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정치적 중도층의 응징 매서워졌다

기자 2021. 4. 1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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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강흠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4·7 선거에서 팬덤정치 無力

1980 이후 출생자 상당수 中道

與野 아니라 잘잘못 따져 투표

세대별 역할 인정한 포용정치

공정성 정당성 효과성을 지향

편파 편법 편협한 정치는 거부

여권 출신인 전임 서울·부산 두 시장의 성추행 관련 불명예 퇴진으로 치러진 4·7 선거에서 야당인 국민의힘이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대선-지방선거-총선에 이은 참패를 상기하게 하는 사건이다. 집권 여당은 ‘불미스러운 일로 사퇴하면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의 규정을 바꾸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두 시장 자리에 연연하다 결국은 명분도 실리도 잃고 실정(失政)에 실망한 적극적 중도층의 존재만 확인했다.

전국 각지에서 상경했거나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 사람들의 서울시장 보선 결과로 중도층의 규모와 특성을 가늠해 본다. 오세훈 시장이 직전 총선에서 패배한 광진구를 포함, 서울시 전역 25개 구 모두에서 앞서며 큰 표 차이를 보여 언제든 표심을 바꿀 수 있는 중도층의 두꺼움이 느껴진다. 세대별로는 40대 남성과 20대 여성을 제외한 모든 세대에서 오세훈 시장이 더 많은 표를 얻었다. 특히, 20대 남성에서 젊을수록 진취적인 진보정당을 지지한다는 속설이 깨졌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난 세대의 상당수가 중도 성향으로 추정된다. 잘잘못을 따지지 않고 옳고 그름에 상관없이 무조건 지지하는 팬덤(fandom)만으로는 장기 집권이 어려움을 시사하기도 한다.

중도층을 중도파로 분류해 정치적 이슈마다 중간적 입장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이슈에 따라 진보 또는 보수의 선택적 결정을 하다 보니 평균적으로 중도파가 됐을 뿐이다. 이슈와 무관하게 이념과 진영에 따라 무조건 지지하는 팬덤이 외려 더 소극적인 태도다. 언제나 중간 입장에 서는 중도파는 대개 선거에 불참하므로 누구의 호응도 받지 못하는 중도 입장의 선거 전략은 실패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언어학자 조지 레이코프는 보수나 진보를 고수해 지지층 이탈을 막고 ‘선거 전략 프레임’으로 중도층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권한다. 정책·인사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보선 패배에 대한 국민의 질책은 엄중히 수용하되 정책 기조는 유지하겠다는 청와대의 발언 의도가 설명되는 전략이다.

하지만 개별 이슈에 대한 이념의 진정성에 더해 이념을 구현하는 과정의 공정성과 합리성, 결과의 정당성과 효과성에 가치를 두는 교육 수준이 높은 적극적 중도층을 언어적 유희만으로 계속 사로잡긴 어렵다. 적극적 중도층은 이념에 상관없이 자신의 가치를 훼손하면 여야 불문하고 응징할 준비가 돼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국정농단, 이명박 전 대통령의 ‘다스’ 소유권과 특수활동비 사건에는 보수 진영을 응징했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의 대립 구도 조장, 주택정책 실패와 공시지가 대폭 상승,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을 비롯한 공직자의 땅 투기와 권력층의 임대차 3법 시행 직전 임대료 대폭 인상에는 진보 진영을 응징했다.

정책 대결은 뒷전이고, 반사이익으로 권력이 이동하다 보니 상대방의 치부를 들춰내 여론화하는 네거티브 정치가 판을 치고, 협치(協治)는 보이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적폐청산에 집착하다가 국민 갈등과 국론 분열로 사회적 스트레스를 키워 중도층의 포용 정치에 대한 기대를 외면했다. 관용과 포용, 화합은 제스처도 없었고, 국회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한 이후에는 상임위원장 독점, 법안의 단독 통과 강행, 회전문 인사와 인사청문회 무시로 밀어붙였다. 정치인이 걸핏하면 들먹이는 ‘국민’은 전체 국민이 아니라 ‘내 편’의 국민이었다. 내 가족·동료·지역·사람만 챙기다 보면 비상식적인 행동과 불공정한 처사로 적극적인 중도층의 징벌을 마주하게 마련이다.

보궐선거 직후, 여야 모두에서 초선 의원들이 내부 저항을 극복하고 정당의 쇄신을 촉구하고 나섰다. 상대를 무시하는 구태의연한 정치 행태로는 중도나 청년층의 마음을 확고히 잡을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내부 저항이 거센 것을 보면 협치는 여야를 넘어 당내에서 더 필요해 보인다. 포용 정치를 수용하려면 세대마다 시대에 맞게 독립운동, 자유국가 수호, 산업화 역군, 민주화 운동 등으로 나름의 역할과 책임을 다해 지금의 자랑스러운 자유민주국가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여야를 막론하고 팬덤에 의존해 편파적이고, 편법적이며, 편협한 정치를 일삼으면 나라의 파수꾼인 적극적 중도층의 응징만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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