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핵 협상' 두고 경쟁하는 워싱턴의 대북 전문가들
“북한과 일정한 형태의 외교를 할 준비는 돼 있지만 비핵화라는 최종 목적이 전제돼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25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밝힌 대북 비핵화 메시지를 놓고 워싱턴 외교가의 분석이 한창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일정한 형태의 외교’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만날 의향이 없다”라고 말해 일단 정상회담 가능성은 제외했다. 또 “대북 접근방식도 상당히 다를 것”이라고 밝혀 궁금증을 더한다.
분명한 것은 바이든 행정부의 새 대북 노선은 정상외교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트럼프 행정부의 ‘톱다운 협상’ 방식이나 북한의 행동 변화를 기다리며 북핵 문제를 방치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선의의 무시(benign neglect)’와는 확실히 다를 전망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고위 관리는 최근 로이터 통신에 “우린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을 추구하고자 한다”라며 “현재 대북 재검토 작업에 관여하는 인사들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벌어진 대북 핵협상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해온 사람들이다”라고 밝혔다. 북핵 문제가 처음 표면화된 1990년대의 클린턴 행정부 시절 이후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도출한 전임 트럼프 행정부 시절까지 북핵 협상의 선례를 모두 검토해 새 방안을 내놓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워싱턴 외교가의 대북 전문가들도 이른바 ‘비핵화 압박’과 ‘단계적 비핵화’라는 두 그룹으로 나뉘어 현재 교착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의 타개 방안을 경쟁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이들 대다수가 과거 행정부에서 북핵 협상에 관여했거나 북핵 문제를 오랫동안 관찰하고 분석해온 베테랑이라는 점에서 바이든 외교안보팀도 이들의 의견을 반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관측이다.
우선 비핵화 압박론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추구했던 ‘최대의 압박’보다 한층 수위를 올려 북한이 조기에 완전히 비핵화하도록 몰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그룹의 대표적 인사를 꼽는다면 에번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담당 수석부차관보다. 현재 안보전문 컨설팅 회사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 그룹’의 선임국장이자 브루킹스 연구소 비상임 선임연구원인 리비어는 워싱턴 외교가에서도 대표적인 북한통으로 꼽힌다. 그는 2월 중순 ‘북한의 경제위기:비핵화의 마지막 기회인가?’ 제하의 분석 보고서에서, 북한이 유엔과 미국의 제재는 물론이고 코로나19 사태까지 겹치면서 최악의 경제난에 빠진 현 시기야말로 북한에 추가 압박을 가해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미국과 국제사회의 추가 압박, 전 세계 북한 공관 폐쇄 및 불법활동에 관여한 북한 무역회사 폐쇄, 한·미 및 미·일 합동 군사훈련 증대, 제재 품목 탑재 의심 선박 및 항공기 나포, 대북제재를 회피하는 중국 기업 제재, 북한의 경제활동 교란을 위한 비밀공작 등 사실상 북한 정권의 붕괴까지도 노린 고강도 추가 압박책을 제시해 파문을 던졌다. 그는 3월22일 〈이스트 아시아 포럼(East Asia Forum)〉 기고문에서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핵전력 강화 의지를 천명한 것을 두고, “북한이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하고 미국에 비핵화가 아닌 군축 회담을 꾀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했다.
하지만 단계적으로 접근해 협상 가능한 부분부터 비핵화 성과를 거둬야 한다는 ‘단계적 비핵화론’ 측의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 그룹의 대표 인사는 브루킹스 연구소의 군축 및 비확산 선임연구원인 로버트 아인혼 전 국무부 비확산담당 차관보다. 그는 1990년대 빌 클린턴 행정부 당시 북핵 문제가 처음 터졌을 때 국무부 정치·군사담당 부차관보로 북핵 정책의 입안과 수행에 깊숙이 관여했다. 이후 비확산담당 부차관보 및 국무부 비확산 선임보좌관을 지내며 전현직 관리들을 통틀어 북핵 문제에 가장 정통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 그가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 노스〉의 최신 기고문에서 리비어를 비롯한 비핵화 압박파의 견해에 회의적 시각을 보인 것이다.
