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와 SK의 ‘세기의 배터리 소송’… 2조원짜리 ‘지재권 보호’ 학습 기회 [송의달 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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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와 SK간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소송이 이달 11일 막을 내렸다. 2019년 4월29일, LG에너지솔루션(당시는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에 2차전지 영업비밀(trade secrets) 침해로 소송을 제기한지 만 2년여 만이다.
이번 분쟁은 국내 5대 그룹의 주력 기업들이 외국에서 정면 충돌한 사상 초유의 소송으로 배상금 액수가 조(兆) 단위에 달해 ‘세기(世紀)의 소송'으로 불렸다. 2조원 규모의 합의금은 2000년대 들어 영업비밀 관련 소송에서 세계 최대 규모로 평가된다.
작년 2월 ITC가 SK측에 ‘조기(早期) 패소’ 판결을 내림으로써 소송전의 승패는 일찌감치 기울었지만 올해 2월10월 ITC의 확정 판결 이후에도 두 회사는 치열한 신경전을 폈다. 이 과정에서 캐서린 타이(Katherine Tai·47)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압박성 중재’가 작용해 배상금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적 이목을 집중시켜온 ‘배터리 분쟁'의 의미와 우리 산업계가 얻을 교훈은 무엇일까.
◇소송 진행 후 ‘K배터리’ 세계 점유율 16→34%로 상승
먼저 국내 대기업 간 분쟁이 ‘K배터리’ 성장을 가로막는 ‘독(毒)’이 돼 중국 업체를 키워준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왔지만 글로벌 시장분석 기관인 ‘SNE 리서치’ 자료를 보면 실상은 정반대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K배터리' 3사의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 합계가 2019년 16.0%에서 지난해에는 34.7%로 2배 넘게 상승했기 때문이다.
반면 CATL, BYD 등 중국 업체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44.3%에서 37.5%로 감소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LG-SK의 소송과 별개로 K배터리 기업들이 배타적이고 편향된 보조금 정책을 펴는 중국 대신 유럽과 미국 시장을 적극 공략한 결과”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유럽 등의 배터리 기업과 K 배터리 3사와는 기술 격차가 제법 크다. 예컨대 중국의 CATL은 에너지 밀도가 높은 하이니켈(high nickel)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보다 기술력이 떨어진다. 폭스바겐과 합작법인을 설립 중인 스웨덴의 노스볼트(Northvolt)는 수년 내로 양질의 배터리를 직접 만들어 배터리 생산의 유럽화를 공언하고 있으나 아직 제대로 된 기술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상황에서 LG와 SK간의 영업비밀 소송과 그 여파로 높아진 지적 재산권 보호의식이 한국 업계에 ‘득(得)’이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홍대순 글로벌전략정책연구원장은 “기술 격차 축소를 위해 한국의 숙련된 인재와 영업비밀을 확보하려는 중국과 유럽 기업들에게 이번 ITC 판정과 거액의 합의금은 강력한 경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ITC는 지난달 공개된 판결문에서 “SK이노베이션이 LG로부터 훔친 22개의 영업 비밀이 없었다면 현재 배터리 기술력을 갖추는데 최소 10년이 소요될 것”이라며 ’10년 수입 금지'를 결정했다. 지식재산권을 도용(盜用)하는 기업은 누구라도 글로벌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중국, 한국보다 지재권 침해에 더 강력 응징
두 번째로 눈여겨 볼 것은 전기차 배터리 분야 후발 주자인 중국도 지식재산권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는 사실이다. 중국 정부는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권 고의(故意) 침해 행위에 대해 실질 손해의 ‘최대 5배’까지 청구할 수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골자로 한 특허법을 최근 마련했다. 이는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 청구를 규정한 한국 보다 더 강력하다.
중국 상무부는 또 2019년 11월1일부터 징벌적 배상을 통한 외국인 지식 재산권 보호 강화와 외국인 영업비밀 보호를 위한 행정조치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외상투자법 실시조례를 공표했다. 이는 지식재산권 보호가 중국의 배터리 기술력을 강화 또는 보호하는 유력한 방도라는 판단에서다.
손승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중국은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가 영업비밀 및 특허권 보호를 직접 지시하고 있다”며 “우리 기업과 법원도 이번 세기의 소송을 계기로 ‘영업비밀 보호’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 중국 기업의 기술탈취 시도에 강력한 경고”
양사 간의 2년여 장기 소송으로 비용 낭비와 투자와 개발 활동이 등한시됐다는 일각의 지적도 제기됐다. 이와 관련해 ITC 최종결정 직후인 올해 2월 15일 공개된 강동진 현대차증권 애널리스트의 보고서가 눈길을 끈다. 그는 이 보고서에서 이렇게 밝혔다.
“배터리 분야는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이 쉽지 않아 기술보호가 매우 중요하고 핵심 기술을 영업 비밀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영업비밀 관리에 있어 핵심은 인력(人力)이다. 인력과 관련된 영업비밀 보호 차원에서 이번 ITC소송이 갖는 의미는 대단히 크다.”
강동진 애널리스트는 “배터리 산업 성장성과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LG에너지솔루션의 인력을 영입하여 배터리 시장에 진입하려는 경쟁자가 늘고 있다”며 “폭스바겐이 투자한 노스볼트(Northvolt)는 LG의 인력을 채용하여 배터리를 연구하고 있다고 홈페이지에 게재했다가 ITC소송 이후 홈페이지에서 이를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런 측면에서 LG와 SK간의 소송은 2년에 걸친 공방과 법률 비용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기술적 우위를 과시하고 장차 중국 및 유럽 기업의 영업 비밀 및 기술 탈취 시도에 쐐기를 박는 효과가 있다는 분석이다.
배상근 한국경제연구원 전무는 “세계적 실력을 갖춘 한국 배터리 기업들이 법률 소송 때문에 투자와 기술 개발을 등한시한다는 관측은 기업 현실에 무지한 기우(杞憂)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진행된 이번 소송이 원만하게 합의됨에 따라 LG와 SK 모두 바이든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 미국 시장 공략에 활로를 다진 것도 긍정적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소송 이후에도 미국 공장 증설 투자 등을 위해 각각 총 5조원 이상, 3조원 이상의 금액을 각각 투자한다고 밝힌 상태이다.
◇경쟁은 지금부터, 지재권 보호 강화해야
전문가들은 ‘K배터리’의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라고 말한다. ‘K배터리’ 기업들은 외국 경쟁사와의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지속적인 투자와 연구 개발을 해왔다. 그 결과 LG에너지솔루션은 2만 3610건, 삼성SDI는 2만 206건, SK이노베이션은 1781건의 특허를 확보했다. 반대로 중국 1위 기업인 CATL의 특허는 3000건 미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K배터리’가 글로벌 배터리 전쟁에서 이기려면 연구개발 및 투자와 더불어 ‘지식재산권 보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1886년 미국에서 처음 개발된 코카콜라는 130여 년 동안 맛의 비밀인 ‘Merchandise 7X’라는 원액제조법을 영업비밀로 보호받고 있다. 그만큼 영업 비밀은 브랜드 파워와 시장 지배력을 판가름짓는 병기(兵器)이다.
그런 점에서 LG와 SK의 세기의 소송은 한국 기업들에게 ‘상처’만 남겼다고 보는 것은 단견(短見)이다. 오히려 영업비밀을 포함한 지식재산권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면서 K배터리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유용한 ‘디딤돌’이자 ‘학습 기회’가 됐다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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