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코로나19 '3분 진단키트' 유럽 주문 폭주에 공장 풀가동하는 나노엔텍

김윤수 기자 2021. 4. 1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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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계열사, 반도체 집적회로 그리는 기술 응용
항원진단 정확도 70%→95%…이탈리아서 허가
출시 3개월 100만개 수출, 라인 3배 증설 중

지난 9일 오후 2시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나노엔텍 진단키트 공장의 클린룸 내부. 왼쪽엔 연구자·관리자들이 일하고 있고, 오른쪽엔 진단키트의 핵심 부품인 상판이 쌓여있다. /김윤수 기자

지난 9일 오후 3시,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의 나노엔텍(039860)공장. 방금 만들어진 진단키트로 기자가 직접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검사를 해봤다. 제품에 동봉된 면봉을 코 깊숙이 집어넣어 검체를 채취하고, 동봉된 액체에 섞었다. 이 액체를 진단키트의 작은 입구에 흘려넣었더니, 머리카락 굵기의 3분의 1인 50μm(마이크로미터·100만분의 1m) 너비의 통로를 지나 끝에 도달했다. 카드 모양의 진단키트를 검사 기계인 카트리지에 끼워 넣고 결과를 기다렸다. 오래 기다릴 것도 없이 약 3분 만에 카트리지 화면에 ‘음성(Negative)’이란 결과값이 떴다.

SK텔레콤(017670)의 자회사 나노엔텍이 지난해 12월 출시한 진단키트다. 3분 만에 95% 정확도로 감염 여부를 검사할 수 있는 성능을 이탈리아 보건당국으로부터 인정받아 현지에 수출하고 있다. 3개월 동안 100만개를 팔았다. 밀려드는 추가 수요를 충족하지 못해 생산라인 증설 작업도 진행 중이다. 증설 규모는 현재의 3배로 알려졌다. 창립 이래 유례없는 확장이다.

기자의 검체를 넣은 진단키트를 카트리지에 삽입한 결과 ‘음성(Negative)’을 판정해주는 모습. /김윤수 기자

현재 국내에선 허가받기 어려운 ‘항원진단’ 방식이지만, 정부·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현장진단(POCT)이나 자가진단용으로 활발히 검토되고 있다. 12일 오세훈 서울시장도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사용 승인과 별도로 (서울시가) 신속 항원 검사키트를 활용한 시범사업 시행도 검토하겠다"며 이 방식 키트의 활용 계획을 밝혔다. 나노엔텍 관계자는 "적기에 국내에서 쓰일 수 있도록 5월 중 식약처에 허가 신청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나노엔텍 화성 공장 전경. /김윤수 기자

씨젠, SD바이오센서 같은 주요 진단키트 업체와 비교하면 규모가 작지만, 지난 2000년 창립 이래로 21년간 생산 캐파(최대 생산능력)가 하루 2만여개, 한 달 70만여개에 불과한 나노엔텍엔 깜짝 놀랄 만한 수요다. 약 6600㎡(2000평) 부지, 3층짜리 건물 안에서 3개월째 다른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코로나19 진단키트만을 만들고 있다. 관리직·생산직 총 100여명이 24시간 3교대로 동원되고 있지만 밀려드는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상황이다. 라인 증설이 필요해진 이유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사업의 후발주자로서 나노엔텍만의 특장점을 묻는 기자를, 황정구 생산본부장은 공장 1층의 ‘클린룸’으로 안내했다. 반도체 공장처럼 하얀 방진복을 입고 전신 살균을 거쳐 입장했다. 클린룸에 들어가자마자 가로 8.5㎝, 세로 5.5㎝ 크기의 투명한 플라스틱 카드가 온사방에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두께도 일반 카드 정도였는데, 그 안에는 맨눈으로 보일듯 말듯한 가느다란 통로가 있었다. 황 본부장은 이 통로에 나노엔텍 진단키트만의 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 공정 기술을 이용해 표면에 미세한 통로를 그린 진단키트 상판(왼쪽), 화학반응에 필요한 시약을 바르는 바닥인 하판(오른쪽). 가운데는 이 둘을 포개어 조립한 가로 8.5㎝, 세로 5.5㎝ 크기의 진단키트 완제품. /김윤수 기자

정찬일 나노엔텍 대표와 황 본부장은 화학이나 생명과학이 아닌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이들이 세우고 이끌어온 회사는 의료기기 등 바이오 사업을 하고 있지만 정체성은 반도체 기업에 가깝다. 반도체 집적회로(IC·칩)를 만들려면 우선 실리콘 웨이퍼(기판)에 가느다란 선을 음각 판화처럼 파서 회로를 그려야 한다. 나노엔텍은 이 미세한 회로를 그리는 독자적인 기술을 갖고 있다. ‘초소형 정밀 기계기술(MEMS)’이라고 부른다. 나노엔텍은 이 기술을 반도체 회로가 아닌 진단키트 제조에 응용했다.

