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재 이탈 막은 히든카드 '주4일제'
[편집자주] 코로나19 장기화로 일하는 방식의 변화가 가속화했다. 이에 '쉼'에 대한 인식도 바뀌기 시작했다. 주요 선진국과 글로벌 기업을 중심으로 주 4일제 근무 논의도 시작됐다. 일부 국내 기업도 주4일제 등 휴식권 보장 실험에 나섰다. 다만 법정 근로시간, 임금 문제 등을 고려할 때 시기상조란 우려도 있다. 주 4일제를 비롯한 휴식권 전반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자
직원들의 복지와 워라밸에 신경 쓰는 IT·게임업계에서도 휴식의 첨단을 이끄는 기업은 카카오게임즈다. 2018년 7월 한 달에 한 번 금요일을 쉬는 '놀금'을 도입했다. 3년간 제도가 안착하며 이달 달부터 '놀금'을 월 1회에서 격주로 확대한다.
카카오게임즈의 '놀금' 확대 배경은 결국 임직원의 높은 만족도다. 우려보다 휴무로 인한 업무 공백도 적었다. 지난해 매출은 전년보다 약 27% 성장한 4955억원을 기록했다. 직원 만족과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며 지난해 9월 기업공개(IP0)도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카카오게임즈 관계자는 "놀금 외에도 캠핑카 대여 등 직원들에게 소소하게 행복을 주는 '소확행' 복지 등 세심한 케어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며 "근무시간 집중도를 높이고 워라밸 측면에서 긍정적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해서 확대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IT·게임업계의 업무 강도는 악명 높았다. 일은 힘든데 처우는 낮아 '개발자 10년이면 치킨집행'이라는 자조 섞인 농담도 나왔다. 신작 출시나 업데이트 마감 전 장시간·고강도 근무를 몰아서 하는 이른바 '크런치 모드'는 많은 개발자의 치를 떨게 만들었다.
하지만 개발자 수요 부족과 2018년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맞물리며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복지는 지출이 아닌 인재에 대한 투자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로나19(COVID-19)로 물리적 출근이 어려워지며 재택근무가 일상화하는 등 다시 한번 큰 변화를 맞고 있다.
놀금 제도는 IT·게임업계에서도 새로운 시도다. 현재 놀금을 운영하는 곳은 카카오게임즈와 그에 앞서 2017년 IT 인프라·솔루션 기업 가비아, SK텔레콤 정도다. 엔씨소프트는 지난해 3월 코로나19 당시 한시적으로 금요일 휴무를 운영했으나 다시 정상근무로 복귀했다.
놀금까지는 아니지만 월요병을 없애기 위해 월요일 오후에 출근하는 '주 4.5일제'를 도입한 기업도 있다.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여기어때'를 운영하는 여기어때 컴퍼니, 배달대행업체 바로고 등이 주 4.5일제 근무를 시행한다.
업계 관계자는 "월요일 오전을 쉰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여유가 생겨서 오후부터는 업무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된다"며 "업무의 총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전제로 주 4일 근무하는 놀금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된다면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동우 기자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탄력적 근무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세계적으로 주4일제 실험이 본격화하고 있다.
◆"100년 된 주5일제" 스페인, 전국 단위 실험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나라는 스페인이다.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올해 초 주4일제를 전국적으로 실험하는 데 합의했다. 이르면 가을부터 시작된다. 스페인의 주4일제는 진보 정당 마스파이스의 제안에 따른 것이다. 희망업체 200곳이 3년 동안 주4일제를 시험하고 손해 부분에 대해선 정부가 보상하는 내용이다. 사업 첫 해에는 정부가 전액을 보상하고 두 번째 해에는 50%, 세 번째 해에는 33%를 보상한다. 이를 위해 스페인 정부는 5000만유로(약 665억원)를 예산으로 배정했다.
주4일제 개념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다. 20세기 초부터 많은 진보 정당들의 목표였다. 이니고 에레혼 대표는 "우리가 마지막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한 지 100년이 지났다. 지난 100년 동안 우리의 생산성은 꾸준히 높아졌다. 그렇지만 그 혜택은 근로자들의 자유시간 확대로는 이어지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장시간 근로를 미덕으로 여기던 일본도 변화의 바람에 동참할 참이다. 희망 직장인에 한해 선택적 주4일제 도입을 검토하면서다. 올해 1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이 제안했고 이달 중 세부 내용이 정리된다.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5일 브리핑에서 "일과 삶의 균형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자발적인 주 3일 휴일로 직원들은 보육, 간병 등에서 어려움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퇴사는 줄어들 것이고 휴일이 늘어남에 따라 일본 관광산업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먼저 실험한 기업들, 결과는?
일찌감치 주4일제 실험에 나선 기업들도 적지 않다. 글로벌 소비재공룡 유니레버는 지난해 12월 뉴질랜드지사 전직원 81명을 대상으로 1년 동안 급여 삭감 없는 주4일제 실험에 돌입했다. 결과에 따라 세계 15만5000명 직원들에 적용할 수 있는 방식을 검토한다는 계획이다. 일본 기업중에는 미즈호 금융그룹과 일본 야후 등이 주4일제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리쿠르트그룹은 이달부터 직원 1만6000명에 선택적 주4일제를 적용한다.
