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내 집 마련' 도울 수 있을까
(시사저널=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수석연구위원)
2015년 이후 주택 가격이 가파르게 상승했다. 많은 사람이 주택 가격 폭등을 가져온 중요한 원인을 정책으로 생각하고 있다. 통계를 보면 현 정부 시기에 집값 상승폭이 더욱 커진 것으로 나타난다. 수많은 대책을 쏟아내고도 집값을 안정시키지 못했으니 비판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정말 집값 폭등이 전적으로 정부의 정책 때문일까'라는 문제는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정부에 책임을 돌리기 전에 주택 가격은 왜 움직이는지에 대한 답을 먼저 찾아보자.
가격은 공급량과 수요량이 같아질 때 결정된다. 그렇다면 주택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이 상승하게 된다. 그리고 공급에 비해 수요가 많은 경우도 가격이 상승한다. 한국 주택 가격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의 결론은 공급이 부족했기 때문에 집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대다수 전문가가 주택 공급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정부 주택 공급정책, 갭투자로 속수무책
그렇다면, 두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집이 언제 풍족한 적이 있었는가. 2015년 이후 갑자기 집이 부족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주택 가격이 폭등한 원인을 공급 부족에서 찾는다면 이 두 가지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집은 항상 부족했고 2015년 이후에도 주택은 지속 공급됐다. 심지어 2015년 이후에 역대 최대 수준의 아파트가 공급됐고 입주 물량도 지속 증가했다. 앞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아니 지금은 왜 올랐는지를 찾는 시간이다.
공급과 비교해 수요가 많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주택 수요는 실수요와 투자수요로 구분할 수 있다. 갑자기 인구가 증가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수요가 증가했을 가능성은 작다. 그렇다면 투자수요는 어땠을까. 투자 목적으로 집을 매수한 다주택자 현황을 보면 2013년 169만 명에 불과했으나 2019년에는 228만 명으로 6년 동안 59만 명 증가했다. 집을 3채 이상 보유한 다주택자도 약 15만 명 이상 늘었다. 집값이 상승하는 기간에 투자 목적으로 집을 한 채 더 산 사람이 매년 10만 명씩 증가했다(다주택자도 실수요자라고 말하는 분들도 있다. 물론, 아파트 두 채에 일주일씩 번갈아 가면서 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2018년부터 2020년 8월까지 신고된 서울 주택매입 자금조달계획서 60만 건을 분석해 보면 약 42%가 임대 목적으로 집을 매수했다. 쉽게 이야기해서 상당수가 갭투자(전세를 이용해 주택 매수)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경제 위축이 우려되자 한국은행이 두 차례나 금리를 인하했다.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 수준으로 내려가자 사람들은 대출을 일으켜 집을 사기 시작했다. 금리가 내려가서 증가하는 주택 수요는 실수요보다 투자수요일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가 한 채를 더 사고, 전세를 이용해 갭투자하고 금리가 인하되면서 집을 투자 목적으로 매입하는 사람이 많아지자 집값은 폭등했다.
다른 상품과 달리 주택은 소비할 수도 있고 투자할 수도 있는 독특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비교하자면 주식은 소비할 수 없고 투자만 가능하다. 투자의 대상이 되는 상품은 현재 가격 수준보다 앞으로의 가격 전망이 수요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 때문에 주택 가격이 일단 상승하기 시작하면 수요가 더욱 늘어나는 현상을 보인다. 흥미로운 사실은 주택 가격이 상승하면 공급이 줄어들게 된다는 점이다. 집을 보유한 사람이 집값이 오르면 오히려 매물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매도 물량을 간접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거래회전율(실거래가격 공개 단지별 거래 건수를 해당 단지의 세대 수 총합으로 나눈 비율)을 살펴보면 가격 상승 기간에 빠르게 하락한다. 2015년 서울 거래회전율은 9.8%로 100채당 9.8채가 거래된다. 이후 지속 하락하다가 2020년에는 5.62%를 기록했다. 거래회전율 하락은 집을 보유한 사람들이 집을 안 팔았다는 의미다. 빠르게 증가했던 투자수요와 매도 물량 감소가 단기간에 집값을 폭등시킨 원인이다.
결국 최근 주택 가격을 빠르게 상승시킨 원인은 투자수요에 있다. 그렇다면 정책은 투자수요를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을까. 투자수요를 억제하기 위해 정부가 가장 먼저 쓴 정책은 대출 규제다. 특히, 가격대를 기준으로 대출을 규제했다. 그 결과 규제가 낮았던 9억원 이하 아파트 가격이 더 가파르게 상승했다. 또한 2금융권과 P2P 대출 등을 통한 우회 대출이 크게 증가했다. 대출 규제가 투자수요를 줄이는 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올해부터 세금 활용한 투자수요 본격 억제
세금을 통해 투자수요를 규제했다. 취득세, 보유세, 양도세를 과거보다 크게 강화했다. 그러나 투자수요를 억제할 만큼 강력하지 못했고 더욱 강화된 세금은 2021년부터 적용되기 시작한다. 세금을 통한 투자수요 억제 정책이 실패했다고 하지만 본격적으로 강화되는 건 사실 올해부터다.
우리는 자주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를 혼동한다. 더운 여름에 아이스크림과 에어컨이 잘 팔린다. 기온 상승과 아이스크림 판매량, 에어컨 회사 매출은 모두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인과관계는 다르다. 더워져서 아이스크림과 에어컨이 잘 팔리는 것이지 아이스크림이 잘 팔려서 에어컨 회사 매출이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집값이 급등하는 시기에 정부 정책이 20번 넘게 발표됐다. 분명히 상관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정책 때문에 집값이 급등했다는 이야기는 아이스크림이 잘 팔려서 에어컨도 잘 팔린다는 이야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투자로 세상을 본다면 인과관계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왜 집값이 올랐는지에 대한 명확한 판단과 기준이 필요하다. 그래야 전망도 가능하고 올바른 시민의 권리도 행사할 수 있다.
정치가 바뀌어도, 정책이 변화해도 투자수요를 줄이지 못한다면 절대 집값은 안정될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부터 21번에 걸친 정책으로 부동산 규제를 풀고 집을 살 때 대출을 완화해 줬다. 심지어 빚내서 집을 사라고 주무장관이 이야기하기도 했다. 반면 당시 주택 가격은 상당히 안정됐다. 그렇다면 빚내서 집 사라는 정책이 집값을 안정시켰던 원인이었을까. 아무리 집을 사라고 해도 투자 목적으로 집을 사지 않았기 때문에 집값이 상승하지 못했던 것이다.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수요가 집값을 변동시키는 가장 강력한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전망도 어렵지 않다. 다음에는 투자수요에 대한 전망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려고 한다. 과연 앞으로 투자수요가 증가할까, 감소할까. 독자 여러분도 진지하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좀 어렵다면 질문을 좀 바꿔도 좋다. 내가 돈이 있다면 지금 투자 목적으로 즉, 돈을 벌기 위해 집을 한 채 더 살까. 이에 대한 필자의 답은 한 달을 더 기다려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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