그는 이들의 추가 압박론을 트럼프 행정부 시절 ‘최대의 압박’ 연장선상에서 ‘최대의 압박 2.0’으로 규정지으며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이런 전략이 먹히려면 최소한 국제사회의 일치된 협력이 필수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은 비핵화보다는 북한 정권의 안정에 더 비중을 두고 있고, 한국 문재인 정부에 대해서도 미국은 전적인 협조를 기대하기 힘들다.” 추가 압박 전략은 실패할 확률이 높고 이는 바이든 행정부 관리들도 잘 알고 있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오히려 단계적 비핵화 방안의 일환으로 북한 핵능력 증대를 차단할 수 있는 1단계 협정부터 마련하는 게 더 현실적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한 1단계 협정에는 영변 핵단지 폐쇄, 모든 우라늄 농축 및 재처리 시설 활동 중단, 핵융합물질 생산 금지, 장거리미사일 시험 영구 중단, 핵장비 및 기술 수출금지 등이 들어간다. 북한이 동의하면 한국전 종전선언, 평화협정 협상 시작, 상호 연락사무소 설치, 한·미 연합훈련 축소, 인도주의적 지원, 유엔과 미국의 추가 대북제재 중단, 남북교역 제재 예외 인정, 기존 유엔 대북제재의 한시적 중단 등을 제공하자는 것이다. 그는 〈시사IN〉에 “단계적 비핵화 방안은 완전하지 않지만 달리 마땅한 대안도 없다. 이 방안은 바이든 행정부에 북한의 핵능력을 제한할 수 있는 최선의 기회를 제공한다”라고 말했다.
한·일은 물론 중국까지 아우르는 협력으로
브루킹스 연구소의 마이클 오핸런 외교정책 연구국장도 아인혼 전 차관보의 단계적 비핵화 구상에 동의한다. 그는 3월29일자 〈유에스에이 투데이〉 기고문에서 “단기적으로는 북한의 추가 핵능력 증대와 핵능력의 현대화를 막는 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 북한이 핵시설을 검증 가능하게 해체하고 추가 핵무기 및 장거리 미사일 실험 중단을 공식화하면 미국 등 국제사회는 유엔 제재의 많은 부분을 해제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 등 바이든 대통령의 측근이 이 같은 기조 아래 북한 측과 비밀협상을 벌여 타결 짓자고 제안했다.
전현직 관리들과 두루 접촉해온 댄 스나이더 스탠퍼드 대학 초빙교수는 〈시사IN〉에 “바이든 행정부는 정상회담이 빠진 현상유지로 나갈 가능성이 큰 것 같다”라면서도 “미국은 한국과의 동맹 관리 차원에서도 북한과의 공식 접촉 노력은 계속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동북아분석실장을 지낸 존 메릴 박사는 “현 단계에서 바이든 행정부가 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프로그램의 최대 상한선을 제시하고 가급적 많은 제재를 풀며 무역 및 투자, 문화 교류를 제시하는 핵군축 정책으로 선회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추가 압박에 초점을 둘지 아니면 단계적 비핵화 구상에 초점을 둘지는 4월 중 나올 새 대북정책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다만 대북 재검토 작업에 관여하는 한 인사가 최근 〈워싱턴포스트〉에 밝힌 내용을 보면 대강 방향은 잡힌다. 그는 인터뷰에서 “재검토 과정에서 미국이 당면한 도전 중 하나는 관련국들의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북한 정권은 1990년대 후반 제재와 기아로 큰 고통을 당한 대다수 주민들과 달리 평양의 엘리트층에게 상대적으로 잘 대우했다”라며 비핵화 견인 수단으로서의 제재 효과에 대해 다소 회의적 태도를 보였다. 이렇듯 추가 압박보다 한·일 우방은 물론 중국까지도 아우르는 협력을 통해 단계적 비핵화 쪽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워싱턴 외교가의 대체적 관측이다.
워싱턴·정재민 편집위원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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