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권수사 중 월성 원전 수사 유독 제자리걸음, 왜? [라운드업]

박은하 기자 2021. 4. 13.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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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북 경주시에 위치한 월성 원자력 발전소 1호기(오른쪽)와 2호기./ 경주 | 이석우 기자 foto0307@kyunghyang.com


차기 검찰총장 인선을 앞두고 검찰이 정권 관련 주요 수사를 마무리하고 있지만 대전지검이 진행 중인 월성 원전 조기 페쇄 관련 수사는 유독 제자리걸음 상태이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수사의 흐름이 끊겼다. 앞서 문서 파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공무원들이 보석으로 풀려나 본격적 법정 공방을 예고하고 있다.

원전 수사는 감사원이 지난해 10월 검찰에 수사참고 자료를 보내면서 시작됐다. 월성 1호기는 1983년 건설됐다. 설계수명은 30년으로, 지난 2012년 운행이 중단돼야 했으나, 원전 운영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7000억원을 들여 보강공사를 하고 2015년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의 승인을 얻어 수명이 10년 연장됐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재판장 호제훈)는 2017년 2월 월성 1호기 인근 주민 2167명이 원안위를 상대로 낸 원전 계속운전허가 무효확인 등 청구소송에서 이 같은 원자로 수명 연장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문재인 정부는 에너지 공급에서 원전의 비중을 줄이기로 한 공약에 따라 2019년 월성 1호기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행정소송의 항소심 재판부인 서울고법 행정1부는 2020년 5월 월성 1호기 영구정지로 이미 소송 목적이 달성돼 더 판단할 필요가 없다며 원고와 피고의 항소를 모두 각하하며 ‘원자로 수명 연장 위법’ 판결은 확정됐다.

한수원이 2018년 6월 월성 1호기 폐쇄 영향을 평가하는 과정에서 산업부가 개입해 폐쇄의 경제적 효과를 부풀렸다는 것이 감사원 감사 결과의 요지이다. 산업부는 기존의 월성 원전의 가동 이익 평가가 과장된 것이었다고 반박했다. 이미 투입된 7000억원의 비용을 고려해 원전을 최대한 가동해야 한다는 주장과, 더 빨리 폐쇄하는 것이 오히려 더 경제적이라는 주장 간의 다툼이다.

원전 폐쇄 관련 의혹은 정부의 정책공약 추진과 관련돼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것이 부적절한 정책이라 하더라도 선거 등을 통해 정치적 평가를 받아야지 관련 실무 공무원 처벌 등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검찰은 이를 의식해 “탈원전 정책의 정당성에 대한 수사가 아니라 정책 추진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을 보는 수사”라는 입장을 밝혔다.

수사의 돌파구를 열어준 것은 산업부 공무원들의 문건 삭제 사건이었다. 산업부 공무원 3명이 감사원 감사 기간에 사무실 컴퓨터에 저장돼 있던 문건파일을 삭제했다고 최재형 감사원장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밝혔다. 국민의힘은 백 전 장관 등 12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는 삭제된 파일이 530건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문건 삭제에 가담한 A국장과 C서기관은 구속, B국장(사건 당시 과장)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에 넘겼다. 감사방해, 전자공용기록 손상, 방실침입 혐의가 적용됐다. B국장은 검찰 수사에 협조적이어서 구속을 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검찰 수사는 꼬리에서 머리로, 곁가지에서 몸통으로 올라간다는 계획이었다. 검찰은 구속된 A국장에게 문건 삭제가 백 전 장관, 채희봉 당시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등 윗선의 지시에 의한 것인지 캐물었다. 윗선과 실무진 사이의 연결고리인 A국장은 30여차례 피의자 조사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A국장이 입을 다물자 수사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했다. 산업부, 한수원, 한국가스공사 등을 압수수색 했지만 확실한 물증은 확보하지 못했다. 대전지법이 지난 2월 백 전 장관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수사에 제동이 걸렸다. 법원은 직권남용 혐의에 대해서는 입증이 더 엄격해야 한다고 봤다. 기소 전 단계에서 엄격한 물증이나 진술 확보에 실패한 것이다.

산업부 공무원들의 재판이 열리자 상황은 검찰에 더 불리해지는 양상으로 가고 있다. A국장과 C서기관은 지난 1일 보석으로 풀려났다. 법원은 구속 상태에서는 충분한 반론 준비를 펼칠 수 없다는 이들의 주장을 인정했다. 문건 삭제와 관련해서도 다툼의 여지가 높아졌다. A국장 등은 “정쟁에 활용되는 것을 우려해 문건을 삭제했다”면서도 “전자공용기록 손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삭제한 문건 530건은 사무관 컴퓨터에 저장된 파일로 정부전자결재시스템에 제출하는 공문서가 아니다. 공문서의 초안, 사본, 업무정리, 내부 참고자료 등의 한글 파일이다. 공식 공문서는 전자결재시스템에 삭제되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다. 이 사실은 수사 과정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다. 반면 피고인들이 감사원과 검찰 조사에서 했던 발언이 알려져 일부 언론이 ‘죽을래 과장’ ‘신내림 서기관’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빌미가 됐다.

검찰은 보강수사를 벌이고 있다. 백 전 장관의 구속영장을 다시 청구하거나 채 전 비서관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있다. 검찰은 문건 삭제보다는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혐의 입증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감사원은 지난달 5일 정부의 ‘에너지 전환 로드맵과 각종 계획 수립 실태’ 감사 결과 탈원전 정책에 절차적 문제가 없다고 결론내렸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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