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대학]① 저출산에, 코로나19에 대학이 '무너진다'
급팽창한 대학, 저출산으로 신입생 급감하자 위기..코로나에 유학생도 끊겨
대면 강의·동아리·학생회 모두 '실종'..'대학 무용론'마저 퍼져
[※편집자 주: 1980년대와 1990년대 폭발적인 성장세를 누렸던 한국 대학은 올해 신입생 규모가 정원에 크게 미달하는 사태와 맞닥뜨렸습니다. 저출산으로 인한 신입생 부족과 코로나19가 심화시킨 재정난 등으로 한국의 대학들은 이제 본격적인 '위기의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한국 대학이 직면한 위기의 본질과 원인을 살펴보고, 그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연합뉴스는 6편의 기획기사를 차례로 송고합니다.]
(서울=연합뉴스) 탐사보도팀 = 한국 대학에 전대미문의 위기가 닥쳐오고 있다.
인구 급증 세대인 베이비부머가 대학에 입학한 1980년대와 1990년대 한국 대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전성시대를 누렸지만, 이제 '인구절벽'으로 인한 신입생 수 급감이라는 난제에 직면했다.
대학들은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 급감을 외국인 유학생 유치로 대응하면서 위기를 애써 피해왔지만, 코로나19 확산은 이마저도 힘들게 만들었다. 1980∼1990년대 무분별한 대학 설립은 이제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코로나19로 대면 강의마저 힘들어지자 학생들의 등록금 인하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신입생 환영회도, 과 MT도, 동아리 활동도 즐기지 못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는 '대학 무용론'마저 나온다.
이러한 위기가 한두 해 만에 해소될 위기가 아닌, 향후 수십 년 동안 이어질 위기의 '시작'이라는 점에서 이제 한국 대학의 '생존 플랜'을 모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980∼90년대는 '대학 팽창'의 시대…무분별한 대학 난립으로 이어져
한국 대학의 전성시대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였다고 할 수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태어난, 1천만 명이 넘는 베이비부머가 이 시기에 대학에 입학하면서 한국 대학은 폭발적인 성장세를 구가했다. 전국 어느 곳에 대학을 세워도 밀려드는 신입생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였다.
국내 대학은 1970년 168개에서 2020년 429개로 반세기 동안 261개가 늘었다. 이 가운데 1990년대 10년 동안에 무려 107개가 더 생겼다. 전후세대의 국민적 염원이 자녀나 본인의 대학 진학이었기에 이러한 극적인 양적 팽창에 대한 거부감이나 비판 여론은 별로 없었다.
대학의 폭발적인 성장에 기름을 부은 것은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5년 발표된 '5ㆍ31 교육개혁안'이었다.
대학 부지, 교육용 건물, 교원, 수익용 기본재산 등 4가지 준칙만 충족하면 대학 설립을 인가하는 '대학 설립 준칙주의'의 도입은 수도권과 지방을 막론한 전국 곳곳에 대학이 세워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임희성 한국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시장 논리를 대학에 그대로 적용한 것"이라며 "학생과 학부모에게 선택받지 못한 대학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으로 생각했으나, 부실 대학은 도태되지 않았고 양적 팽창만 계속해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국가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도 대학을 세울 수 있어 좋았고, 자산가 입장에서는 대학이 수지맞는 교육사업인데다 부동산에 대한 면세 혜택 등을 누릴 수 있어 좋았다.
선거구민의 표심을 얻어야 하는 국회의원이나 자치단체장의 입장에서는 대표적인 '치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지역 내 대학 설립에 열을 올려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이성엽 아주대 글로벌미래교육원장은 "대학 증설이 적절치 않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었으나, 당시에는 대부분의 국민들도 원하는 일이었기에 '누구나 대학 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든다는 목표로 대학 인가를 많이 내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러한 무분별한 학교 설립이 한국 대학에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는 점이다.
저출산으로 신입생 급감하자 위기…코로나로 유학생마저 끊겨 '재정난' 극심
1980년대와 1990년대는 한국 대학의 극적인 양적 팽창이 이뤄진 시기였다. 하지만 이 시기는 1970년대까지 이어졌던 인구 팽창이 '저출산'으로 전환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1970년대 초반 연 100만 명을 넘어섰던 출생아 수는 1980년 86만 명으로 줄더니, 1990년에는 65만 명으로 급감했다. 이후 감소세는 더욱 가팔라져 2000년 63만 명, 2010년 47만 명, 2020년 27만 명을 기록했다. 10년마다 20만 명 안팎의 연 출생아가 감소하는 극단적인 '인구 절벽'이 연출된 것이다.
태어난 아이가 19년 정도 지나 대학에 진학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출생아 수의 극단적인 감소가 대학 신입생 수의 급감으로 직결된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10년 동안 100개가 넘는 대학이 세워질 정도로 극적인 양적 팽창이 이뤄졌는데, 정작 대학에 들어올 학생 수는 급감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결국, 올해 대학 입학 정원 49만2천 명보다 수능 응시자 수가 42만6천 명으로 7만 명 가까이 부족한 사태가 발생했다. 본격적인 '신입생 부족'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교육 정책이 '표심'에 따라 움직이는 정치인에게 맡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김영삼 정부 말인 1990년대 말 국내 대학의 숫자는 이미 관리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났다"고 비판했다.
