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는 시민적 진실을 반영해야

2021. 4. 1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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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주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거의 매년 3월 말이 되면 한일관계 관련자는 촉각을 곤두세우게 된다. 일본 초·중·고등학교 교과서 검정결과가 발표되기 때문이다.

일본 교과서, 특히 역사교과서에 우리가 관심을 집중하게 된 것은 1982년 이른바 ‘일본 교과서 파동’ 부터일 것이다. 문부성이 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일본의 침략’을 ‘진출’이나 그 밖의 용어로 바꾸게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우리나라와 중국 등으로부터 격렬한 항의를 받은 것이다.

이 사태는 미야자와 기이치(宮澤喜一) 관방장관이 정부가 책임지고 시정한다고 하는 ‘정부 견해’를 발표하고, 문부성이 ‘침략’ 용어 등의 가해 기술에 대해 검정의견으로 수정을 강제하지 않는다는 ‘근린제국조항’을 검정기준에 추가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이후 일본 교과서의 침략과 전쟁 중 가해 사실에 대한 기술이 개선되었다. 게다가 1991년 김학순 할머니가 생존 ‘위안부’ 피해자로서 최초로 모습을 드러내고 그 해 말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우리나라는 물론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준 이후, 일본군 ‘위안부’가 일본 고교 교과서에는 1994년, 중학교는 1997년부터 등장했다.

이처럼 교과서에서 일본의 침략·가해 사실에 대한 기술이 늘어나자, 이를 ‘반일적·자학적·암흑적’이라고 비방하며 교과서에서 삭제시키라고 요구하는 흐름도 커져갔다. 그 영향으로 일본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술은 축소되어 왔다. 

예년처럼 3월말인 지난달 30일 발표된 일본 고등학교 교과서 검정 결과는 기존의 세계사와 일본사를 합친 역사총합이라는 새로운 교과에 대한 첫 검정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을 끌었다.

8개 출판사에서 13종의 교과서에 대해 검정을 신청해 7개 출판사, 12종의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했다. 이 중 ‘일본군’ 위안부에 대해 기술한 교과서는 3/4에 해당하는 9종이다.

역사총합은 새로운 교과이기 때문에 이전 교과서와의 일대일 비교는 가능하지 않다. 참고로 현행 일본사A와 세계사A 교과서를 살펴보면 16종 중 11개에 일본군 ‘위안부’가 기술되어 기술률은 큰 차이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역사총합에 기술된 일본군 ‘위안부’의 내용을 살펴보면 우려와 동시에 일말의 기대도 생긴다. 일본군 ‘위안부’의 역사적 실태를 그나마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경우가 1개 교과서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우려스럽기 그지없다.

그런데 앞의 교과서를 만든 출판사에서 제작한 또 다른 역사총합에 “강제되었거나 속여서 연행된 사례도 있다”며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표현하고 있다.

두 교과서의 출판사에서 나온 이전교과서들은 관련 내용을 제대로 서술하지 않으면서 채택률은 높았기 때문에, 앞으로 학생들이 ‘위안부’의 실태에 접근할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 볼 수 있다.

이전에는 ‘위안부’ 관련 기술이 미미했던 교과서가 일본군이 위안소 설치의 주체임을 명기하거나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기술한 것은, 이러한 사실이 부정할 수 없는 확고한 학설로서 확립된 것을 입증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일본군 ‘위안부’는 성노예가 아니라는 하버드대 램지어 교수의 논문에 대해 일본사연구회를 비롯한 일본의 주요 역사학회가 재심사 후 게재 철회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성노예라는 일본군 ‘위안부’의 본질은 이미 학문적 검증을 거쳐 일본 사회 내에서 시민적 진실을 획득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교육의 목표가 비판적 사고 증진과 더불어 ‘국가가 승인한 시민적 진실’에 기반을 둔 집단적 기억 형성이라고 한다면, 교과서의 내용은 정치적 영향력에 의해 무원칙적으로 좌우되어서는 안되며, 학문적 엄정성을 통과해야 한다.

이점에서 위안소 설치가 일본군의 요청에 의해 이루어졌고 ‘위안부’의 모집이 감언·강압 등 전체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반하여 이루어졌다는 고노 관방장관의 담화를 정부입장으로 견지하면서도, 일본군 ‘위안부’ 성노예설을 부정하려고 하는 자기분열적인 양상을 보이는 현 일본 집권 세력의 자기 성찰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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