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가방엔 '반지의 제왕'이 있었다

허연 2021. 4. 13.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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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의 인문학이 필요한 시간
남들보다 앞서 세상을 읽고
거대한 꿈을 현실로 바꿨다
공통점은 바로 지독한 독서
시공간 뛰어넘는 시선 가져

◆ MK포커스 ◆

[사진 = 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난쟁이다. 작지만 때론 거인보다 먼 곳을 보기도 한다."
움베르토 에코 '장미의 이름' 중에서

우리가 거인의 어깨에 올라탈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독서다. 여기 세상을 바꾼 자들이 있다. 일론 머스크, 마크 저커버그, 빌 게이츠, 제프 베이조스…. 이들은 남들보다 앞서 세상을 읽었고, 거대한 꿈을 꾸었으며, 그 꿈을 현실로 바꾼 사람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 다들 독서광이다. 이들은 독서를 통해 거인의 어깨에 올라탔고, 더 넓게, 그리고 더 멀리 세상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리더(reader)가 리더(leader)가 된다'는 말이 사실임을 일깨워준 주인공들이다.

경이로운 천재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도서관 장서를 둘러싼 음모를 다룬 소설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제2권이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그것을 봉인하려는 자와 세상에 꺼내 놓으려는 자가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소설은 윌리엄이라는 지혜로운 수도사와 그를 따라다니는 시종 아드소의 시선을 따라 움직인다. 소설 중간에 아드소가 수도원 장서관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아드소는 이렇게 독백한다.

"그제서야 나는 서책끼리 대화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장서관이란 수세기에 걸친 음울한 속삭임이 들려오는 곳. 이 양피지와 저 양피지가 해독할 길 없는 대화를 나누는 곳. 만든 자, 옮겨 쓴 자가 죽어도 고스란히 살아남는 수많은 비밀의 보고. 인간에 의해서는 정복되지 않는 막강한 권력자였다."

그렇다. 책은 단순한 물성(物性)을 뛰어넘는 존재다. 도서관에 가보라. 그곳에서는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나누고, 적과 동지가 경합을 하고, 해독 불가능했던 것들이 해독되며, 수많은 비밀의 봉인이 열리고, 어떤 지혜도 죽지 않은 채 누대를 이어간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들은 시공간을 뛰어넘는 시선을 갖게 된다. 도서관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세상이 다 알아주는 독서광이다. 그는 사람들이 우주여행 로켓을 만드는 법을 어떻게 배웠느냐는 질문을 할 때마다 "나는 책을 읽는다"(I read books)라는 세 단어로 대답을 한다.

머스크는 어린 시절부터 책과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약한 체력에 공상가였던 머스크는 친구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외톨이 소년을 구원해준 것이 책이었다. 친구들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 나이에 머스크는 하루 10시간 넘게 책에 빠져 살았다. 집에 더 이상 읽을 책이 없자 수십 권짜리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A부터 Z까지 읽은 일화는 유명하다.

머스크는 살면서 책을 1만권 정도 읽었다고 말한다. 그의 나이를 감안하면 대략 이틀에 1권씩 읽은 셈이다. 대단한 숫자다.

머스크의 가장 큰 매력은 미래를 내다보는 상상력과 실험정신이다. 전문가들은 머스크의 이런 기질은 독서에서 체득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 스스로도 현재의 자신을 만든 가장 큰 동력으로 독서를 꼽는다. 그는 자기 인생에 반전을 가져다준 책 몇 권을 종종 거론한다. 그가 첫 번째로 꼽는 책이 존 로널드 톨킨의 '반지의 제왕'이다. 머스크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영웅들을 보면서 세상을 구해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자란 10대 시절 판타지와 SF 소설을 읽으며 외로움을 달랬고 꿈을 꾸었던 것이다.

도널드 L 발렛이 쓴 '하워드 휴즈'도 머스크의 세계관에 영향을 준 책이다. 억만장자이자 비행가로 살았던 휴즈는 머스크의 롤모델이다. 엄청난 돈을 벌어들이는 사업체를 운영하면서도 속도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했던 비행가로서의 삶을 살았던 휴즈의 낭만성은 머스크에게 그대로 전이됐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벤저민 프랭클린 인생의 발견'도 머스크의 인생을 바꾼 책이다. 머스크는 종종 벤저민 프랭클린을 '자신의 영웅'이라고 얘기해왔고 이 책을 통해 기업가 정신을 배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영국의 작가 더글러스 애덤스가 쓴 코믹 과학소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머스크에게 하나의 강령을 알려줬다.

