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레시피] 방법과 기술보다 우선은 '최선'의 자세

2021. 4. 13.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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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모든 직장인들은 수만 가지 이유를 댈 수 있다. ‘나 같은 인재에게 하찮은 일을 시킨다’, ‘부장이나 상사의 저급한 리더십을 도저히 따를 수 없다’ 등등이다. 이 모든 것은 그저 핑계일 뿐이다. 회사에서 하찮은 일을 담당하는 그 직책에 당신이 처음은 아니다. 또한 그 저급한 리더십의 상사를 거쳐 간 직원 역시 당신이 처음이 아니다. 직장은 그 어떤 환경과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직원만 필요할 뿐이다.

▶‘입지전적 출세’ 뒤에 최선의 땀 있다

K그룹 박 부사장을 만났다. K그룹은 계열사 10여 개를 거느린, 국내에서 20위권 안에 드는 탄탄한 기업이다. 박 부사장은 비교적 젊은 나이에 그룹의 사장단 후보 1순위에 올랐다. 그를 알게 된 것은 모 컨설팅 회사에서 주최한 강연회에서다. 당시 박 부사장은 상무였다. 필자는 그의 강연을 듣고 세칭 ‘머리를 강타 당하는 감동’을 느꼈다. 물론 강연 내용도 훌륭했지만 박 부사장의 이력이 상상을 초월했다. 그때부터 박 부사장과의 인연이 이어졌다. 당연히 그의 현재 위치로 보면 그가 외고에 S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미국 아이비리그에서 MBA를 수학하고 스카우트되어 회사에서도 승승장구한, 이른바 ‘금수저 꽃길’일 거라 생각되지만 사실은 정반대였다.

박 부사장은 대한민국의 평범한 중산층 출신도 아니다. 하루 벌어 하루 한 끼를 걱정할 정도로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 아버지는 오랜 기간 투병 중이었고 어머니는 식당에서 허드렛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 4남매의 장남인 그는 학창 시절 그 흔한 학원이나 과외 수업도 받지 못했다. 그는 온갖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타고난 머리와 집중력으로 성적은 전교 최상위권이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그는 서울의 명문대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점수를 받았지만 4년 장학금을 보장한 지방 소재의 대학을 선택했다. 당시 고민도 많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박 부사장은 말한다.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다행일 정도인 집안 형편에 동생들 공부를 다 희생하면서 서울로 갈 수는 없었던 것.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면서도 그는 열심히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특히 외국어 공부에 집중해 대학을 졸업할 때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 스페인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

그는 대학교 추천으로 지방에 본사를 둔 Y사에 들어갔다. Y사는 규모는 작지만 실력과 내실을 갖춘 탄탄한 회사. 박 부사장은 거의 ‘주 90시간’을 회사 일에 매달렸다. 자연히 박 부사장의 실력과 열정을 눈여겨본 사장의 신임을 바탕으로 부장까지 초고속 승진했다. 그는 경영기획팀을 맡아 회사의 전략, 회계를 담당했다. 얼마 후, 회사는 지금 박 부사장이 다니는 K그룹에서 인수 제안을 받았다. 새로운 성장 사업 포토폴리오를 준비하던 K그룹에서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을 보고 제안을 한 것. 당시 박 부장은 합병 팀을 맡아 K그룹의 엘리트들과 담판을 벌였다. 난관의 연속이었다. Y사의 재무 상태, 미래 가치에 대한 평가 작업, 기업 인수 시 직원의 고용 승계 여부, Y사의 부채 승계 등등 모든 부문에서 K그룹은 갑의 위치에서 Y사를 압박했다. 박 부장은 때로는 읍소하고, 때로는 판을 깨 버릴 것처럼 강경한 자세를 유지하면서 끝까지 협상을 이끌었다. 한때는 K그룹이 아닌 Y사 동료들의 원성을 살 정도였다.

약 1년 여의 협상 끝에 Y사는 최상의 조건으로 K그룹에 인수되었다. 당시 K그룹에서는 Y사를 인수하면서 ‘다른 직원은 다 받아들여도 박 부장만은 안 된다’는 의견이 팽배할 정도로 박 부장은 Y사와 직원을 위해 협상에 매달렸고 이를 관철시켰다. 박 부장은 당시 “나는 사표 낼 각오였다. 당연히 작은 회사가 큰 회사에 1 대 1 조건으로 인수될 수는 없다.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정당한 대접과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물론 그냥 받아들이자는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같이 일한 동료들 한 명이라도 더 구제하고 싶은 생각이 강했다”라고 당시를 회상한다.

