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연장은 왜 사회정의가 아닌가
현대차·기아차·한국GM 등 완성차 3사 노조 위원장들이 정년 65세 법제화를 요구했다. 현재 법정 정년은 만 60세 이상인데, 이를 5년 더 늘려 65세 이상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현재 현대차 정년은 만 60세다.
지난 수년간 현대차 노조(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사용자 측에 정년 연장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거부해왔다. 노사 자율로 해결이 안 되니 법으로 강제해달라고 노조는 요구한다.
왜 65세 이상인가? 국민연금 때문이다.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가 현재 만 62세에서 2033년 만 65세로 단계적으로 늦춰질 예정이다. 정년퇴직과 연금 수령 사이에 공백이 길어진다. 이상수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은 이렇게 말했다. “만 60세에 정년퇴직해 9개월 실업급여를 받고 나면 약 4년간 소득에 공백이 생긴다(정년퇴직은 비자발적인 퇴직이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노후가 불안정해진다.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국가는 노후에 도움이 될 거라며 국민연금에 가입시켜놓고 자기 마음대로 수령액을 깎고 지급 시기도 늦췄다. 우리 조합원들이 퇴직하면 6개월 동안 산에만 다닌다. 일반 사업체에서 일하려 해도 현대차 다녔다고 하면 안 받아준다고 한다. 고령자를 ‘하급 직원 취급하는 듯한’ 분위기 때문에 못 버티고 나오기도 한다. 정년 이후 노년의 삶에 대해 정부가 일자리 등 대책을 세워줘야 한다.”
‘은퇴 연령과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일치시켜야 한다’는 명제는 합리적이다. 그렇다면 당장 법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러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정년 연장은 정년까지 계속 일한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는 개념이다. 한국은 정년과 실제 퇴직 연령이 크게 괴리되어 있다. 55~64세 연령대의 사람이 가장 오래 근무한 일자리에서 퇴직할 때의 평균연령은 49.4세로 법정 정년인 60세에 한참 못 미친다(2020년 5월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고령층 부가조사〉). 5인 이상 사업장의 평균 근속연수는 6.7년인데, 기업 규모가 클수록 오래 다닌다(2019년 기준, 500인 이상은 10.7년). 정년제를 운영하는 사업체 자체가 전체의 21.6%에 불과하다. 300인 이상 기업일수록(92.8%), 노조가 있을수록(96%) 정년제 운영 비율이 높다(2020년 6월 고용노동부,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
이런 상황에서 정년 연장의 혜택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베이비부머 세대 중에서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을 11.4%로 추정한 연구도 있다(석재은·이기주, 〈베이비붐 세대와 정년 연장 혜택의 귀착〉, 2014). 앞서의 연구에 따르면 고학력일수록, 남성일수록, 100인 이상 기업에서 일할수록, 공공부문에 종사할수록, 노동조합이 있는 곳에서 근무할수록 정규직으로 생존해 정년 연장 혜택을 받을 확률이 높았다.
물론 소수의 혜택이라도 개인이나 특정 집단의 노후 대비 차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유례없는 고령화 속도를 생각하면, 정년 연장의 필요성은 분명하다. 그런데 만약 정년 연장이 청년고용을 줄인다면? 가장 논쟁적인 대목이다.
이와 관련, ‘고령층 고용이 늘어날 때 청년층 고용이 줄어든다’는 ‘세대 간 고용대체 가설’은 아직 논쟁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실증연구 결과도 팽팽하게 엇갈린다. 고령층과 청년층 간 직종 분업이 상당한 수준이어서(즉, 고령층과 청년층이 서로 보완되는 다른 노동을 하기 때문에), 양측의 고용이 대체 관계라기보다는 보완 관계라는 연구도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기업은 필요에 따라 사람을 뽑게 되어 있다. 필요한 인력을 제때 뽑지 못하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되기 마련이다. OECD도 2005년 ‘청년층과 고령층 간 고용대체론과 이에 따른 조기퇴직 권고’를 폐기한 바 있다”라고 말했다.