사실 대학 신입생 수가 갈수록 부족해지리라는 것은 예견된 일이었다. 이에 대학의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셌지만, 국내 대학들은 애써 이를 외면했다. 대신 이들은 다른 '구원의 동아줄'에 매달렸다. 바로 외국인 유학생의 대대적인 유치였다.
우리의 학문 수준이 선진국을 바짝 추격할 정도로 높아진 데다, 중화권과 동남아 지역 등을 휩쓴 한류의 영향으로 한국 대학은 인기 있는 유학 대상지로 떠올랐다. 2000년대 들어 유학생 수가 급격히 늘어나더니 2019년 전국 대학의 유학생 수는 11만 명을 넘어섰다.
한 지방사립대 관계자는 "지방대가 외국인 유학생 없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정원 외로 외국인 유학생을 대규모로 유치할 수 있었기에 부족한 등록금 수입을 메우고 대학 재정을 유지해올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경쟁력 강화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무시한 유학생 확대 정책은 지난해 코로나19 확산이라는 직격탄을 맞고 말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각국을 오가는 '하늘길'이 끊기면서 더는 우리나라로 유학생이 들어올 수 없었다. 지난해 국내 유학생 수는 1만 명 넘게 급감했다.
임성호 종로하늘교육 대표는 "대학들이 죽는시늉을 했지만, 속으로는 유학생 유치를 통해 꽤 알차게 운영해왔던 것"이라며 "문제는 코로나19가 아직도 종식될 조짐을 보이지 않는 데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신입생 수 급감 현상이 벌어지면서 엎친 데 덮친 상황이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대학 무슨 의미 있나"…'대학 무용론'마저 확산
지난해 초부터 시작해 일 년이 넘게 이어지는 코로나19 유행은 그렇지 않아도 비틀거리는 대학들에 'KO 펀치'를 날리는 것과 같은 심각한 타격을 가하고 있다.
대학 교육의 핵심인 교수 강의는 모두 온라인 강의로 대체되고,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환영회, 과 MT, 동아리 활동 등의 대학 문화가 모두 사라졌다. 지난해 입학한 20학번에 이어 올해 들어온 21학번마저 스스로 '잃어버린 학번'이라는 자조 섞인 수식어를 붙인다.
서울 소재 대학의 20학번 정모 씨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축제나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기는커녕 도서관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다"며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집에서 컴퓨터 앞에 앉아 대학 생활을 보내야 한다면 등록금이라도 일부 돌려받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청와대 인근 등에서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시위와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2021 등록금반환운동본부'가 지난달 4일부터 시작한 등록금 반환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는 현재까지 1만5천여 명이 참여했다.
더구나 일부 교수들이 온라인에 적합한 수업 진행 방식이나 학생들의 피드백에 대한 별다른 고민 없이 녹화한 온라인 강의를 틀어주는 일이 곳곳에서 벌어지면서 '과연 이러한 대학이 무슨 의미를 갖느냐'는 회의감도 확산하고 있다. 갈수록 극심해지는 취업난은 이러한 회의감을 극적으로 키우는 역할을 한다.
지방대를 나온 후 수년째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30) 씨는 "수많은 원서를 냈지만 나를 받아주는 기업은 없었다"며 "결국 전공과 상관없는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게 됐는데, 이렇다면 대학 교육이 과연 내게 무슨 의미가 있었는지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사실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극적으로 표출되기는 했지만, 대학 교육에 대한 회의는 오래전부터 확산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연도별 대학 진학률 추이가 여실히 보여준다.
1970년대 20%대에 머물렀던 대학 진학률은 열렬한 교육열을 뒷받침할 소득 수준의 향상과 더불어 1980년대 이후 극적으로 올라갔다. 1990년 33.2%, 2000년 68%에 이어 2008년 83.8%로 정점을 찍었다. 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높은 대학 진학률이다.
하지만 치솟는 대학 등록금에 대한 부담이 커진 데다 대졸자들의 취업난이 갈수록 극심해지면서 '대학 무용론'이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 그 결과 대학 진학률은 2009년부터 서서히 떨어져 지난해에는 72.5%로 낮아졌다.
대학에 입학할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함께 대학 진학률의 점진적인 하락은 학생 수의 급감 곧 등록금 수입의 급감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 대학가 맞닥뜨린 위기가 쉽게 풀어내기 힘든 복합적, 장기적인 위기라는 얘기다.
이성호 교수는 "이제 대학들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 등 생존을 위한 심각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바람과 시대적 요구에 맞게 변신하고 경쟁력을 갖춰나가지 못하는 대학들은 장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탐사보도팀: 권선미·윤우성 기자, 정유민 인턴기자]
fortun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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