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조의 호수' 오데트, 비정규직 노동자가 되다

장병호 2021. 4. 13.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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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와이즈발레단 연습실.

'백조의 호수'에서 저주에 걸린 백조, 바로 그 오데트다.

홍성욱 예술감독이 '백조의 호수'를 비정규직 문제 등 한국 사회의 이슈로 재해석해 안무한 작품으로 2015년 와이즈발레단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초연했다.

오데트와 사랑에 빠지는 지그프리드 왕자는 정규직 남성 노동자로, 이들을 시련에 빠트리는 로트바르트는 회사의 사장, 오딜은 회사 사장의 딸로 설정해 '백조의 호수'와는 또 다른 무대를 예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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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발레단 '라스트 엑시트' 연습 현장
차이콥스키 고전발레, 한국 사회 이슈로 재해석
모던발레 움직임 가미해 색다른 볼거리 선사
"청춘에게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로 다가가길"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지루한 표정 짓고, 퇴근할 준비해야지. 자, 오늘 남아서 일할 사람?”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와이즈발레단 연습실. 15명의 발레리나들이 손목을 바라보며 시간을 확인하거나 하품을 하며 피곤한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다 한 명의 발레리나에게 일거리를 몰아주고는 유유히 발길을 옮긴다. 홀로 남은 발레리나의 이름은 ‘오데트’다.

와이즈발레단 ‘라스트 엑시트’의 연습 장면(사진=와이즈발레단)
발레 팬이라면 단번에 누군지 알아챌 이름이다. ‘백조의 호수’에서 저주에 걸린 백조, 바로 그 오데트다. 그러나 이날 연습실에서 만난 오데트는 조금 달랐다. 비정규직으로 차별과 설움을 겪고 있는 여성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와이즈발레단이 오는 20일과 2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선보이는 창작발레 ‘라스트 엑시트’의 한 장면이다. 홍성욱 예술감독이 ‘백조의 호수’를 비정규직 문제 등 한국 사회의 이슈로 재해석해 안무한 작품으로 2015년 와이즈발레단 창단 10주년을 기념해 초연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레퍼토리’로 6년 만에 재공연을 앞두고 있다.

작품은 차이콥스키가 작곡한 ‘백조의 호수’의 음악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고전발레의 인물을 현실적인 캐릭터로 설정해 색다른 무대를 선보인다. 오데트와 사랑에 빠지는 지그프리드 왕자는 정규직 남성 노동자로, 이들을 시련에 빠트리는 로트바르트는 회사의 사장, 오딜은 회사 사장의 딸로 설정해 ‘백조의 호수’와는 또 다른 무대를 예고한다.

고전발레에 모던발레의 다채로운 움직임을 가미한 점이 ‘라스트 엑시트’의 색다른 볼거리다. 오데트와 지그프리드가 펼치는 파드되(2인무)가 대표적이다. 고전발레 특유의 정형화된 움직임에서 벗어나 현대무용을 방불케 하는 자유로운 몸짓은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는 현대인의 마음을 대변한다. 책상, 의자 등이 소도구 겸 오브제로 등장해 사무실의 풍경을 무대 위에 재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와이즈발레단 ‘라스트 엑시트’의 연습 장면(사진=와이즈발레단)
‘라스트 엑시트’는 김길용 와이즈발레단 단장과 홍 예술감독이 10여 년 전 드라마 ‘미생’을 같이 본 것이 계기가 돼 만들어졌다. 김 단장은 “드라마가 보여준 것처럼 사회 생활 속에서 청년들이 겪는 어려움과 열정을 펼칠 수 없는 사회 현실을 발레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와이즈발레단은 오랜만의 재공연인 만큼 작품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오데트를 위로하는 백조의 군무를 보강한 것이 대표적이다. 결말도 초연과 달라진다. 홍 예술감독은 “초연 때는 비상구는 없다는 다소 무거운 결말을 택했지만, 이번 공연에선 어딘가는 비상구가 있을 것이라는 열린 결말로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고자 한다”고 말했다.

2005년 창단한 와이즈발레단은 유니버설발레단, 서울발레시어터 등과 함께 국내 대표 민간 발레단으로 고전발레와 창작발레를 아우르는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쳐왔다. 지난해 코로나19 여파로 공연이 대거 중단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김 단장은 “단원들이 약 4개월 정도 공연을 쉬다 다시 무대에 설 준비를 해 무척 기뻐하고 있다”며 “누군가 어려울 때 ‘너 지금 어렵지?’라는 작은 말 한 마디가 용기와 위로가 될 수 있는데, 이번 ‘라스트 엑시트’가 지금을 살아가는 청춘들에게 이러한 공감과 응원의 메시지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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