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묵묵부답 'HAAH'만 바라보다 '화' 키웠다.. 2009년 악몽 재현 우려

지용준 기자 2021. 4. 13. 0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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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모습./사진=뉴스1 민경석 기자

쌍용자동차가 10년 만에 법정관리(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되면서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잠재적 투자자 ‘HAAH오토모티브’(HAAH)가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면서 기업 청산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함께 대비해야 하기 때문. 예병태 쌍용차 사장은 책임을 통감하며 사의를 표명하기도 했다.

법정관리에 진입한다고 회사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최종 결정은 법원의 판단에 따르는 것인 만큼 쌍용차에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법원은 기업의 존속가치와 청산가치 등 여러 가능성을 살피게 된다. 만약 존속가치가 크다고 판단하면 기업 회생을 위한 구조조정 등의 절차와 함께 정부 지원이 시작되고 새로운 투자자도 물색하게 된다. 하지만 청산가치가 크다고 판단하면 쌍용차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믿었던 HAAH에 발등 찍힐까


자동차업계와 이해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쌍용차의 시나리오는 총 세 가지로 정리된다. ▲법정관리 진입 전 잠재적 투자자인 HAAH로부터의 투자를 받아내는 것 ▲법정관리 후 인수자 확보 ▲청산 등이다.

먼저 HAAH로부터의 투자는 3월31일까지 법원에 제출키로 했던 쌍용차 투자의향서(LOI)를 제출하지 않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면서 투자가 물거품이 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에 따르면 HAAH 측이 투자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시간을 달라”고 요청한 것인 만큼 법정관리에 앞서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쌍용차 관계자는 “잠재적 투자자의 인수 의지는 변함없다”며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업계는 HAAH의 행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 결단이 늦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다. 쌍용차가 지난해 말 법정관리 신청 이후 HAAH에 끌려다니면서 손해액만 약 2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추정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HAAH가 전략적으로 나오는 것”이라며 “칼자루를 쥐고 쌍용차를 흔든 셈”이라고 표현했다.

당초 HAAH는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 규모의 쌍용차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주주(51%)가 되는 방안을 내세웠다. 투자 조건으로 산업은행에 같은 규모의 금액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했다. HAAH가 쌍용차의 경영 정상화를 이뤄내려면 적어도 5000억원 이상의 투자금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쌍용차의 3700억원 공익채권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다시금 투자 입장을 유보한 것이다.

업계에선 쌍용차가 HAAH를 대신해 새 투자자를 찾아 나설 수 있다고도 본다. 법정관리 이후 쌍용차의 몸집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내 전기버스업체 에디슨모터스 등 3곳이 투자의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다.


10년 전 악몽 재현될까


여의도 KDB산업은행에서 금속노조 회원들이 지난 1월 기자회견을 열고 쌍용자동차 회생 지원과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스1 신웅수 기자

HAAH가 쌍용차 투자와 관련해 명확한 의사표현을 하지 않는 만큼 남은 방법인 법정관리 후 인수자 모색이나 청산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법정관리가 시작되면 법원은 쌍용차의 존속가치를 판단하며 자산과 실적 등 상황을 낱낱이 살펴보게 된다. 이후 법원이 계속기업으로서 가치가 높다고 보면 본격적으로 정상화를 추진한다. 반대의 경우 자산 매각 등 청산 절차를 밟는다.

이처럼 여러 가능성이 제기되는 것은 쌍용차의 재무구조 탓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쌍용차는 지난해 기준 자본잠식률이 111.8%, 자본 총계는 -(마이너스)881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15분기 연속 적자에 시달려왔고 적자 규모도 해마다 커지며 자본잠식 상태에 이르렀다. 업계 관계자는 “경기도 평택시 동삭로 455-12 외 165개 필지에 대한 자산재평가에서 2788억원 향상된 점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업계 일부에선 법원이 청산 결정을 내리는 것도 쉽지 않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청산 결정이 내려지면 쌍용차는 물론 협력업체까지 대량 실직이 예측되는 만큼 법정관리 이후 인수자 찾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다. 법원이 쌍용차의 법정관리 조기 졸업을 검토하려는 것으로 알려진 만큼 초점은 법정관리 방식으로 옮겨진다. 업계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진입하면 쌍용차의 체중 감량이 본격화될 것”이라며 “상거래·회생 채권 등 빚을 탕감하고 과다 인원을 구조조정하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 경우 2009년 2000여명의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발생했던 쌍용차 사태가 재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지난해 기준 쌍용차의 직원은 4800여명. 앞선 쌍용차 사태와 비슷한 규모로 구조 조정할 경우 직원수는 반토막 난다. 대규모 구조조정을 노조가 받아들일 수 있는지가 쟁점인 것이다.

쌍용차가 그동안 법정관리에 진입하지 않고 HAAH와 P플랜(사전회생계획)을 진행했던 것도 인력 문제에서 잡음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법정관리에 진입하면 협력업체들이 쌍용차 편을 들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부품 납품 대가로 쌍용차가 지급한 어음만 약 25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법정관리 진입할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협력업체들도 떠안아야 하는 처지다.

쌍용차 협력사 관계자는 “법정관리에 진입하더라도 납품 보이콧은 하지 않기로 정했다”며 “빚을 탕감해주더라도 어떻게든 쌍용차를 살려내는 게 부품사 입장으로선 최선의 선택”이라고 피력했다. 

다만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쌍용차가) 회생절차에 간다고 망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재기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한 점을 두고 업계에서는 확실치는 않지만 쌍용차에 마지막 희망이 생길 수 있다고 풀이하기도 했다.

이 연구위원은 자동차산업은 전·후방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문제를 간과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에둘러 표현했다. 그는 “자동차 업계 M&A(인수·합병) 시장은 항상 똑같다”며 “인수자가 정부와 기업을 쥐락펴락하는 형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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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준 기자 jyju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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