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예술의 한 장르로 존중받는 '그래픽 노블'

임유정 2021. 4. 1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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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와 소설 중간에 위치한 그래픽 노블

프랑스어로는 BD(Bande Dessinée)라고 불러

역사가 긴 시리즈도 많아... 3대째 수집하는 프랑스인도 있어


'그래픽 노블(Graphic Novel)'이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지는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그래픽 노블은 프랑스어로 'Bande Dessinée(BD)', 한국어로는 단순하게 '만화'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래픽 노블을 단순히 만화라고 부를 수는 없다. 많은 양의 잉크를 흡수할 수 있는 두꺼운 종이로 엮어진 책은 묵직하고, 책을 펼쳐보면 소설만큼 글이 많다. 필자도 프랑스에 오기 전엔 그래픽 노블의 개념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이해를 위해 그래픽 노블의 속이 어떻게 생겼는지 사진을 준비했다. 


만화와 소설 중간에 위치한 책이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그림을 바탕으로 글이 빼곡히 적혀있다. 그래픽 노블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할아버지부터 아버지를 거쳐 3대째 그래픽 노블을 수집하는 에웬 샤펠(27)씨에게 물었다. 에웬 씨는 일반 소설과 그래픽 노블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그림이 있다'라는 점을 들었다. 



◆프랑스 대형마트 서적 코너에 진열된 그래픽 노블 ⓒ임유정


에웬씨는 "소설은 작가가 오로지 글로만 의도를 표현할 수 있어요. 그래서 독자가 글을 읽으며 각자 상상해야 하죠. 상상력을 자극해 준다는 점에서 소설은 장점도 있지만 작가의 의도가 온전히 전해졌다고 하기가 어려워요. 중간중간 삽화가 들어간 소설도 있지만 그래픽 노블은 매 장면 삽화가 있는 셈이에요. 그래픽 노블은 창작가가 글과 그림으로 원하는 바를 풍부하게 표현하는 장르예요. 그래서 독자들이 창작자의 의도를 100%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설명했다. 


만화와 소설 중간에 위치한 그래픽 노블은 프랑스에서 예술의 한 장르로 존중받는 문화다. 그래서 프랑스에선 크고 작은 그래픽 노블 축제들이 연중 내내 열린다. 작게는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생 말로에서 열리는 '께 데 뷸(Quai des bulles)'이 있다. 그래픽 노블의 말풍선이 방울처럼 생겼다고 해서 '뷸(bulles)'이라는 단어가 축제 이름에 들어가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큰 그래픽 노블 축제는 '앙굴렘국제BD축제'다. 매년 1월 프랑스 남서부인 누벨-아키텐주의 앙굴렘에서 열린다. 앙굴렘은 파리와 스페인 국경 사이에 위치해있으며, 인구는 4만 명이 조금 넘는 소도시다. 


2017년엔 이 축제에서 한국인이 첫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앙꼬 작가의 <나쁜 친구>가 프랑스에서 출간한 작품이 세 권 이하인 신생 작가에게 주어지는 '새로운 발견상'을 받았다. 앙꼬 작가의 <나쁜 친구>는 2012년 8월 출간된 B5 사이즈 만화로 총 18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다. <나쁜 친구>는 앙꼬 작가의 자전적인 만화로 중학교 3학년부터 작가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프랑스인들의 그래픽 노블 사랑은 일상생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다. 프랑스 대형마트의 서적 코너, 대형 서점 등에서 상당한 부분을 그래픽 노블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픽 노블만 취급하는 전문 독립 서점도 쉽게 볼 수 있다. 서점에서는 신간 그래픽 노블이 나오면 큰 포스터, 소품 등으로 홍보하고 잘 보이는 곳에 전시한다. 


장수하는 그래픽 노블 시리즈의 경우에는 만화가가 교체되면서도 꾸준히 신작이 나온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아스테릭스> 시리즈는 1959년부터 지금까지 60년 넘게 출간되고 있다. <아스테릭스>는 르네 고시니(René Goscinny)와 알베흐 위데조(Albert Uderzo)가 1959년부터 집필했다. 르네는 첫 출간일부터 1977년까지 줄거리를 맡았고, 알베흐는 2009년까지 그림을 맡았다.  