K그룹은 Y사를 인수한 뒤 인사 발령을 냈다. 모두의 예상을 뒤집고 박 부장은 K그룹의 핵심 기업의 전략경영실 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모두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 발령은 K그룹의 핵심 실세였던 오 사장의 인사였다. 오 사장은 인수 작업을 총지휘했던 임원. Y사와의 인수 협상에서 박 부장의 실력과 열정을 높이 평가한 그가 그룹 오너에게 박 부장의 중용을 보고했던 것. 박 부장은 오 사장의 안목과 기대에 부흥하듯 K그룹에서도 단박에 그 존재를 각인시켰다. 그 뒤 박 부장은 이사, 상무, 전무를 거쳐 이제 부사장으로, K그룹의 차세대 경영자로 그 입지를 확실히 굳혔다.

▶편견을 뒤집는 법 ‘나보다 우리가 먼저다’

박 부사장의 성공담은 물론 쉽지 않은 사례다. 지방대 출신, 인수 대상 회사의 직원, 더구나 인수 협상 시 K그룹의 애를 태운 것은 그에게 하등 이로울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박 부사장이 K그룹에서 그 능력을 인정받고 입지를 굳힐 수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박 부사장을 품에 안은 K그룹의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도 대단하지만 무엇보다 박 부사장이 ‘다른 것을 생각하지 않고 현재,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점이다. 후에 들은 이야기지만 인수 협상 시 K그룹에서는 지인을 통해 박 부사장에게 미래 보장을 조건으로 인수 협상의 원활한 진행을 제안했다고 한다. 박 부사장 역시 새로운 큰 회사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다면 이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현재, 자신의 일에 몰두했다. 그 어떤 욕심, 보장, 이익을 고려하지 않고 Y사와 직원들의 가치를 인정받고 그들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것이다. 당시 그에게 K그룹에서의 새로운 미래는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사즉생’의 각오로 임한 것이다.

가정이지만 인수 협상 시 박 부사장이 K그룹의 제안을 못 이기는 척 받았다면 어땠을까. 당연히 그는 K그룹에서 자리를 보장받고 한몫 챙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을 것이다. 회사는 직원의 능력도 보지만 인성 역시 중요한 체크 포인트다. 즉, 배반 이력이 있는 직원을 오래 두고 신임할 회사는 세상에 없다. 박 부사장은 아마도 K그룹을 몇 년 다니다 점차 한직으로 밀려나고 퇴직했을 것이다. 쉽지 않은 결정을 한 박 부사장에게 배울 점은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다 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이 최선이다. 회사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은 직장인에게 요구되는 당연한 미덕이지만 그것을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당신은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받는다면 모든 직장인들은 수만 가지의 이유를 댈 수 있다. ‘나 같은 인재에게 하찮은 일을 시킨다’, ‘부장이나 상사의 저급한 리더십을 도저히 따를 수 없다’ 등등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그저 핑계일 뿐이다. 회사에서 그처럼 하찮은 일을 하는 직원이 당신이 처음은 아니다. 또한 그 저급한 리더십의 상사를 거쳐 간 직원 역시 당신이 처음이 아니다. 직장은 그 어떤 환경, 조건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직원만 필요할 뿐이다.

또 하나 박 부사장에게서 배울 점은 새로운 회사 K그룹에서의 처신이다. 사장과 오너의 관심 직원이 된 그는 충분히 자신의 실력을 발휘하면서 나름 ‘줄’을 만들 수 있었다. 더구나 Y사에서 옮겨 온 상당수 직원들이 박 부사장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때마다 박 부사장은 그 모든 유혹과 당장의 이익에서 벗어났다. 그저 K그룹의 전략경영실 부장으로서의 위치를 자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에만 최선을 다한 것이다. 그것이 그를 지금의 위치에 올린 원동력이다.

직장에서 우리는 흔히 ‘실세’라는 표현을 쓴다. 오너의 신임을 받고 있는 특정 임원들을 이르는 말이지만 오해하지 말자. 회사의 실세는 오로지 오너 한 사람뿐이다. 나머지는 오너가 나누어 준 일정한 권력의 대리자일 뿐이다. 그들 역시 한밤중에 걸려오는 오너의 전화벨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는 고백을 하곤 한다.