나노엔텍의 진단키트는 이미 여러 기업이 만들어 팔고 있는 항원진단키트에 속한다. 진단키트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항원)와 화학반응할 수 있는 특수한 화학물질인 시약이 들어있다. 검체가 시약과 만날 때 바이러스 유무에 따라 화학반응의 결과가 달라진다. 이 결과를 보고 감염 여부를 알 수 있다. 이 과정은 20분 내로 끝난다는 장점이 있지만, 정확도가 70% 정도로 낮아 활용이 제한적이다. 국내에선 낮은 정확도로 인해 허가받기 어려운 상황이다. SD바이오센서의 항원진단키트 1종만이 정식 허가를 받아, 정확도가 95% 이상인 분자진단(PCR)을 보조하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나노엔텍 진단키트의 원리. 빨간색 통로를 따라 검체 용액이 통과하면서 화학반응을 한 끝에, 도착 지점(원 표시)에서 바이러스 유무에 따른 결과가 나온다. /나노엔텍 제공

나노엔텍은 MEMS 기술을 활용해 진단키트에 미세한 통로를 냈다. 이 통로를 통과하는 검체 용액은 표면적이 매우 넓어지고, 그만큼 더 민감하고 빠르게 시약과 화학반응을 하게 된다. 나노엔텍 진단키트의 미세 통로 너비는 머리카락 굵기의 3분이 1인 50μm다. 통로가 이보다 더 넓어지면 진단 성능이 떨어지고, 더 좁아지면 검체 용액이 통로를 통과하지 못한다. 딱 50μm 크기에 맞춰서 통로를 뚫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묻자, 황 본부장은 "사포지로 (진단키트) 표면을 한번 쓱 훑으면 10μm가 날라간다"는 비유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런 원리로 검사 시간을 3분 내로 단축하고, 무엇보다 진단 정확도를 PCR 수준인 95% 이상으로 높였다. 이 성능은 지난해 말 이탈리아 보건당국으로부터 인정받은 것이다. 나노엔텍은 다른 유럽 국가, 미국, 한국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첨단 기술이 들어간 만큼 기존 진단키트와 비교해 생산량이 적고 가격이 비싸 선진국 위주로 수출하는 프리미엄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나노엔텍은 이런 진단키트를 코로나19 사태 15년 전인 2005년 처음 고안해냈다. 당시 다른 질병 검사를 위한 진단키트와 연구자들의 간편한 화학실험을 위한 ‘랩온어칩(칩 위의 실험실)’ 제품을 만들어 팔기 위해 시작된 시도였다. 어려움도 있었다. 미세한 회로를 실리콘 웨이퍼에 그리는 것과, 이것과 똑같은 모양을 값싼 플라스틱에 그려 양산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기 때문이다. 나노엔텍은 6년간 38차례 설계를 변경한 끝에 MEMS 기술을 적용한 진단키트 양산에 성공했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가 터지자 설계만 새로 해 맞춤 진단키트를 내놓았다.

SK텔레콤은 앞서 2014년 나노엔텍의 기술력을 알아보고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헬스케어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대규모 지분 투자를 했다. 나노엔텍은 2017년 SK텔레콤의 자회사로서 SK그룹의 계열사로 정식 편입됐다.

