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턱도 휠체어엔 장벽.. "한끼 먹는데 진땀" [밀착취재]

김병관 2021. 4. 1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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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휠체어 접근성 실태조사' 동행취재
영등포 편의시설 23곳 돌아보니
경사로 없거나 문 좁아 통과 못해
도움없이 혼자 이용가능한 곳 '0'
11곳은 보호자 있어도 불가능
"불필요한 '장애비용' 年 120만원"
계원예대 학생 박지민씨(오른쪽)가 지난 10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제과점을 다른 학생의 도움을 받아 들어가고 있다.
“여기가 이 지역 ‘핫플’(핫 플레이스·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이라는데…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네요.”

지난 10일 서울 지하철 2·5호선 영등포구청역 인근의 한 음식점 앞. 휠체어를 탄 박지민(20)씨가 높다랗게 늘어선 계단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박씨가 찾은 이곳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맛집’으로 유명한 곳이지만,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2층에 위치해 휠체어로는 접근조차 어려웠다.

인근의 다른 가게들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 식당은 경사로가 있었지만 각도가 너무 높아 휠체어 이용자 혼자서는 도저히 올라갈 수가 없었다. 또 다른 카페는 문 앞까지 갈 수 있었지만 문 폭이 좁아 휠체어가 들어가기 어려웠다. 휠체어 바퀴를 굴리며 경사로를 올라가느라 구슬땀을 흘린 박씨는 “밥 한 끼 먹거나 커피 한잔 마시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며 난감해했다.

박씨가 휠체어를 탄 것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비장애인인 박씨를 비롯한 계원예대 광고브랜드디자인과 학생 4명과 장애인이동권콘텐츠 협동조합 ‘무의’ 홍윤희 대표는 이날 ‘휠체어 타는 장애인이 혼자서도 이용할 수 있는 시설’ 조사를 위해 2시간 동안 영등포구청역 일대의 식당과 카페, 편의점 등을 돌았다.

12일 무의 등에 따르면 휠체어 이용자가 보호자 없이 식당·카페 등을 이용할 수 있으려면 △출입문 턱이 없거나 2㎝ 미만 △출입문 폭 1m 이상 △출입문은 자동문이거나 또는 밀어서 열 수 있는 문 △매장 입구에 경사로 설치 △시설 내부나 인근에 장애인 화장실 마련 △매장 내부에서 휠체어로 이동 가능한 면적 확보 등의 조건이 필요하다. 그러나 조사 당일 이들이 방문한 가게 23곳 중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매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휠체어 이용자 혼자서는 매장 이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보호자 등 주위 도움을 받아 이용할 수 있는 매장도 12곳에 그쳤다. 11곳은 아예 휠체어 이용자가 이용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매장 설계 과정에서 휠체어 장애인의 접근성은 아예 고려조차 되지 않은 셈이다.
한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는 매장으로 향하는 길의 경사가 가팔라 휠체어를 밀어주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출입문 앞까지 갈 수 있었다. 출입문은 밀어서 열 수 있는 방식이었지만, 휠체어를 탄 채 열기에는 지나치게 무거워 역부족이었다. 매장 내부나 인근에 장애인 화장실은 없었다.

또 다른 매장들도 경사로가 없고 계단만 있거나, 통로가 좁고 테이블이 낮아 휠체어를 탄 채로는 매장 이용이 힘들었다. 비장애인이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출입구의 작은 턱도 휠체어 이용자에게는 높은 장애물로 작용했다.

조사에 참여한 학생들은 ’휠체어 이용자의 어려움을 실감했다’고 전했다. 이하은(23)씨는 “첫 조사 후 휠체어를 가지고 버스를 타려다 거부당하고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찾지 못해 환승에만 20분이 걸리기도 했다”며 “이전에 알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박소람(22)씨도 “비장애인이 당연하게 누리는 것들이 장애인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보호자 없이 이동하기 힘든 장애인은 사회적 소외감을 느낄 것 같다”고 말했다.

무의는 서울 시내 주요 50개 지하철역 주변의 편의시설을 연말까지 조사할 예정이다. 이렇게 파악된 정보는 표준화된 형태로 홈페이지 등에 공개된다. 홍윤희 무의 대표는 “그나마 큰 빌딩에 입점한 프랜차이즈 매장이 장애인 시설이 상대적으로 잘 돼 있다 보니 비싼 매장만 다닐 수밖에 없다”며 “이런 곳을 이용하느라 비장애인보다 더 지불하는 ‘장애비용’이 연평균 120만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홍 대표는 “한국 사회는 장애인 접근권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며 “오래된 건물에도 경사로 설치 등을 의무화하는 내용으로 건축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글·사진=이종민·김병관 기자 jngm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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