, 승진 인사 때 군경력 인정 안한다
군필자가 군대 미필자보다
회사 근무경력 2년 앞섰는데
승진 인사때 불이익 받을판
군필자 승진 역차별 일파만파
◆ 군필 승진 역차별 논란 ◆
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승진심사 때 군 복무 경력을 아예 인정해주지 않는 방향으로 제도 변경에 나서 논란이 예상된다. 올해 초 기획재정부로부터 승진 시 남녀차별 규정을 정비할 것을 요구받은 340여 개 공공기관 가운데 실제 움직임에 나선 곳은 한전이 처음이다. 한전이 검토 중인 인사평가 지침에 따르면 올해 차장 승진 대상자는 군필자가 미필자보다 경력점수에서 절반 가까이 낮은 평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필자가 손해 보는 일은 없을 것"이라던 정부 설명과 달리 군필 남성들의 승진 역차별이 현실화한 것이다.
13일 매일경제 취재 결과, 한전은 최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인사관리지침 개선안 마련 작업을 마무리하고 법무실과 감사실의 검토를 받고 있다. 이르면 이번주 안으로 새로운 인사관리지침을 사내 공포할 예정이다.
한전은 4직급(대리·과장)에서 3직급(차장)으로 진급 시 시험을 통해 진급 대상자를 선발해오고 있는데, 그동안에는 '군 경력을 포함해 만 6년 이상 근무한 자'에게 승진시험 응시 자격을 부여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변경되는 제도에 따르면 올해부터는 '입사 전 군 경력을 미포함한 만 4년 이상 근무한 자'만 진급시험 응시가 가능해진다. 작년에 승진에 도전했던 군필 직원이 올해는 승진시험에 응시하지 못하게 되는 불합리한 경우를 방지하고자 승진자격연수를 6년에서 4년으로 변경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한전은 입사 이후에 군대에서 복무한 경력은 근무경력 점수 산정에 반영해주기로 했다.
문제는 한전 3직급 일반승진 시험에서 자력(自力·경력, 근무평정 점수)평가 항목 가운데 근무경력 배점이 가장 크다는 것이다. 한전 내부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대부분 만점을 받는 자기계발 점수(6점 만점) 등과는 달리 근무경력(15점 만점)은 가장 변별력이 큰 항목"이라며 "기존 제도에서는 군미필과 군필 직원이 인정받는 경력점수가 비슷했는데, 바뀐 제도하에서는 미필 직원이 받는 경력점수가 2배나 더 높아져 군필자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구조가 됐다"고 털어놨다.
실제 한전의 경우 2015년 2월에 입사한 군미필 직원과 2016년 12월에 입사한 군필 직원이 모두 올해 12월 예정된 3직급 일반승진 시험 대상자로 분류되는데, 기존 제도상으로는 이들의 경력점수가 각각 8.5점과 9점으로 0.5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제도 변경 후에는 군미필 직원이 여전히 6년의 근무경력을 인정받아 11.5점을 받는 반면, 군필 직원은 군대에 있었던 2년여 기간을 차감당해 4년만 근무한 것으로 간주되면서 6점밖에 경력점수를 인정받지 못하게 된다. 같은 시기에 승진 대상자가 됐는데도 군 복무기간만큼 늦게 입사한 직원과 그만큼 빨리 입사한 미필 직원이 받는 점수가 제도 변경 전에는 비슷했지만 변경 후에는 차이가 크게 벌어지는 것이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기재부가 보다 명확한 지침을 내려줘야 하는데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양연호 기자]
한전, 공공기관 군필경력 불인정 후폭풍
"직전 승진자와 형평성 위배"
의견수렴 절차 없어 대혼란
승진자 성비 불균형 우려도
한전 도입후 공기업 확산태세
지침내린 기재부는 나몰라라
"지금 40·50대들은 군 경력을 모두 인정받고 이제 와 우리만 역차별당해야 하는 이유가 뭔가."
최근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에 "직원 승진 자격을 따질 때 군(軍) 복무 기간을 반영해선 안된다"는 지침을 내린 후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공사가 먼저 군 경력 인정 조항을 삭제하기로 하자 20·30대 젊은 남성 직원들을 중심으로 불만이 폭발했다. 선배 세대들은 군 복무 경력을 온전히 인정받아 승진 혜택을 다 누려놓고는 이제 와서 대리·과장 등 승진을 앞둔 젊은 세대들만 몽땅 피해를 보게 생겼다는 불만이 치솟은 것이다. 단순히 군 미필자인 여성들과의 '젠더 문제'가 아니라 공정성 논란으로 일파만파 번지는 모양새다. 전체 공공기관으로 제도 개편 움직임이 확산될 경우 최근 재보궐선거에서 불거진 젊은 층 남성들 불만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공무원의 경우만 해도 군 경력이 경력평정에 포함돼 미미하게나마 승진심사에 반영되고 있어 공공기관 재직자들 사이에 박탈감은 더욱 큰 상황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현재 중앙 및 지방 공무원은 임용되기 전 병역의무를 이행한 경우 제대군인을 우대한다는 이유로 병역 기간의 60%만큼을 공무원 경력으로 인정해주고 경력평정에 반영하고 있다. 다만 공공기관과는 달리 승진심사에서 근무성적평가가 압도적이라 경력평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게 인사혁신처 설명이다. 무엇보다 직전 승진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당장 올해 초 승진 시험에 합격해 진급한 사람들은 임용 전 군 복무 경력을 모두 인정받았는데, 사회 진출이 단 1년 늦었다는 이유로 손해를 입게 될 처지에 놓였기 때문이다. 한전에 재직 중인 A씨는 "변경된 제도가 당장 올해부터 적용되는 것에 대해 기존에 미필이라는 이유로 승진이 늦어졌던 직원들도 반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차기 승진에서의 남녀 성비 불균형이 예상된다는 점도 문제다. 비록 시험을 통해 승진자를 선발하지만 실질적으로 경력 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는 점에서 바뀐 제도하에서는 기존 미필자 직원의 경력 점수가 상대적으로 훨씬 우세해져 아무래도 여성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해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군 경력 인정 제도가 남녀 갈등뿐 아니라 세대 갈등을 촉발할 수 있는 예민한 문제이다 보니 체계적 접근이 필요한데도 공공기관 인사 제도를 담당하고 있는 기획재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 그 결과 똑같은 공공기관인데도 A기관에서는 군 경력이 인정되고 B기관에서는 인정되지 않아 차별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기재부나 금융 공공기관을 담당하는 금융위원회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고 기관에 '알아서 하라'는 식으로 일임한 탓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공공기관은 공무원처럼 군 복무 기간의 60% 수준만 경력 점수로 인정해주는 방안 등 다양한 인사 제도 개선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테면 군 경력과 출산·육아휴직을 모두 승진 시 경력에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다. 한 국책은행 고위 관계자는 "수십 년간 이어온 군 경력 인정 제도가 갑자기 폐기되면 피해를 보는 군필 직원들의 반발이 거셀 수밖에 없다"며 "국방의무와 출산이라는 두 가지 국가적 목표에 대해 똑같은 가중치를 두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윤원섭 기자 / 양연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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