스페인 남부에 소재한 소프트웨어 회사인 델솔은 지난해 주4일제를 도입해 성공을 거뒀다. 결근율은 28%나 줄었고 매출 성장률도 그대로 유지됐다. 주4일제 도입 후 퇴사를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독일 정보기술(IT) 회사 아윈도 지난해 봄 일부 직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주4일제 실험에서 실적, 직원 만족도, 고객 만족도가 모두 상승한 것을 확인해 지난 1월부터는 대상을 전직원으로 확대했다. 아담 로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행복하고 소속감이 높고 균형잡힌 근로자들이 더 많은 효율을 낸다고 굳게 믿는다"면서 "직원들은 더 스마트하게 일할 방법을 찾고 생산성은 낮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부동산회사 퍼페추얼가디언의 앤드루 반스 CEO는 일찌감치 주4일제를 실험한 뒤 아예 주4일제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는 2018년 240명 직원에 8주 동안 주4일를 실험한 뒤 생산성은 향상되고 직원들의 스트레스는 줄어든 것을 확인, 주4일제를 영구 정착시켰다. 반스 CEO는 이후 비영리단체를 구성해 주4일제 확산에 앞장서고 있다.
◆워라밸이 밀고 코로나가 끈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주5일제가 워낙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린 나머지 이것이 바뀔 수 있다는 게 생소할지 모르지만 이제 때를 만난 것인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경제 주도층이 밀레니얼·제트 세대로 이동함에 따라 워라밸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아진 상황에서 지난해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 후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근무·탄력근무 등이 빠르게 자리 잡으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은 주4일제 도입으로 옮겨갔다. 고용사이트인 집리쿠르터에는 주4일제를 언급한 게시물의 비율이 1만개 당 62개로 3년 동안 3배 늘었다.
주4일제를 도입하는 기업들로선 직원들의 만족도 상승으로 인재 이탈을 막을 수 있다는 게 큰 장점이다. 일자리 증가, 휴일 증가에 따른 관광업 활성화 등도 장점으로 꼽힌다.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의 윌 스트롱 연구원은 파이낸셜리뷰에 "주4일제가 추진력을 얻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근무시간 단축은 전적으로 현실적인 목표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아직 보편화는 어렵다는 시각도 적지 않다. 제조나 고객 서비스 등 불가피하게 주5일제 근무를 이어가야 하는 직군에서는 불공정 문제가 불거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단축된 시간을 메우기 위해 기업이 추가 고용에 나선다면 기업의 비용이 늘어나고 기업의 이익을 갉아먹어 되레 경제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스페인에서도 주4일제를 반대하는 정치 및 재계 지도자들은 스페인의 낮은 생산성을 지적하면서 경제 위축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윤세미 기자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 인터뷰
"월화수목 '토토일'. 주4일제 근무는 삶의 질은 물론 생산성까지 높일 수 있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12일 머니투데이 더300(the 300)과의 인터뷰에서 주4일제 도입의 필요성을 설파했다. 지난 2월 조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하면서 발표한 '맞춤형 주4일제' 공약은 최근 일본 정부가 추진 계획을 밝히면서 다시 아이디어 차원에서 주목 받고 있다.
그가 구상하는 주4일제 근무는 산업과 현장의 특성에 맞춰 유연하게 적용하는 게 골자로, 노동시간 단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를 통해 △일자리 창출·고용 증가 △국가 평균 노동시간 감소 △여가시간 증가에 다른 신산업 성장기반 마련 등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게 조 의원의 설명이다.
그는 "주4일제를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나누고 여성과 남성 노동 격차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기업 입장에서도 유연한 근무조직 구축과 함께 노동생산성 향상, 비용 절감·이윤 증가 등의 경제적 효과를 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막대한 예산 투입을 우려하는 일각의 지적에 조 의원은 "'구의역 김군'과 같은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생명·안전노동 분야를 중심으로 주4일제를 시범 도입하고 이를 토대로 확대 여부를 고민하면 된다"며 "추가 예산 소요가 없는 근로시간 단축 모델 개발을 통해 필수 공익사업장의 중대재해를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4일제에 대한 직장인들의 반응은 일단 긍정적으로 보는 분위기다. 올 초 잡코리아가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직장인 507명을 대상으로 '좋은 직장의 조건'에 대해 물은 결과, 1위가 "워라밸 보장(일·생활 균형, 49.9%)"으로 답한 것에서 가늠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주4일제 도입 논의는 섣부르다는 게 사회 전반적인 분위기다. 주52시간 근로제가 자리 잡은지 얼마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 단축을 추진하는건 쉽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주4일제 보다는 법으로 보장된 공휴일을 먼저 제대로 쉴 수 있게 해 휴식권을 보장하는 게 먼저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주4일제 논의가 시작되면 임금 조정 등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중소기업계를 비롯한 경영계, 자영업자 등도 주4일제는 '시기상조'라는 반응이다.
그럼에도 조 의원은 코로나19(COVID-19) 이후 재택근무가 확산된 만큼 주4일제 근무 도입은 사실상 시간 문제로 본다. 다만 시간제 노동자의 수입 감소로 인한 소득 양극화 문제는 사회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현재 국회에서 주4일제 관련 법안은 아직 없다.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후보들간 공약으로 차용될 가능성은 적지 않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시각이다.
조 의원은 "기업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고 우수 인재 확보를 위해 주4일제 근무 도입에 긍정적인 분위기"라면서 "주4일제 사회는 이미 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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