직장은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가장 예민한 공간이다. 특정 사안에 찬성과 반대를 표하는 것,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상사나 동료를 안주 삼는 것은 금기다. 농담과 진담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면서 점점 양치기 소년처럼 변해 가는 것, 학연·지연 등 갖가지 이유로 파벌을 만드는 것, 자신의 주장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것,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와 희생 그리고 팀워크라는 단어를 잊어버리는 것…. 이는 때와 장소를 가려야 하는 직장 생활에서 먼저 생각해야 할 상황들이다.

정규직 공채, 일류대는 물론 해외 유학파가 우글거리는 직장에 지방대 출신 경력직의 이력은 출세는커녕 생존 가능성마저 희박한 것이 실제 상황이다. 하지만 이런 불리함을 딛고 승진가도를 달릴 수 있는 비결은 주변의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설마 했더니 역시야’, ‘쓸데없는 소모품이야’ 등 나를 향해 날아오는 선입견으로 가득 찬 뒷담화를 뒤집어야 한다.

역사 속에서도 박 부사장과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바로 중국 삼국 시대 조조의 꾀주머니 ‘가후’다. 그는 조조 휘하에서 활약할 때까지 다섯 번 조직을 옮겼다. 전란의 시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가후는 다섯 번 조직을 옮기면서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간에는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삼국지』를 지은 진수는 “가후는 책략과 안목이 뛰어난 인물”이라며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송나라 이후 주자학이 중국 지배층의 주류가 된 이후 가후의 처신을 두고 부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군신간의 의리, 신의를 중시하는 유교적 기준으로 인해 가후는 세를 저울질해 주인을 바꿔 타는 모사꾼 정도로 평가 절하 됐다. 하지만 가후는 천하 대란의 시기에 무려 회사를 다섯 번이나 바꾸면서도 천수를 누렸다. 이는 조직을 빈번히 옮기면서도 가후만의 피눈물 나는 원칙, 즉 ‘최선’을 지켰기 때문이다.

▶시원한 직언보다 신중한 조언이 강하다

147년, 가후는 중국 변방 무위군에서 태어났다. 집안 역시 평범했다. 해서 가후는 젊은 시절에는 주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타고난 영특함으로 관직에 오르지만 운도 따르지 않았고 병까지 얻어 고향으로 돌아갔다. 몇 년 뒤 가후는 동탁 휘하로 들어간다. 하지만 동탁이 죽자 동탁의 부하들인 이각과 각사는 군대를 해산하고 도망갈 궁리를 한다. 이때 가후가 이각과 각사를 설득해 이들이 정권을 잡는 데 일조한다. 가후가 내세운 명분은 ‘천자를 받들어 천하를 편하게 한다’였다. 이각과 각사는 황제를 볼모로 권력을 거머쥐자 그 공로로 가후에게 제후의 직을 하사하지만 가후는 받지 않는다. 그 후 가후는 자신의 거취를 놓고 고민한다. 가후는 이각과 각사에게서 미래를 발견하지 못했다.