“신규 채용 안 하면 있는 사람이라도 연장하자”
그러나 정년 연장이 사실상 고용보호 수준이 높은 일부 사업장에만 적용되고, 이 사업장은 청년들이 선호하는 고임금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은 만큼, 청년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단정하긴 이르다. 이와 관련해서는 2016년부터 도입된 ‘정년 60세 이상’ 의무화의 영향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그전까지는 법으로 정년의 하한 기준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정년 연령이 주로 55세에서 58세 사이에 분포해 있었다.
예컨대 한요셉 KDI 연구위원의 실증분석 결과, 민간 사업체에서 정년 연장의 수혜자가 1명 증가할 때 청년고용은 평균적으로 0.2명가량 감소한 것으로 추정되었다(〈60세 정년 의무화의 영향:청년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2019). 이 연구에 따르면 사업체 규모가 클수록 정년 연장이 청년고용을 줄이는 효과가 크게 나타났다.
다시 현대차로 돌아오자. 현대차 생산직은 약 5만명에 달한다. 정년을 연장하면 신규 채용 여력이 줄어들지 않을까? 이상수 지부장은 “특히 자동차산업에서는 정년 연장과 신규 채용이 연관관계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800명, 올해부터 매년 2000명 이상씩 정년퇴직하는데도 회사가 신규를 사실상 뽑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공정을 계속 외주로 돌린다. 기존 사내하청 직원(약 9600명)을 정규직으로 특별채용하는 과정도 거의 끝났다. 그렇다면 노조가 정년 연장을 요구할 명분이 있지 않나? 만약 회사가 1년에 몇백 명이라도 신규 채용하겠다고 발표한다면, 노조 대의원들한테 욕을 먹더라도 내가 정년 연장 요구를 포기하겠다. 내 자식들이, 후배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서 오겠다는데 거기에 눌러앉아 안 비켜주는 건 도둑놈 심보니까. 그런데 회사는 신규 채용을 할 생각이 없다. 그럴 바엔 있는 사람들이라도 정년을 연장하자는 거다.”
현대차 관계자는 생산직 신규 채용 계획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다만 노조의 정년 연장 요구에는 난색을 표했다. “자동차 트렌드가 전기차로 바뀌고 있다. 전기차는 내연기관에 비해 작업공정이 단순하다. 엔진과 변속기가 없기 때문이다. 주된 생산 품목이 전기차로 바뀌면 그만큼 필요 인력이 줄어든다. 필요 인원이 줄어드는 규모가 정년퇴직하는 인원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본다.”
게다가 현대차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대차의 노동강도가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다.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현대차의 ‘편성 효율’이 50% 정도밖에 안 된다. 50명이 일해도 되는 공장에 100명이 투입되어 있다는 뜻이다. 일본의 도요타가 90%,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이 80% 이상인 데 비해 지나치게 낮다. 그만큼 과잉 인력이 투입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정리하지는 못하니 회사는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감소를 통해 경쟁력을 회복하려 한다. 노조가 무리한 욕심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노조도 전기차 시대의 필요 인력 감소를 부정하지는 않지만, 회사가 생각하는 규모나 속도보다는 적게 추정하는 듯하다. 노조가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또 다른 이슈는 이른바 ‘시니어 촉탁직’이다. 정년퇴직한 노동자가 1년간 계약직으로 일할 수 있게 하는 이 제도는 201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정규직 1년 차 연봉(세전 5000만원)을 받는다. 현대차 평균 연봉의 약 절반 수준이다. 그런데도 “(정년퇴직 노동자가) 100명이면 99명이 시니어 촉탁직을 한다.” 정년퇴직 노동자들의 호응도가 높다. 노조는 회사가 이 1년간만이라도 고령자를 촉탁직이 아닌 정규직으로 쓰길 바란다. 그렇다면 임금은? 조합원들의 여론을 물어서 사측과 임금협상하는 자리에 들고 가겠다는 게 노조의 계획이다.