존재에 대한 회의에 빠졌던 10대 시절, 머스크는 이 책을 읽으며 제대로 된 답은 제대로 된 질문 속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2018년 2월 테슬라 전기차 로드스터를 우주로 보낼 때 머스크는 책에 나오는 문장인 '돈 패닉(Don't Panic·당황하지 마세요)'을 계기판에 써서 보냈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알아주는 독서광이다.

저커버그는 인간 본성에 관심이 많은 정신과 의사였던 어머니 덕에 어린 시절부터 인문학적 독서에 익숙해졌다. 그는 역사, 예술, 논리학, 심리학, 그리스신화 등을 탐독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그는 대학에서 자연스럽게 심리학을 전공했고 '사람은 누구나 연결되고 싶어 한다'는 인문학적 통찰을 얻어냈다. 이 통찰이 페이스북이라는 사업 아이디어로 연결된 것이다.

저커버그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해의 책(A Year of Books)'이라는 페이지를 만들어 대중에게 함께 책을 읽자는 제안을 던지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캠페인 첫 번째 책으로 꼽았던 게 권력이 어떻게 이동하고 있는지 분석한 모이제스 나임의 '권력의 종말'이다. 저커버그는 "책을 통해 집단보다 개인의 힘이 중시되는 흐름을 읽었다"고 말했다.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는 그의 추천에 힘입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 앞의 두 책에서 볼 수 있듯 저커버그는 인간이 구성한 사회나 국가, 그리고 권력의 내면을 탐구하는 책을 좋아한다.

그는 대런 애쓰모글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도 강력 추천했다. 이 책은 매사추세츠공대(MIT) 경제학과 교수인 저자가 마야제국, 영국, 중국, 구소련 등의 사례 연구를 통해 국가의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차이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저커버그는 "빈곤 국가에 대한 고민을 하던 중 이 책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소셜네트워크 전문가답게 저커버그는 권력에 저항하는 대중의 메커니즘을 게임이론으로 설명한 마이클 최의 '사람들은 어떻게 광장에 모이는 것일까'도 추천 목록에 올렸다. 저커버그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가진 지식을 공유해 세상을 발전시키는지 설명해주는 책"이라는 설명을 붙였다.

저커버그는 영국의 동물학자인 매트 리들리의 '이성적 낙관주의자'도 추천했다. 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반기를 든 책으로 인간에게는 이기적 유전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업하고 배려하는 사회적 유전자도 있다는 주장을 담고 있다. 이 사회적 유전자가 인류의 번영을 이끌었다고 말하는 책이다. 저커버그의 낙관적 세계관이 엿보인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도 책벌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으로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을 꼽는다. 이 책은 집사로서 평생을 보낸 한 남자의 6일간의 여행을 따라간다. 젊은 날은 갔어도 인생의 황혼 녘에도 희망은 있다는 잔잔한 메시지를 전한다. 베이조스는 블로그에 이 책에 관한 감흥을 올렸는데 "나는 이 책에서 인생과 후회에 관한 무엇인가를 배웠다. (책의 감흥을) 블로그 글로는 도저히 옮길 수 없다"고 고백했다.

베이조스의 독서 리스트에는 경제 경영서들도 많다. 장기간 생존해온 기업들의 성장 과정을 분석한 짐 콜린스의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마크 제프리의 '마케팅 평가 바이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블랙 스완' 등이 베이조스 목록에 자주 등장하는 경제 경영서다.

독서광 CEO들을 거론하면서 마이크로소프트 설립자 빌 게이츠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는 "어린 시절 마을에 있던 작은 도서관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게이츠는 1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는 다독가로 유명하다.

인간 본성에 관심이 많은 게이츠가 탐독한 책은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 인류가 어떻게 선한 본성으로 악한 본성을 이겨내며 진화해 왔는지 설명한 책이다.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도 게이츠의 추천 도서다. 게이츠는 또 역사서에 조예가 깊다. 그는 머릿속에 지적인 지도를 가지려면 역사를 읽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과학을 알기 위해서는 과학사를 읽어야 하고, 철학을 배우기 위해서는 철학사를 읽어야 하며, 경제를 알기 위해서는 경제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게 게이츠의 독서방법론이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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