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고추장 빼달라' 아이 비빔밥 주문했다고 '맘충'? "이런 현실서 어떻게 애를∼"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맘충. 이런 경우도 해당이 되나요'라는 제목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이 결합해 낳은 '맘충'은 일부 여성의 몰지각한 행위를 일컫는 비속어다.
지극히 예외적인 상황에서만 쓰이던 맘충이란 말이 최근 아이를 둔 여성을 향해 무차별적인 확산의 조짐이 보여 우려를 사고 있다. 덩달아 지극히 평범한 엄마들까지 '맘충' 손가락질에 떨고 있다.
두 살 아이의 엄마라고 밝힌 A씨는 "사회에 아이들과 부모가 나오는 것조차 민폐라며 손가락질하는 분들께 읍소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남편, 아이와 함께 서울의 한 식당을 찾아 해물파전 하나와 2인 메뉴인 쌈밥 정식, 아이가 먹을 돌솥비빔밥을 주문했다. 그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 직원 B씨에게 "돌솥비빔밥은 계란이랑 고추장 양념 빼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러자 B씨는 한숨을 크게 푹 쉬면서 "애가 먹어요? 물어볼게요"라고 말했다. 이후 B씨는 카운터로 돌아간 뒤 다른 종업원에게 "지새끼 밥은 지가 좀 싸가지고 다닐 것이지. 맘충 존X"라고 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자리가 멀지 않고 식당이 크지 않아 (다 들렸다)"며 "남편과 저는 큰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아 바로 카운터로 가서 방금 주문은 취소해달라하고 식당에서 나왔다"고 전했다.
이어 "아이 키우는 2년간 주위에 피해 끼치지 않으려고 최대한 외출도 자제하고, 공공장소에서 버릇 없는 아이로 자라게 하지 않으려고 많이 노력했다"며 "처음으로 그런 말을 들으니 손이 벌벌 떨렸다"고 덧붙였다.
A씨는 "두 돌 지난 아이라 이유식을 먹이지 않아 식당에 가면 메뉴 중에 고르는 편"이라며 "주문하는 5분 동안 아이는 한번도 큰소리를 내거나 돌아다니지 않고, 자리에 앉아 장난감을 갖고 놀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이가 계란 알레르기가 있고 아직 매운 걸 잘 못먹어서 재료를 빼달라했던 것"이라며 "이게 '맘충'이라는 욕을 들을 만한 행동이었냐"고 반문했다.
A씨는 끝으로 "인원보다 적게 메뉴를 시킨 것도 아니고, 아이가 먹을거니 서비스로 달라고 진상 부린 것도 아니다"라며 "아이가 아니라 성인이 똑같이 주문했다면 맘충 소리는 안 들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에서 특히 아이를 보는 시선이 곱지 않다는 걸 알아서 몇 배로 더 신경 쓴다"며 "일부 잘못하는 부모들도 있겠지만 모든 엄마가 맘충인 건 아니다. 시간 지날수록 사회가 왜 이렇게 되는 거냐"고 토로했다.
한편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맘충'을 검색하면 수백개의 목격담이 게시돼 있다. 커피숍 커피잔에 아이의 소변을 받는 엄마, 손님들이 가득한 식당 한가운데에서 버젓이 아이의 기저귀를 가는 엄마, 갈고 난 기저귀를 식탁 위에 버리고 간 엄마들의 사진까지 각종 목격담과 '증언' 등이 넘쳐 난다.
'맘충에 데였다'는 글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비행시간 내내 우는 아이를 달래지 않는 맘충 때문에 비행을 망쳤다는 사람부터 "아이가 먹을거니 무료로 음식을 달라"고 말하는 엄마들에 황당했다는 음식점 업주까지 맘충과 연결시키는 사례는 다양하다.
그러나 맘충 논란의 칼 끝이 지극히 상식적인 엄마들까지 겨누면서 아이를 가진 엄마 모두가 혐오의 대상이 되는 분위기다. 평범한 엄마들은 혹시나 '내가 맘충이 되는 것은 아닐까'라고 걱정 아닌 걱정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
맘충 논란이 이처럼 아이와 함께 있는 여성이면 대상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자 '엄마들은 집에만 있어야 하는 거냐'라는 한탄까지 나온다. 한 엄마는 "맘충 논란을 보면 아이, 엄마 혐오증에 걸린 것 같다"며 "맘충이라 불릴 만한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엄마들이 절대다수라는 사실을 생각해주기 바란다"고 안타까워했다.
맘충 논란은 결혼을 앞둔 미혼여성이나, 곧 출산하는 기혼여성들에게도 무척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맘충 논란이 또 하나의 여성혐오 현상으로 번지면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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