가후는 결국 이각과 각사의 그릇이 자신이 모실 수준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가후는 벼슬을 버리고 단외에게 몸을 의탁한다. 하지만 단외 역시 가후를 부릴 깜냥이 아니었다. 가후는 벌써 세 번이나 옮긴 셈이었다. 물론 가후는 그 세 조직에서도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는 오너나 리더의 수준에 실망했다. 자신의 계책과 전략을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는 조직에서 가후는 시간을 낭비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가후는 네 번째 조직을 찾는다. 바로 남양의 장수다. 장수는 지역 맹주. 그는 가후의 능력을 알아보았고 가후 역시 장수의 리더로서의 능력이 전 회사의 오너보다 뛰어남을 파악했다. 이때부터 가후는 장수를 도와 책사로 전국구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그 시작이 바로 조조와의 싸움이다. 천하 통일을 원하는 조조는 장수를 치기 위해 군대를 이끌고 호기롭게 출전한다. 천하를 생각하는 조조에게 장수 정도는 그야말로 소풍. 결국 자만심에 가득했던 조조는 가후의 계략에 말려들어 참패한다. 이 전투에서 조조는 아들 조안민, 조카 조앙 그리고 전위까지 잃고 겨우 목숨만 부지한다. 참패를 당한 조조는 물론이고 조조의 책사와 무장들에게 장수는 물론 가후도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조조는 천하 영웅. 장수와의 패전 후유증을 회복하고 조조는 원소를 공격할 준비를 한다. 당시 조조의 천하 통일에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원소다. 원소는 명문가 출신으로 강력한 세를 유지하고 있는 당시 중원의 최강자. 장수는 가후의 조언대로 유표와 동맹을 맺고 단단하게 자신의 영지를 지켰다. 이때 장수에게 원소와 조조에게서 동시에 사신이 당도한다. 자신과 동맹을 맺자는 것이다. 천하를 건 일전을 앞둔 원소와 조조에게 당시 장수의 존재는 필요한 세력이었다. 장수는 고민한다. 장수는 원소에게 마음이 차츰 가기 시작한다. 그것은 당연했다. 원소의 군대는 조조보다 몇 배나 강력했고 또 지배하는 영토 또한 조조보다 훨씬 넓었다. 눈에 보이는 세력으로 판단한다면 당연히 조조보다 원소에게 가는 것이 올바른 판단이겠지만 가후는 장수에게 조조에게 갈 것을 청한다. 가후는 장수를 설득했다. 조조가 황제를 볼모로 잡고 있으니 명분에서 앞서는 것이 첫째, 또 세가 부족한 조조에게 가는 것이 사람과 군사가 차고 넘치는 원소에게 가는 것보다 대접을 더 받을 것이며, 조조는 야망이 있기에 개인적 악연을 문제 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가후의 판단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조조는 장수와 가후를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아들과 조카 그리고 아끼던 장수까지 죽인 적장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겠지만 조조 역시 영웅으로서의 풍모를 보인 것이다.

다섯 번째로 무리를 옮기고 나서 가후는 진짜 실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새로 옮겨온 무리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가득했다. 순유와 순욱은 물론이고 정욱과 곽가, 양수 등 천하의 기재들이다. 그중 핵심은 순욱이었다. 순욱은 조조를 모시고 있지만 한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 살아 있고 정도와 신의를 중히 여겨 조조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순욱의 눈에 동탁, 이각, 각사, 단외, 장수를 거쳐 조조에게 귀순한 가후는 주인을 바꿀 수 있는 가벼운 모사꾼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처럼 질투와 무시 속에서도 가후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간다. 그러다 가후가 본격적으로 솜씨를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 바로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이다. 조조와 원소는 장기전으로 접어들고 조조군은 점차 사기도 군량도 떨어지고 있었다. 고민하던 조조는 가후에게 방법을 물었다.

가후는 조조를 설득했다. “승상께서는 원소에 비해 비범하고 용맹하며 결단력도 있어 필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단지 신중한 나머지 시간을 허비하고 있습니다.” 가후의 이 말을 들은 조조는 별동대를 조직해 원소를 기습한다. 이 전투로 원소는 재기불능에 빠지고 중원의 패권은 조조에게 기운다. 사실 가후의 계책은 별것 아니었다. 제갈공명처럼 군사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가후는 조조의 성품을 잘 알고 있었다. 즉, 가후는 조조의 기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습 공격을 생각하고 고민하는 조조에게 자신감을 심어 준 것이다.

이처럼 가후는 조조에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때 간접 화법을 사용했다. 그것은 타고난 성품도 있었지만 상사에게 직접적이고 단정적인 설명이 주는 장점과 함께 조언과 계략이 들어맞지 않았을 때 닥쳐올 부작용, 즉 실패에 대한 희생양으로 죽어 간 수많은 사례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는 손권을 정벌하기 위해 대군을 동원했다. 오나라와 촉나라는 적벽에 방어선을 펼쳤다. 당시 조조는 이를 가볍게 여겼다. 하지만 가후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신중론을 주장했다. 조조 휘하의 모든 무장과 참모들이 100만 대군을 휘몰아쳐 유비와 손권을 쓸어 버리자고 한목소리로 큰소리를 칠 때 가후만이 반대를 한 것이다. 조조는 가후의 간언을 무시하고 100만 대군을 휘몰아 적벽으로 향했다. 하지만 제갈공명과 주유의 용병술에 대패하고 조조 역시 겨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 적벽대전의 결과 위, 촉, 오의 삼국이 정립하게 되었다.