“(지금 시니어 촉탁직이 받는) 5000만원도 시장임금에 비해 굉장히 높은 임금이다. 정년 연장을 요구하려면 임금피크제를 포함해 임금체계나 수준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야 한다. 최근에 ‘아이오닉 5’의 맨아워(생산라인 투입 인원수)를 노사가 협상하는 과정에서 공정이 중단된 적이 있는데, 말이 안 되는 일이다. 맨아워 산정 기준도 없이 노사가 힘겨루기로 결정하는 유일한 완성차 회사가 바로 현대차다. 맨아워 기준을 정립해 내부 노동력 활용도를 높이고, 전기차에 필요한 숙련을 쌓기 위해 재교육과 직업훈련도 받아야 한다. 노조 측이 회사가 자신을 계속 고용하는 것이 회사에도 이익이 된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여줄 수 있어야 그나마 정년 연장 요구가 말이 된다. 그러나 이 모든 것과 더불어 정년 연장이 논의되더라도 수용 가능성은 낮다.” 〈현대자동차에는 한국 노사관계가 있다〉를 쓴 박태주 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의 말이다.
그가 보기에 정년 연장은 현 시점에서 사회적 우선순위가 높지 않다. 디지털 전환과 기후위기 대응이 만나는 접점이 곧 전기차로의 전환인데, 전환 속도가 점점 빨라지면서 자동차산업 생태계 자체가 무너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노조 정도 되면, 기업 내부의 플레이어로서가 아니라 산업의 전환기를 책임지는 주체로서 나서야 한다. 쓰러져가는 부품사들을 위해 정부의 개입과 지원을 어떻게 끌어낼지 고민했다면, 정년 연장은 나올 수 없는 요구다. 그야말로 등 따신 사람들이 난로까지 껴안겠다는 얘기다. 한국 노동운동의 비극이다(박태주 전 상임위원).”
이상수 지부장은 “정년 연장을 이야기하면 ‘너네만 잘 먹고 잘살겠다는 것이냐’고 바라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대공장이 정년을 연장하면, 과거에 성과급이 전 사업장에 퍼진 것처럼 영세 사업장에도 자연스럽게 정년 연장이 확산될 수 있다”라고 주장했다. 청년실업 문제에 대해서는 “인공지능, 로봇, UAM(도심 항공 모빌리티) 같은 미래 분야에서 젊은 친구들을 뽑고, 기존 내연기관(과 전기차 생산라인)은 있는 노동자들을 쓰면 된다”라고 말했다. “청년 일자리와 노년 일자리는 구분된다. 젊은이들을 연봉 3000만원, 4000만원짜리 광주형 일자리로 몰고 가지 말고, ‘삐까번쩍하고’ 전도유망한 대공장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가게 해야 한다. 대기업과 정부가 방안을 잘 만들면 신규 일자리는 엄청나게 있다. 예컨대 (정년을 연장하는 대신) 61세 이상의 임금을 조금 깎아서 사업주 뱃속에 넣는 게 아니라 청년에게 주게 하자. 고임금 일자리에 청년을 고용하지 않는 기업에게는 법인세를 두세 배 올리면 어떤가.”
