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직에 가까운 계단에 다리가 후들.. '악' 소리 나는 대둔산, '산린이'도 가능할까

최흥수 2021. 4. 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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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로 이동하면 정상까지 700m
정상까지 등반이 힘들면 삼선계단에서 '인증사진'
완주 대둔산 군립공원의 삼선구름다리. 케이블카가 산중턱까지 가지만 등산로 대부분이 계단이어서 쉽지 않다. 보통은 이곳 삼선계단에서 '인증사진'을 찍고 하산한다.

전북 완주와 충남 논산, 금산에 걸쳐 있는 대둔산은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린다. 웅장한 산세에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져 절경을 자랑한다. 대둔산이라는 명칭은 한듬산을 한자화한 이름이라고 한다. 더 쉽게 풀어 쓰면 ‘큰두메산’이다. 최고봉인 마천대가 해발 878m로 강원도의 고봉에 비하면 높은 편이 아니지만 골짜기는 깊고 깊다.

완주에서 대전으로 이어지는 도로는 이런 곳에도 사람이 살까 싶은 산골짜기를 파고든다. 대둔산 군립공원 입구에서 쳐다보면 수직으로 솟은 바위봉우리가 까마득하다. 등산 초보자인 ‘산린이’에겐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도 사시사철 등산객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산중턱까지 케이블카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 운행을 시작한 대둔산 케이블카는 927m의 길이에 정원 50명의 운반 차량 2대가 교차 운행하고 있다. 20분 간격으로 출발하며 탑승 시간은 5분, 요금은 왕복 1만1,500원이다. 하부 정류장을 출발하면 풍광은 단숨에 넓어진다. 지나온 골짜기와 맞은편 산 능선이 시시각각 모습을 드러내고 발아래로는 초록의 봄빛이 산등성이를 거슬러 오른다. 상부 정류장에 닿으면 수직으로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아찔하다. 그러나 여기는 맛보기다. 대둔산의 아찔한 매력을 즐기려면 본격적으로 발품을 팔아야 한다.

케이블카를 타면 5분 만에 대둔산 중턱까지 오른다. 초록의 봄빛이 산등성이로 번지고 있다.
대둔산 등산로는 거의 대부분 계단이다. 길지 않지만 경사가 가팔라 발목을 감싸는 등산화를 착용하는 게 편하다.
대둔산 케이블카 상부 정류장에서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는 처음부터 계단이다. 한 등산객이 손을 짚고 기어오르고 있다.

이곳에서 정상까지는 약 700m, 40분에서 1시간을 잡는다. 평지에서 1시간이면 보통 4km를 이동할 수 있으니 경사가 얼마나 가파른지 대충 짐작이 간다. 등산로는 한치의 에누리 없이 첫걸음부터 산등성이까지 약 500m 구간이 계단이다. 나무계단이 끝나면 돌계단이 이어지고, 돌계단이 끝나면 철계단이 기다린다. 경사도 심해 체감 기울기는 수직에 가깝다. 중간쯤에 설치된 ‘삼선구름다리(삼선계단)’를 오를 때는 아찔함과 스릴이 최고조에 달한다. 우뚝 솟은 바위봉우리를 길이 36m, 121개 철계단으로 암벽 타듯 오른다. 바람이 거의 없는 날이었는데도 중간쯤부터 흔들림이 온몸에 전해진다. 이때부터 다리가 후들거려 아래로도 위로도 보지 못하고 오로지 발끝만 주시하며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

기울기 51도, 1986년 개설한 이 계단은 오르는 길 일방통행으로 운영된다. 어린이나 노약자, 심신이 미약한 사람은 무리하지 말고 바로 옆 내려오는 돌계단을 이용하는 게 현명하다. 정상까지 갈 엄두가 나지 않는 사람은 이 계단 아래서 ‘인증사진’을 찍는다. 삼선바위를 중심으로 장군바위, 왕관바위, 허둥바위 등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발밑에는 동심바위가 오뚝하게 솟아 있다. 상하 전후 좌우 어디를 보든 입체적 절경이다.

아찔하기로는 바로 아래의 금강구름다리가 한 수 위다. 80m 상공에 매달려 있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지나기 어려운데, 현재는 보수공사로 일시 폐쇄된 상태다. 8월부터 통행이 재개될 예정이다.

상행 일방통행으로 운영되는 대둔산 삼선계단은 웬만한 놀이기구보다 아찔하다. 많은 사람들은 계단 아래서 '인증사진'을 찍는 것으로 대신한다.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약 500m, 능선까지 오르면 맞은편 산세는 예상외로 순하다. 조리대가 빼곡하게 덮여 있다.

삼선계단을 지나면 산등성이까지 다시 가파른 돌계단이 이어지고, 능선까지 오르면 맞은편 산세는 거짓말처럼 순하다. 거친 바위는 거의 보이지 않고 완만한 경사면에 조리대가 빼곡해 청량하기까지 하다. 능선에서 정상까지 가는 길도 대체로 평이하다. 보통은 맞춤한 돌 비석에 높이를 새겨 정상을 표시하지만, 대둔산 마천대에는 대형 철탑이 세워져 있다. 험한 지형에 어렵사리 등산로를 개설한 것을 기념한 ‘개척탑’이다.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높고 낮은 산 능선이 겹겹이 이어지고, 남서쪽으로 멀리 만경평야가 아련하게 보인다.

그 들판이 마냥 풍요롭게 보이지만은 않는다. 대둔산 남쪽 석두골 골짜기는 외세의 수탈과 조정의 부패에 맞서서 봉기한 동학농민혁명군이 3개월간 항거한 곳이다. 공주전투에서 패한 1,000여 명의 농민군이 이곳으로 퇴각해 저항했다. 이 과정에서 농민군 지도자 25명이 전사하고, 동학접주 김석순은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150m 절벽 아래로 뛰어내렸다고 한다. 아름다운 산세에 가려진 아픈 역사다.

대둔산 정상 마천대에서 동남쪽으로 보면 우람한 산줄기가 겹겹이 이어진다.

하산하는 길은 체력 소모가 적지만 경사가 가파른 만큼 더욱 조심해야 한다. 되도록이면 발목까지 감싸는 등산화를 착용할 것을 권한다. 케이블카는 바람이 세면 운행하지 않는다. 등산 안내도에는 하부 정류장에서 정상까지 왕복하는 데에 3시간30분이 걸린다고 적혀 있지만, 초보자는 시간을 좀 더 넉넉히 잡는 게 좋을 듯하다.

최흥수 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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