▶남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하지 마라

조조는 허망했다. 그는 “내 옆에 곽가만 살아 있었어도 내가 이 꼴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는 조조가 죽은 책사 곽가를 그리워하는 모습이지만 실상은 자존심 강한 조조가 가후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조조는 위왕의 자리에 오르고 후계자를 논하는 시점이 다가왔다. 조조의 후계자는 장남 조비와 셋째 조식이 있었다. 그는 우직한 조비와 살가운 조식 사이에서 고민했다. 조조가 가후를 불러 조용히 물었다. “누구를 후계자로 삼으면 좋겠는가?” 가후는 답하지 않았다. 함부로 다음 대권에 관해 의견을 제시하는 것은 목숨과 바꾸는 말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조가 재차 묻자 가후는 이렇게 답한다. “잠시 원소와 유표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조조는 “경은 항상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는구나. 무슨 뜻인지 알겠다”고 답했다. 당시 가후는 조비의 참모였다. 당연히 조조의 물음에 “조비”라고 답할 수 있었겠지만 가후는 신중했다. 자신의 능력과 재치를 드러내고 싶은 유혹보다 더 무서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미래 전략과 극비 프로젝트도 그렇지만 특히 인사 문제에 있어 상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비밀이 없기 때문이다. 비록 당사자를 승진시키는 경우라도 오해의 소지가 있는데 누군가를 탈락시키거나 좌천시키는 인사에서 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회사의 결정으로 발표되지만 당사자는 누군가를 원망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본능이 있기 때문이다.

가후는 조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조비는 가후에게 모든 것을 상의했고 가후는 조비에게 조조의 마음을 움직이는 꾀를 알려주었다. 조조가 군대를 몰고 출전할 때마다 조비에게 아무 말 없이 그저 말고삐를 잡고 눈물을 흘리라고 조언했다. 자신이 출전할 때마다 한결같이 눈물을 흘리는 조비를 보면서 조조의 마음도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조비가 조조의 후계자가 된다. 가후는 상황 판단과 정세를 분석하는 능력에서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가후의 가장 큰 장점은 그의 능력이 아니었다. 절개를 지키고 신의를 목숨처럼 생각하는 곧은 선비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이 단점으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물처럼 유연하게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융통성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가후는 자신이 나설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공을 다투는 자리에는 나서지 않았고 위로는 순응하고 옆으로는 시기와 질투를 경계해 인맥을 형성하는 등 세를 과시하지 않았다.

가후는 자식들의 결혼도 조심했다. 권문세가의 요청에도 가후는 낮은 벼슬 그리고 평범한 집안과 사돈을 맺으면서 사람들에게 경계심을 심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큰 목소리를 내거나 고집을 부리지도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 행위를 남자다움 혹은 선비의 자세 그리고 자존감의 표현이라고 말하지만 가후는 그것을 쓸데없는 만용이라 생각했다. 조직의 논리와 상사의 뜻이 일치되어 갈 때는 그것이 비록 돌아가는 길일망정 급하게 물길을 바꾸려는 무모한 짓을 하지 않았다.

충성심과 절개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 가후다. 하지만 가후는 자신이 누군가의 신하로 있는 순간에는 최선을 다해 그를 모셨다. 동탁의 경우는 직접 휘하에서 지휘를 받은 것도 아니었고, 이각과 곽사는 오히려 가후의 능력 자체를 버거워해 그를 부하로 삼을 수 있는 그릇이 아니었다. 단외나 장수 역시 마찬가지였고, 조조만이 가후를 알아보고 부릴 수 있었다. 가후는 항상 ‘우리’를 먼저 생각하며 공을 다투지 않았고 상사에게 거역하거나 반항하는 이미지를 주지 않았다. 또한 작은 인연을 크게 만들어 인맥을 형성하지 않았고 누군가를 독한 말로 상처 주지 않았으며,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남에 대한 평가를 쉽게 하지 않았다. 이는 바로 나만, 내 생각만, 내 이익만이 아닌, 나와 네가 그리고 전체가 같이 가는 공존의 미덕이다.

직장은 도를 닦고 각성하거나 철학적 관념에 빠지는 곳이 아니다. 직장은 오로지 과정을 통해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하는 공장이다. 지금, 당신의 상사가 당신을 야단치거나 업무에 대해 깐깐하게 지적질을 한다면 걱정을 덜고 안심하라. 그것은 당신의 존재와 당신이 일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시그널이다. 오히려 당신에게 무관심하거나 새로운 일에 대한 지시가 끊기거나 ‘오피셜한’ 관계가 예의와 질서 하에 이루어진다면 긴장해라. 상사는 혹은 직장은 당신에 대한 발전 가능성과 조직원으로서의 자격을 이미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74호 (21.04.1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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