일본의 계속고용제 검토 중인 정부
그러나 연봉이 현대차의 반값이라는 광주형 일자리의 생산직 신입사원 채용 경쟁률은 지난 1월 67.8대 1에 이어, 지난 3월에는 31.4대 1을 기록했다. ‘좋은 일자리의 씨가 마른’ 상황에서 정년 연장 요구는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논쟁의 소지가 있다. 타협점이 없을까? 정이환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노동사회학)는 “정년 연장이 청년고용에 미치는 영향이 불확실하다면, 다른 식의 해결을 생각해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60세 넘어 국민연금 수급 연령까지 일을 하되, 꼭 현대차에서 계속 일해야 하는 건 아니다. 사회정의의 관점에서 보면, 노동자들이 자신은 퇴직할 테니 청년을 채용하라고 요구하면서 대신 다른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에서 일할 기회를 달라고, 그리고 이를 위한 교육이나 훈련을 국가가 제공하라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들은 노후 빈곤이 우려되는 저임금 노동자가 아니라, 수십 년 동안 안정적인 임금을 받아온 중산층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 혜택을 누린 사람들보다는 이제 시작하는, 혹은 아직 시작하지도 못한 청년들의 상황과 요구에 귀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우리보다 먼저 이런 문제에 대응한 나라가 있다. 일본이다. 일본도 법정 정년이 60세인 상황에서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점점 늦춰져 65세가 되었다. 일본 정부는 소득 공백을 메우기 위해 2013년부터 개정된 ‘고연령자 고용안정법’을 시행했다. 이 법에 따르면, 노동자의 정년을 65세 미만으로 정한 기업은 ‘정년을 65세까지로 연장’하거나, ‘정년을 아예 폐지’하거나, ‘계속고용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계속고용 제도는 다시 두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정년에 이르렀지만 계속 일하고 싶어 하는 노동자를 일단 퇴직시킨 뒤 계약직이나 촉탁직 등 새로운 고용형태와 임금으로 다시 고용하거나(재고용), 퇴직시키지 않고 65세까지 그대로 고용(근무 연장)하는 것이다. ‘근무 연장’에서는 노동조건이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재고용은 임금 감소가 상당하다. 재고용될 때는 종전과 같은 기업에서 근무하기도 하지만, 자회사나 계열사에 들어가기도 한다. 일본에서 정년 뒤 재고용되어 일하는 노동자는 평균 30~50%의 임금 감소를 보인다고 한다(〈고령자 고용안정에 관한 일본 입법례〉, 2020).
2019년 ‘범부처 인구정책 TF’는 ‘인구구조 변화의 영향과 대응’을 발표하면서 일본의 ‘계속고용 제도’를 2022년부터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힌 바 있다. 홍남기 부총리는 인구정책에서 법정 정년 연장이 빠진 이유에 대해 “정부 내부에서 부처 간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생산연령 인구 감소에 대비해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기획재정부), 법정 정년 연장이 청년고용에 미칠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고용노동부) 정부로서는, 그나마 처우를 조정하면서 고용을 연장할 수 있는 계속고용 제도가 차선책이라고 본 것이다. 사실 현대차에서 현재 실시하고 있는 ‘시니어 촉탁직’은 일종의 계속고용 제도(다만 기한은 1년)라고 볼 수도 있다.
노동력이 부족하다지만, ‘한국의 노인이 일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 시민들이 노동시장에서 ‘실질적으로 은퇴하는 연령’은 남녀 모두 72.3세로 OECD 1위다(2018년 기준, 아래 〈표〉 참조). 한국이 OECD 1위를 기록 중인 또 다른 통계도 있다. 2019년 나온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43.8%로 회원국 중 1위다(2016년 기준). 한국의 노인은 주된 일자리에서 50세가 채 되기 전에 밀려나는데 그 후엔 어느 나라 노인보다 더 오래 노동시장에 머물러 일하면서도 돈을 벌지 못한다. 대개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나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이 모두의 혜택일 수 없다면 해법은 하나다. 정년 연장이 아니더라도 더 많은 중고령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더 오래 일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신규 채용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최소화하면서다. OECD는 한국의 중고령자가 주된 일자리에서 조기 퇴출되는 현실이 연차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체계, 즉 연공급 체계와 관련이 깊다고 평가한다. “한국의 나이 든 노동자들에게, 연공급은 임금과 생산성 사이의 격차를 발생시키며, 이는 결국 강요된 조기 퇴직 문화를 만든다(OECD, 〈Working Better with Age:Korea〉, 2018).”
‘임금과 생산성 사이의 격차’는 정년의 존재 이유 그 자체다. 직종과 개인 역량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연구자들은 평균적으로 노동자의 생산성이 정점을 찍고 내려오는 시점을 45세 전후로 본다. 그런데 연공급에서는 연차가 올라갈수록 임금이 올라간다. 젊었을 때는 생산성보다 못한 임금을 받고, 나이 들었을 때는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을 받는 구조다(그래서 연공급을 ‘이연임금(뒤로 미뤄 받는 임금)’이라고 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어느 시점에서 강제로 고용계약을 종료시킬 필요성이 생긴다. 정년이다.
