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사냥꾼'은 옛말.. PEF가 기업 구원투수 된다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국내기업들이 한창 어려움을 겪을 때다. 사모펀드(PEF)는 기업 사냥꾼의 모습으로 등장했다. 한미은행을 산 칼라일,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등 글로벌 펀드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조 단위 바이아웃(buyout, 경영권 인수)을 성사시키며 충격을 줬다. 자기자본 없이도 대부분의 인수자금을 차입금으로 충당했다. 이렇게 기업을 산 후 수천억~수조원 단위의 이익을 낸 뒤 떠났다. 여론은 '먹고 튀는(먹튀) 투기자본'이라는 비난을 가했지만 '금융 후진국'의 볼멘소리에 불과했다.
이후 2004년 국내에 PEF(경영참여형 사모펀드) 제도가 도입된다. 토종 자본을 키워 외국 자본의 국내 기업 인수에 대응하자는 취지였다. 제도 도입 이후 사냥꾼의 이미지로 눈총을 받던 PEF는 건전한 모험자본을 공급하는 사모펀드의 순기능 역할을 해왔다는 평가다.
웅진그룹의 코웨이, 동양그룹의 동양매직(현 SK매직), SKC코오롱PI(현 PI첨단소재) 등 그룹사의 유동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알짜 매물로 나온 곳들을 PEF가 인수했다. 인수 뒤 경영 개선 효과가 극대화되며 더 높은 가치에 다시 기업의 품에 안겼다.
자본시장연구원이 2005년부터 2014년 동안 국내 PEF가 투자한 기업을 분석한 결과 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1470억원에서 2300억원으로, 기업가치는(EV)는 1070억원에서 2000억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PEF가 산업의 윤활유 역할을 하는 등 긍정적 효과를 만들었다는 얘기다.
투자를 넘어 파트너 영역도 구축하고 있다. 허태수 GS그룹 회장은 사업 다각화 추진을 위해 지난해부터 국내 대형 PEF 핵심 인사들을 연이어 만나면서 앞으로의 사업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SK그룹은 재무적투자자(FI) 혹은 전략적투자자(SI)를 끌어들여 M&A(인수·합병) 을 추진하거나 사세를 확장하고 있다.
국내 PEF 시장도 성장했다.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 대체투자 확대, M&A 시장 성장, 경쟁력 있는 운용 인력 등이 그 토대가 됐다. 경영참여형 PEF의 출자약정액 총액은 2019년말 84조원에 달한다. 2015년 말 59조원이었던 PEF 출자약정액은 △2016년 말 62조원 △2017년 말 63조원 △2018년 74조원으로 증가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모펀드는 반쪽짜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가장 큰 걸림돌로 PEF의 10% 지분 의무보유 규제(10% 룰)가 꼽혔다. 국내 PEF는 10% 지분규제로 대기업 투자가 불가능해 기업들의 지배구조 개선이나 기업가치 제고 논의에서 배제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10% 룰이 사라지면서 PEF의 소수 지분 투자를 가로막은 빗장이 사라진다. 신생 기업에 성장 자금을 공급하거나 대기업의 일부 지분을 매입해 경영에 관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셈이다.
10% 룰 폐지로 국내 PEF도 미국 사모펀드 엘리엇처럼 삼성이나 현대차그룹 같은 대기업의 지분 1~2%를 취득해 지배구조 개편, 배당 확대, 자사주 소각 등 행동주의 전략을 펼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또 PEF가 백기사 펀드 형태로 기업과 연합해 해외 헤지펀드와 맞대결을 펼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 공격이 빈번한 일본에선 일부 PEF 운용사가 기업 우군 역할을 하기 위해 지분을 확보하고 있다. 동북아시아 중심 PEF 운용사 MBK파트너스의 경우 일본에서 진행하는 투자의 60%가 백기사 펀드 성격이다.
사모펀드 운용사 관계자는 "PEF에 10% 룰이 사라지면 국내에도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 설립이 활성화되는 등 다양한 투자 전략을 구사하는 펀드들이 등장할 것"이라며 "기업을 위협하기 보다 기업의 성장을 도모하고 PEF가 모험자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원은 "PEF가 하는 일이 될성부른 회사를 골라서 키우는 것"이라며 "기업도 PEF의 투자를 받아 성장 기회를 마련하면 결과적으로 경제의 부가가치가 커지는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또 "중장기적으로 제도가 정착된다면 금융측면에서는 다양한 융합전략을 활용한 글로벌 사모펀드를 육성하고 산업측면에서는 모험자본이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국민재산 증식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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