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보물같은 GT카, 맥라렌 GT
2021. 4. 13. 08:00
-일상 주행 및 장거리 크루징 능력 높아
-편안함과 역동적인 드라이빙 공존하는 슈퍼카
맥라렌은 모터스포츠 정신으로 승부하는 슈퍼카 브랜드다. 고성능 엔진을 뒤에 얹고 에어로다이내믹에 초점을 맞춰 누구보다 빠른 속력을 내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까지 선보인 제품들도 마찬가지다. 파격적인 디자인과 위로 활짝 열리는 도어 등으로 시선을 끌고 우렁찬 소리를 앞세워 맹렬히 질주하는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시대는 변하고 소비자는 더 새로운 걸 원한다. 맥라렌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대중적인 성격의 차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몇몇 라이벌이 고성능 SUV를 등장시켜 돈을 벌기 시작한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본다. 이유야 어찌됐든 맥라렌은 새 소비자를 유혹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랜드 투어러를 선택했다. 그렇게 탄생한 차가 맥라렌 GT다. 이름처럼 새 차는 편안하고 실용적인 성격을 강조한다. 여기에 맥라렌 고유의 퍼포먼스를 겸비해 브랜드 성장을 이끌 예정이다.
▲디자인&상품성
새 차는 길이 4,683㎜, 너비와 높이는 각 2,095㎜, 1,213㎜의 크기를 지녔다. 한마디로 길고 낮으며 옆으로 널찍한 차다. 한 눈에 봐도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승용차와는 다른 모습이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디자인이 큰 역할을 했다. 굵직한 선 대신 부드러운 곡선을 사용했고 외관을 꾸미는 각 요소들도 과격한 시도는 하지 않았다. 먼저 눈웃음 짓는 주간주행등을 비롯해 작고 날렵한 헤드램프는 다른 라인업과 맥을 같이한다. 다만 큼직하게 뚫려있던 공기흡입구 모양을 간결하게 다듬어 차분한 느낌을 구현했다. 또 프론트 스플리터와 사이드스커트 등을 유광 블랙으로 처리해 고급감을 높였다.
옆구리에 붙은 거대한 공기흡입구는 뒤쪽 엔진 열을 식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뒤 펜더와 어우러져 볼록 튀어나와 있는데 시각적으로도 만족이 높다. 이 외에 설치 조각품을 보는 것 같은 사이드 미러와 나뭇잎 모양을 닮은 매끈한 유리창, 차분하게 내려앉은 지붕선까지 우아함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뒤는 에어덕트와 테일램프의 경계를 알 수 없는 맥라렌 특유의 패밀리룩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가로로 길게 눈을 뜬 램프는 턴 시그널 타입 방향지시등까지 포함돼 신선한 감각을 전달한다. 이 외에 주먹 하나가 통으로 들어가는 대구경 테일파이프와 날카로운 디퓨저는 차의 태생을 알게 하는 단서다.
버터플라이 도어는 언제 봐도 사람을 홀리게 한다. 주변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고 오너의 자부심까지 들게 하는 포인트다. 턱이 높아 타고 내리기 쉽지 않지만 한번 앉으면 특별한 세상이 펼쳐진다. 고성능 차보다는 플래그십 세단과 같은 분위기를 풍기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락하고 고급스러운 모습으로 탑승자를 맞이한다. 가죽의 양이 상당하다. 패널을 덮는 거의 모든 부분은 질 좋은 가죽으로 마감했다. 스티치의 형상과 스피커를 감싸는 알루미늄 커버, 각종 버튼도 온통 정교하다.
움푹 들어간 스티어링 휠은 단순하다. 버튼은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으며 오로지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게 도와준다. 베일 것 같은 날카로운 패들시프트도 인상적이다. 풀 디지털 계기판과 세로로 꾸민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최신 인포테인먼트 기술이 결합돼 정보를 제공한다. 공조장치 그래픽에도 헬맷을 쓰고 있는 걸 보면 차의 정체성을 알 수 있다.
센터 터널은 시동 버튼과 주행에 즐거움을 주는 버튼으로 가득하다. 조작법을 익혀야 할 정도로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며 버튼식 변속기와 조화를 이룬다. 지붕은 탄소섬유 대신 개방감이 높은 선루프를 달았다. 전기변색을 이용해 투명도를 조절할 수 있게 마련한 점이 눈에 띈다. 별도의 선 블라인드를 달지 않고서도 쾌적한 실내를 유지시켜 준다.
그랜드 투어러의 면모를 알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수납이다. 차의 성격을 감안하면 제법 많은 공간 활용성을 자랑한다. 컵홀더가 세 개나 있고 도어 안쪽에는 꽤 깊은 수납을 별도로 마련했다. 글러브 박스와 콘솔박스도 나름 알차게 꾸며져 있다. 절정은 트렁크다. 앞쪽 보닛에 놓인 150ℓ의 공간은 물론 시트 뒤 엔진이 드러나야 할 자리도 온통 트렁크로 꾸몄다. 420ℓ의 공간이 네모 반듯하지는 않지만 막상 필요할 때는 이 정도도 무척 유용하다. 회사 측에 따르면 185cm 2쌍의 스키를 넣을 수 있고 골프백하나도 충분히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엔진 열이 올라오는 걸 막기 위해 '슈퍼 패프릭'이라는 신소재를 둘렀다. 육각형 돌기가 나 있는 단단한 패널인데 실제로 장거리 주행 후에도 트렁크 온도는 크게 올라가지 않았다. 미지근한 정도로 온전히 짐을 보관했고 그물망 및 고리를 연결해 흔들림도 최소화 했다.