이 정년을 뒤로 미루도록 강제한 변화가 2016년부터 시행한 정년 60세 법제화였다. 물론 임금과 생산성 간 격차의 조정은 법으로 강제되지 않았다(강제할 수도 없다). 이 법에 따라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주와 노동조합은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고 선언적으로 규정했을 뿐이다. 그 결과 정년은 법제화되었으나 임금체계 개편은 장기 과제로 미뤄졌다.
저숙련과 고임금, 지속 불가능한 조합
정부는 급한 대로 정년 직전의 몇 년 동안 임금을 일부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독려했다. 현재 정년 운영 사업체 다섯 곳 중 한 곳, 300인 이상 대기업의 절반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이것이 지속 가능한 대안이라는 공감대는 높지 않다. 경우에 따라서는 임금피크제로 줄어든 임금이라 해도 생산성에 비해 여전히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이 정년보다 이른 시기에 주된 일자리에서 밀려나고 있다.
결국 핵심은 연공급이다. 연공급 아래서 기업은 장기근속자일수록 생산성에 비해 인건비가 높다고 판단한다. 그래서 희망퇴직·권고사직 따위로 사람을 자꾸 내보낸다. 정년 연장 법률이 통과된 2013년부터 이 법이 시행된 2016년 사이에 해당 연령 노동자들의 고용 감소가 관찰되었다는 연구도 있다(앞서의 한요셉 KDI 연구위원). 사측이 법률 시행 이전에 황급히 그 노동자들을 내보낸 것이다. 최초 입직 노동자의 30년 후 임금 배율은 서유럽이 1.7배, 일본이 2.5배인 반면 한국은 3.3배다(한국노동연구원, 〈임금 및 생산성 국제비교 연구〉, 2015).
기업이 노동자를 오래 고용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인 ‘숙련’과 임금의 차이는 너무 크지 않은 편이 고용안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숙련은 고령자 고용의 중요한 장점이다. 만약 임금이 해당 직무에 필요한 숙련의 수준을 크게 웃돌지 않는다면, 기업은 노동자를 내보낼 유인이 적다. 기존 인력에 대한 인건비 부담이 높지 않다면 신규 채용을 꺼릴 가능성도 더 낮을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OECD는 임금피크제가 근시안적인 임시방편이며, 나이 든 한국 노동자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임금을 연차가 아닌 직무(에 필요한 숙련) 기반으로 바꿔가는 게 관건이라고 지적한다.
현대차는 흔히 ‘자동화로 숙련은 낮은데 임금은 높은 사업장’으로 요약되곤 한다. 저숙련과 고임금의 조합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지금의 현대차 노조에게는 숙련과 임금의 괴리를 줄이려는 전략도, 신규 채용을 끌어낼 의지도 부족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는 고용 보장도 아닌 고용 연장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상수 지부장은 “국회에서 입법이 안 될 수도 있지만, 고령화와 청년실업 문제를 계속 수면 위로 띄워서 사회적 논란거리를 고민거리로 만들어가는 일도 노조의 역할이라 본다. 해외에 나가 있는 부품공장을 국내로 다시 들여와 노년 일자리를 만들거나, 퇴직자들이 협동조합을 차려 일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대안을 논의해볼 수 있다. 입법 청원도 준비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박태주 전 상임위원은 “국민연금과 연계해 소득 공백을 메워야 하는 것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이들이지 현대차 노동자는 아니라고 본다. ‘경제주의’에 찌든 기업별 노조 체제로, 대전환의 시대를 건너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작업장 내 노동자의 이익을 넘어 모든 노동자의 ‘일반 이익’, 나아가 공동체 시민들의 이익을 조직해내는 ‘사회운동 노조주의’가 절실하다. 민주노총이 출범 때부터 표방한 가치가 바로 그것이다”라고 말했다.
전혜원 기자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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