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김태현 범죄 보도와 사이코패스 타령 / 권김현영

한겨레 2021. 4. 13. 14:16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세상읽기]

권김현영 ㅣ 여성학 연구자

세 모녀를 살해한 김태현 사건의 범죄 보도를 읽으면서 의문이 들었다. 특히 김태현 사건 이후 여성들이 택배상자를 통해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휴대용 문서파쇄기, 물파스 등 개인정보를 지울 수 있는 팁을 공유한다는 기사는 전후 관계가 맞지 않았다. 택배상자에서 개인정보를 제거하고 분리배출을 하는 것은 여성들에게는 이미 오래된 상식이다. 안심문자를 설정하고 이름을 바꾸고, 현관에 남자 신발을 두고, 택배기사가 간 이후에 문을 여는 것 등은 여성을 위한 생활정보로 공유된 지 오래다. 그런데 왜 이런 내용이 새삼스럽게 다시 인기 있는 기사가 되는 걸까. <한겨레>의 송경화 기자는 페이스북에 김태현이 택배기사를 단순 사칭하는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문 앞에 두고 간 상자를 들여놓으려 할 때 침입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바로 이런 정보가 필요했다. 택배기사를 사칭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서 침입하게 되었던 것일까. 택배 배달을 받을 때 내가 아는 한 대다수의 여성들은 문 앞에 두고 가라고 한 다음, 바깥에 사람이 없는지를 확인하고 문을 열어 택배 물건을 집 안에 들인다. 김태현 역시 택배기사라며 벨을 눌렀지만 문을 열어주지 않자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택배기사를 가장했다는 말은 단순히 정황을 묘사한 것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택배 물건을 앞에 두고 문이 열릴 때까지 기다렸다면 그것만으로도 고의성과 계획성을 확증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정보는 조심하면 괜찮다는 것이 희망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려준다. 여자들이 더 조심해야 하는 방향이 아니라, 왜 이 정도로 조심해도 안전할 수 없는지가 문제의 초점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범행 동기의 경우도 여성들이 나서서 문제를 바로잡았다. 이 사건의 초기 보도는 대부분 이웃 주민들의 말을 빌려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벌인 사건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서 스토커일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이후 조사 과정에서 연인관계였던 적이 없는 것으로 사실관계가 바로잡혔다. “왜 안 만나줘…범인은 헤어진 전 애인”이라는 헤드라인을 습관적으로 쓰면서 사건의 고유한 맥락을 삭제하고 사회적 의미를 개인 간의 치정 문제로 축소하는 보도 관행에 대해 돌아봐야 할 지점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사건과 관련해서 가장 많이 나온 보도는 신상공개 여부와 사이코패스 여부이다. 이름이 공개되고 포토라인에 선 김태현이 무릎을 꿇고 반성한다고 한 장면이 집중적으로 보도되었는데, 이 장면을 본 범죄심리학자들은 이 행동 자체가 예외적이고 매우 연극적이라고 봤다. 대중 역시 속지 않았다. 그러고 난 다음 이어진 보도는 그가 사이코패스인지 아닌지에 대해서였다. 이것은 전문가가 판단할 영역이다. 사이코패스 진단 기준은 대중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건 극히 일부에 불과하고, 모방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도 그게 맞다. 그렇다면 왜 사이코패스 여부가 이 정도로 중요한 기사가 되어야 하고 대중 지식이 되어야 하는 걸까? 사이코패스라는 진단은 범죄를 저지르는 당사자를 해방시켜줄 뿐이 아닌가. ‘원래 그렇게 타고난’ 범죄자를 무슨 방법으로 교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사이코패스 여부에 대해서는 전문가의 영역으로 남겨두자. 우리가 알고 싶은 건 사이코패스 타령이 아니다.

이 사건은 스토킹 범죄가 어떻게 지속되고 반복되며 점점 더 폭력적이 되어가는지를 잘 보여준다. 범행 직후 김태현은 피해자의 휴대전화에서 1월23일에 함께 있었던 2명의 지인을 검색해 이들의 번호를 차단하고 친구 목록에서도 삭제했다. <스토킹>의 저자 브랜 니콜은 “우리는 낯선 사람들과 친해질 권리가 있고 그들에 대한 정보를 알 권리가 있다”고 확신시키는 현대 사회가 스토킹을 심각한 범죄로 인식하지 못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연예인의 뒷조사를 공공연하게 하고, 사생활을 침해하는 일이 지금도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고 있다. 그레타 가르보는 죽기 전 11년 동안 테드 레이슨에게 스토킹을 당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테드 레이슨은 그레타 가르보의 은퇴 후 일상을 몰래 찍는 파파라치 정도로 취급되었지 심각한 범죄자로 생각되지는 않았다. 한국에서 스토킹 범죄는 경범죄였다가 2021년 3월에야 형사법적 처벌을 받는 범죄로 법 개정이 되었다. 세 모녀의 죽음은 이 오래된 방조의 결과다.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