▲성능
맥라렌 GT는 V8 4.0ℓ 트윈터보 가솔린 엔진과 7단 DCT 조합이다. 최고출력 620마력, 최대토크 64.2㎏·m의 성능을 내며 정지 상태에서 100㎞/h까지 3.2초만에 가속한다. 최고시속은 226㎞이고 효율은 ℓ당 복합 8.4㎞를 실현했다. 사실 동력계는 맥라렌에서 두루 사용하고 있는 범용 엔진이다. 또 플래그십 라인업인 720S에도 같은 유닛이 들어간다. 그래서인지 시동을 걸기 전까지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냥 빠르고 잘 달릴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뿐이었다.
가속페달을 밟고 주행을 이어나가면서 내 생각은 완전히 달라졌다. 우선 생각보다 조용하다. 컴포트 모드에서는 거친 엔진음과 배기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거슬리는 노면 소음과 풍절음도 느끼기 힘들고 실내는 바워스 앤 윌킨슨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선명한 소리만 울려 퍼졌다. 스로틀 반응도 차분하다. 민감하게 바늘을 튕기거나 힘차게 달려나가지 않는다. 덕분에 쉽고 편하게 운전이 가능했다.
GT카 성격에 맞춘 컴포트 모드를 뒤로하고 스포츠로 방향을 바꿔 직선 도로를 달렸다. 차는 순식간에 성격을 고치며 본성을 드러낸다. 흥분을 자극하는 일등공신은 소리다. 시트 뒤에서 울려퍼지는 소리가 한층 과격해졌고 무서울 정도로 굉음을 내지른다. 600마력이 넘는 강한 출력을 아낌없이 도로 위에 쏟아 부으며 운전자에게 적절한 긴장과 짜릿함을 전달한다. 계기판 속 숫자는 예상치보다 훨씬 높게 찍혀있고 주변 사물이 눈 깜짝할 사이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낮고 넓은 차체가 바람을 이용해 차를 짓누르며 다운포스를 만들어낸다. 정확히 바람이 어느 부위를 통과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가지 정확한 사실은 고속 안정성이다. 빠르게 달려도 차가 흔들리거나 붕 뜨는 느낌을 찾아볼 수 없다. 바닥에 바짝 붙어 몸을 낮추고 무섭게 튀어나갈 뿐이다. 운전을 하며 깊은 감동을 받고 저절로 가속페달에 힘을 주게 되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굽이치는 코너에서는 경량 카본 파이버 '모노셀 II(MonoCell II)' 섀시가 큰 역할을 차지했다. 무게와 강성에서 이점을 보이며 차의 완성도를 높인다. 먼저 1,530㎏ 수준에 머무르는 몸무게는 수입 준중형 세단보다도 가볍다. 그만큼 엔진 출력을 온전히 전달하고 속 시원한 가속을 뿜어낸다. 단단한 뼈대는 차의 뒤틀림을 바로 잡아주며 빠른 속도로 코너를 통과해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는다.
직관적인 핸들링도 숨은 보물이다. 조금만 각도를 틀어도 차는 절도 있게 반응하며 깔끔한 자세를 연출한다. 스티어링 휠에 복잡한 버튼이 없어도 충분히 재미있고 인상 깊은 그립 감을 제공하는 이유다. 매우 좁은 발 공간과 더불어 전체적으로 경주차 운전석에 앉아있는 기분이며 실제로 역동적인 주행을 할 때도 서킷 위라고 착각이 들 정도다. 그 정도로 낯설면서도 신선한 드라이빙 감각과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차다.
▲총평
맥라렌 GT는 장거리 고속 크루징에 특화된 그랜드 투어러의 정의를 새롭게 내린다. 단순히 고급스럽고 안정적이며 빠르게 달리는 데에 그치지 않고 운전재미를 극대화한 경량 스포츠카부터 하드코어한 슈퍼카 영역까지 두루 넘본다. 버튼 몇 개만 누르면 다양한 성격의 차를 모두 다 경험할 수 있으며 매번 색다른 피드백을 받는다.
반면 뿌리는 모터스포츠에서 다져온 기술에서 나온다는 걸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그만큼 맥라렌 GT는 폭 넓은 영역을 넘나들며 전천후 차로 손색없는 모습이다. 일상 생활은 물론 도심에서도 부담 없이 탈 수 있고 트랙에서는 운전실력을 키우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기대 이상의 능력치를 내며 브랜드 장벽을 낮추고 새 소비층을 끌어들이기에 접합하다. 가격은 2억8,200만원이다.
김성환 기자 swkim@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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