실리콘 웨이퍼에 진단키트 미세 통로를 설계하는 설계실(위). 맨 오른쪽의 기계로 원형 웨이퍼에 설계도를 그린다. 지난 9일 방문했을 땐 별다른 설계 작업이 이뤄지지 않았다. 아래 사진은 이 기계에 원형 웨이퍼를 집어넣는 모습. /김윤수 기자(위), 나노엔텍 제공(아래)

코로나19 진단키트의 설계는 이미 지난해 마쳤기 때문에 이날 공장을 방문했을 땐 설계실이 텅 비어있었다. 둥근 실리콘 웨이퍼에 설계도를 그리는 데 필요한 각종 기계와 화학약품, 컴퓨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서 그려진 설계도를 협력업체에 보내면 그곳에서 편평한 플라스틱판에 설계도와 똑같은 모양으로 통로를 파서 나노엔텍 공장으로 납품한다. 클린룸에 쌓여있던 ‘플라스틱 카드’가 바로 이것으로, 공장 사람들은 ‘상판’이라고 불렀다.

상판은 ‘표면처리’라는 과정을 거친다. 플라스틱은 기름처럼 물과 친하지 않은 소수성(疏水性)을 띠기 때문에 표면에 특수 처리를 해 친수성(親水性)으로 바꾸는 과정이다. 이렇게 해야 종이나 천에 물이 스며들어 퍼지듯, 검체 용액이 플라스틱 통로를 따라 잘 퍼질 수 있다.

하판에 시약을 코팅하는 30m 길이의 라인(왼쪽)과 일부를 확대 촬영한 모습(오른쪽). 기계가 하판을 한 장씩 집어 움직이는 레일 위에 올려놓는다. /김윤수 기자

상판에 대응하는 하판도 만들어진다. 하판은 상판보다 작은 직사각형 아크릴판처럼 생겼다. 상판과 포개져 미세 통로의 바닥이 된다. 이 바닥에 여러 시약을 미리 발라놓는다. 검체 용액이 통로를 따라 흐르면서 차례로 밟고 지나가도록 함으로써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클린룸 한쪽에는 약 33㎡(10평) 크기의 화학실험실 같은 시약 제조실이 있어서 필요한 시약을 공급한다.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포함해 총 25가지 진단키트 제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총 60여 가지 시약이 이곳에서 합성된다.

현재 올인하고 있는 코로나19 진단키트엔 4종류의 시약이 들어간다. 시약별로 한 군데씩 총 4개 스팟(spot)을 2.3㎜ 지름의 점 모양으로 부분 코팅한다. 정확한 위치에 점을 찍어야 하기 때문에 사람이 아닌 기계와 소프트웨어가 작업을 대신한다. 이 생산라인의 길이는 총 30m, 구축 비용은 수십억원이다. 전체 공정 중 속도가 가장 느리기 때문에 진단키트 생산 속도는 이 라인 속도에 따라 결정된다. 나노엔텍이 급증한 수요에 맞춰 증설하기로 한 것이 이 라인이다.

상판과 하판을 포개어 조립한 모습(위)과 이 둘이 정확히 포개졌는지 측정하는 소프트웨어(아래). /김윤수 기자

이제 상판과 하판을 포개어 조립하면 기능을 갖춘 진단키트 ‘반제품’이 만들어진다. 포개는 작업 역시 상판의 통로와 하판의 시약 스팟의 위치가 정확하게 맞아떨어져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소프트웨어 작업으로 이뤄진다. 가로·세로·높이 약 2~3m의 직육면체 모양 기계 안에서 보랏빛을 번쩍이는 센서가 상판과 하판의 위치를 보정한다. 황 본부장은 소프트웨어의 역할을 거듭 설명하다가 "다른 IT 업계와 마찬가지로 진단키트 업계에도 소프트웨어 인력이 귀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남은 과정에선 수작업이 좀 더 필요해진다. 만들어진 카드(진단키트) 한 면에 스티커를 붙이고 포장한다. 스티커엔 카드마다 고유한 전산 정보를 담은 바코드가 그려져 있다. 이 카드에 검체 용액을 넣고 검사 기계인 카트리지에 신용카드 결제하듯 끼워 넣으면, 카트리지는 바코드를 인식하고 컬러 화면으로 양·음성 결과를 알려준다. 카트리지 역시 공장 3층에서 별도로 만들어져 판매된다.

나노엔텍은 같은 방식으로 항원진단키트가 아닌 항체진단키트 생산도 확대할 계획이다. 바이러스가 아니라, 바이러스 침입으로 인해 몸속에 만들어지는 면역성분인 항체를 검출하는 키트다. 무증상 감염자의 사후 진단에 주로 쓰여왔는데, 백신 접종이 확대되면서 예방 효과를 측정하는 용도로 이 진단키트 수요가 점점 늘어날 것이라고 업체 관계자는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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