<아스테릭스>는 기원전 50년 한 갈리아족(골족)의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갈리아족은 약 기원전 5세기부터 서기 5세기까지 현재의 프랑스 영토에 살았던 민족이다. 덩치는 작지만 마법의 약을 마시면 힘이 세지는 '아스테릭스'와 큰 덩치로 로마군의 공격을 막는 '오벨릭스'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스테릭스>를 콘셉트로 한 놀이공원도 파리 외곽에 위치해있다.


◆그래픽 노블로 가득한 에웬 샤펠씨의 책장 ⓒ임유정


필자가 어렸을 땐 '만화책을 본다'라고 하면 어른들이 '공부는 안 하고 만화나 본다'라며 다소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래서 에웬 샤펠 씨에게 언제부터 그래픽 노블을 접하게 되었는지 물었다. 그는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 생일 선물로 그래픽 노블을 받았어요. 할아버지 집에도, 아빠의 서재에도 그래픽 노블이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읽게 되었죠. 그래픽 노블은 세대 간의 공감대를 만들어줘 그들과 그래픽 노블을 주제로 소통할 수 있게 해 줬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래픽 노블의 역사에 대해 묻자 그는 "그래픽 노블은 최근의 유행이 아니라 긴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어요. 2차 대전 후 'BD 프랑코-벨쥬'라고 부르는 시대가 있었어요. 프랑스어권인 프랑스, 벨기에 등에서 새로운 그래픽 노블이 쏟아진 때죠. <스머프(1957)>, <아스테릭스(1959)> 등이 나의 할아버지 세대에 탄생했어요. 그때 시작된 그래픽 노블 유행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어릴 때 선물로 받았던 그래픽 노블을 보관하고, 더 나아가 직접 수집에 나선 에웬 씨에게 그래픽 노블의 매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그래픽 노블은 마감일이 있는 만화가 아니에요. 주간 만화, 월간 만화가 아니라 창작가가 오랜 시간을 들여 세상에 낸 창작품이에요. 그래서 창작자가 들인 시간과 정성만큼 양질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또 "좋은 이야기를 글로 읽는 것도 좋지만 창작자가 머릿속으로 어떤 그림을 그리며 그 이야기를 구상했는지도 궁금할 때가 있어요. 그래픽 노블은 바로 그 갈증을 채워줘요"라고 덧붙였다.


서재 한편이 그래픽 노블로 가득했던 에웬 씨와의 대화로 프랑스인이 왜 그래픽 노블에 매력을 느끼는지 알 수 있었다. 곧 한국에서도 그래픽 노블이 프랑스처럼 대중적인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바람이 있다. 기사를 읽고 그래픽 노블에 흥미가 생긴 분들을 위해 <앙굴렘국제BD축제>에 후보·수상작으로 오른 한국 작가들의 그래픽 노블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무리한다. 


2012년 출간된 앙꼬 작가의 <나쁜 친구>는 작가의 사춘기 시절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총 180페이지 만화다.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줘 앙굴렘국제BD축제에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새로운 발견상'을 받았다.


2017년 출간된 송아람 작가의 <두 여자 이야기:대구의 밤 서울의 밤>는 2019년 앙굴렘국제BD축제에서 일반경쟁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대구에 사는 한 여자와 서울에 사는 한 여자의 다른 듯 비슷한 삶을 보여준다. 특히 한국의 '시댁 문화', '개인의 꿈과 가족 사이에서의 갈등'을 신선하게 그렸다.


박윤선 작가의 <홍길동의 모험>은 2019년 앙굴렘국제BD축제에서 어린이 만화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홍길동의 모험>은 어린이들을 위한 60페이지의 단편 만화로 한국인이라면 다들 아는 <홍길동전>을 모티브로 한다.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후 한국에는 2020년에 출간됐다.


프랑스 푸제르 = 임유정 글로벌 리포터 lindalim531@gmail.com


■ 필자 소개

경북대학교 신문방송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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