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 한달, 골드만삭스 빼곤 "쿠팡 사라"는 글로벌 IB가 없다..왜?
상장주관 골드만삭스만 "매수"
상장 첫날 시초가보다 27.8% 하락
첫번째 축포가 터진 뒤 잠잠하다. 떠들썩하게 월가에 입성한 지 한달된 쿠팡 얘기다. 상장 첫날 장중 주당 69달러까지 찍으며 ‘괴력’을 과시했으나 그 이후 줄곧 주가가 40달러대에서 맴돌고 있다. 쿠팡을 ‘사라’는 월가의 투자은행(IB)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단기간 ‘반전’을 기대하기엔 녹록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9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쿠팡은 45.85달러에 마감했다. 지난달 11일 쿠팡은 시초가가 63.5달러로, 공모가보다 81% 높게 거래를 시작한 뒤 장중 최고 69달러까지 오르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이후, 주가(종가 기준)는 큰 폭을 등락하며 상장 첫날 시초가에 비해 27.8%나 낮다.
쿠팡 주가 전망, 네이버 주시하는 글로벌 IB
상장 이후 쿠팡을 리서치 대상 종목에 포함한 글로벌 투자은행의 평가는 어떨까. 12일 <한겨레>가 글로벌 투자은행 5곳의 보고서와 코멘트를 종합하면, 쿠팡에 대한 월가의 판단은 ‘4대1’이다. 미즈호증권, 크레디트스위스(CS), 제이피모간, 도이치은행은 ‘중립’(보유) 투자의견을 내놨다. 이들이 제시한 12개월 내 목표주가도 46~50달러로 현재 주가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반면 골드만삭스만 튀는 의견을 내놨다. 이 은행은 목표주가를 62달러로 잡는 한편, ‘매수’ 의견을 내놨다. 시장 일각에선 골드만삭스가 쿠팡의 상장 주관사 구실을 한 점을 들어 남다른 의견을 제시한 것이란 평가도 나온다.
월가에서 영향력이 큰 투자은행 다수가 쿠팡에 ‘짠’ 평가를 내놓은 이유는 쿠팡 경쟁력 자체에 의구심을 갖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목표주가를 47달러로 제시한 크레디트스위스는 보고서에서 “쿠팡이 다른 주요 시장의 경쟁자들만큼 우위에 있지 않다. (동종업계 다른 기업보다) ‘프리미엄’을 주고 거래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짚었다. 한국 시장에서 쿠팡의 시장 점유율(18%)이 경쟁사 네이버(14%)에 견줘 압도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중국의 알리바바와 미국의 아마존은 자국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각각 51%, 38%에 이른다. 제이피모간(목표주가 48달러)도 “2021년 네이버와 비교한 분기별 점유율 상승 속도가 향후 쿠팡 주가 상승의 핵심 요인”이라고 꼬집었다. 쿠팡이 네이버를 압도하지 못하는 이상 목표주가를 상향 조정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심지어 유일하게 ‘매수’ 의견을 내놓은 골드만삭스도 쿠팡의 불투명한 미래를 짚는 언급을 보고서에 담았다. “쿠팡은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전자상거래 업체다. (그러나) 쿠팡의 빠른 배송을 겨냥한 네이버와 씨제이(CJ)대한통운의 제휴로 쿠팡의 성장이 부진할 수 있다.” 실제 네이버는 대한통운에 이어 지난달 신세계와도 지분 맞교환으로 결속을 강화하며 서비스 확장에 속도를 내고 있다. 월가의 투자은행이 네이버의 행보를 주시하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쿠팡의 ‘해자’를 어떻게 볼 것인가
그럼에도 골드만삭스는 ‘직매입 기반 로켓배송’이라는 쿠팡 물류 체계를 쿠팡만의 ‘경제적 해자(moat, 垓子)’로 보고 현재보다 35% 높은 주가에 베팅했다. 워렌 버핏의 주요 투자 기준으로도 잘 알려진 ‘경제적 해자’는 다른 경쟁 기업이 갖기 어려운 구조적 진입장벽이나 경쟁우위를 가리킨다. 그간 쿠팡의 막대한 물류 인프라 투자로 국내 인구 70%는 쿠팡 물류센터로부터 반경 7마일(11.3㎞) 이내에 거주 중이다. 이조차 6마일 이내로 줄인다며 추가 물류 투자를 진행 중이다. 골드만삭스는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점유율(18%)을 2023년엔 28%, 2030년이면 47%로 절반 가까이에 이를 것으로 내다본다. 이에 따라 쿠팡이 2023년엔 에비타(EBITDA) 기준으로 손익분기점을 맞추고, 2030년엔 82억달러(약 9250억원) 이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골드만삭스는 추산한다. 에비타는 법인세나 이자, 감가상각비를 차감하기 전 영업이익으로, 본연의 영업활동으로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미즈호증권(50달러)도 “네이버 등 경쟁사 공세에도 쿠팡의 차별화된 모델이 ‘상당한 진입장벽’을 만들어낸다”며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의 최종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 증권사는 “펀더멘탈(기초체력)은 좋지만, 더 매력적인 진입 시점을 (투자자들이) 기다리기를 선호한다”며 매수 의견은 내지 않았다. 크레디트스위스도 쿠팡 모델이 따라잡기 어려운 강점이라는 점을 인정했다. 다만 “쿠팡의 호재(특장점)는 주가에 대체로 선반영됐다”고 이 투자은행은 판단했다.
과로사 이슈, 김범석 1인 리스크 제기도
월가는 쿠팡의 과로 이슈에도 주목했다. 쿠팡의 잠재 리스크 요소로 봤다는 뜻이다. 제이피모간은 “지난해부터 한국에서 떠오른 택배·물류업계의 과로 이슈 중심에 쿠팡이 있다”며 “향후 쿠팡이 더 나은 직원 안전과 복지를 위해 더 많은 인건비를 들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가 언급한 ‘경영진 리스크’도 눈길을 끈다. 에릭 차 골드만삭스 애널리스트는 “쿠팡의 실행력은 능력이 뛰어난 경영진에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 ‘1인 리스크’가 있다”고 지적했다. 즉 쿠팡의 경영이 김범석 의장 ‘개인 플레이’로 좌지우지 되는 것을 회사의 리스크로 본 것이다. 그러면서도 골드만삭스는 “다만 쿠팡이 설립된 지 불과 10년밖에 되지 않았고 최근 상장된 만큼 당장 경영진이 이탈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며 “특히 한국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쿠팡의 지배적인 위치를 고려할 때, 수년간 성장을 누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박수지 기자 su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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