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파란바지 의인 "눈 뜨고 16일 맞이할 수 없어"..약 40알 삼켜 응급실행

박미라 기자 2021. 4. 1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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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13일 오전 11시 제주지방법원 앞. 세월호 참사 생존자 김동수씨((56)를 대신해 아내 김형숙씨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씨는 “어제 남편이 정신과 약 16일치인 30~40알을 한 번에 먹고 쓰러졌다”며 “남편은 세월호 참사일인 16일을 눈 뜨고 맞이할 자신이 없다고, 아무 생각 안하고 쉬고 싶다고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응급실에 갔더니 의사가 기계적으로 ‘죽으려고 먹었냐’ ‘왜 먹었냐’고 묻더라. 남편은 살고 싶어서, 견디기 위해 약을 먹은 것이다”며 “병원에 갈 때마다 이 사람은 세월호 참사 후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고 설명하고, 기억을 되살려야 한다. 저까지 공황장애가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생존자는 죄인이 아니다. 하지만 살아남았다는 이유로 가족까지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며 “옛날의 김동수로 돌아온다면 소송 따위 필요 없다. 체계적으로 트라우마 치유를 받기 원한다”고 말했다. 김동수씨는 화물차와 함께 세월호에 탑승했다가 참사를 겪었다.

당시 단원고 학생 등 20명 이상을 구해 ‘파란바지의 의인’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참사 이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불면과 우울, 자해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고 항우울제, 수면제를 복용하고 있다.

제주 세월호 생존자와 그들을 지지하는 모임 등은 13일 오전 제주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 세월호 생존자 피해에 대한 국가배상소송 이유와 경과를 밝혔다. 박미라 기자


또 다른 세월호 생존자 윤길옥씨(56) 역시 약 없이는 잠들지 못하는 고통 속에 살고 있다.

윤씨는 “매일 수면제와 항우울제의 강도를 점점 높여가며 버티고 있다”며 “깜깜한 곳에 있으면 악몽이 되살아나 TV와 불을 켜야만 잠시라도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했다.

화물차 운전자였던 윤씨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매점에 있었다. 배가 기울면서 온수통에 있던 뜨거운 물에 발을 데었다. 부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매점에 있던 학생들을 먼저 대피시킨 후 물속에서 사경을 헤매다 가까스로 탈출했다.

가장 마지막으로 탈출한 윤씨는 “목숨을 건지고 보니 어찌 됐는지 손톱이 다 닳았더라”며 “1년반 정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 후 다시 운전대를 잡았으나 얼마가지 않아 정리했다”고 말했다.

최정규 변호사는 이날 “세월호 참사의 지옥에서 살아나와 제주에서 살고 있는 24명의 생존자는 정신과 치료와 외상치료를 받으며 여전히 또다른 지옥에서 살고 있다”며 “참사가 발생하자 박근혜 정부는 졸속으로 이들의 외상을 진단했고, 보상금을 지급했다”고 밝혔다.

최 변호사는 “당시 정부는 최소한의 장애 평가를 위해 소요되는 2년이라는 시간이 경과되기 전 배상 절차를 진행했다”며 “피해자의 정확한 피해 진단과 진상조사가 필요하며, 정부는 이들에 대한 책임과 책무를 다해야 한다”고 밝혔다.

윤씨를 비롯한 세월호 제주 생존자 15명은 이날 기자회견이 끝난 후 “2015년 ‘세월호피해지원법’ 시행 6개월 내 배상금을 지급 신청해야 한다는 규정에 묶여 제대로 된 후유장애진단을 받지 못했다”며 제주지방법원에 국가배상소송을 냈다.

박미라 기자 mr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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