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농장 개들 253마리 살린 죄(罪)..'형사고발'과 벌금 724만원

남형도 기자 2021. 4. 13.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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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농장일 땐 25년 방치한 계양구청, 죽을뻔한 개들 8개월 보호했는데 형사고발..'청와대 국민청원'에 기댈 수밖에
그냥 두었으면 개고기로 팔려갔을 개들. 그걸 먹었을 사람들. 그런 사람과 같은 종족인데, 다가가면 이렇게 웃으며 반겨주는 게 미안했다./사진=남형도 기자

253마리의 개들이 있었다. 눈 떠보니 인천 계양산에 있는 개농장이었다. 구멍이 숭숭 뚫린 좁다란 뜬장(바닥에서 떠 있는 철창)이 집이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먹다, 변을 보면 뚫린 밑바닥으로 빠져나갔다. 그러다 몸집이 커진 뒤에야 바깥으로 나갔다. 생애 처음 땅을 밟는 날은, 죽으러 가는 날이었다.

여기 땅 주인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이었다. 1992년부터 이모씨 부부가 땅을 빌려 개농장을 해왔다. 인천 계양구청은 2017년이 되어서야 철거하겠다고 나섰다. 시끄럽단 민원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땅은 개발제한구역이기도 했다.

계양산 개농장은 2020년이 되어서야 철거 논의가 본격화 됐다. 문제는 그곳에 있던 253마리의 개들이었다. 하루에도 4~5마리씩 도살장으로 바삐 보내졌다. 싹 다 죽게 될 위기에 처했다.

편히 앉아 있는 것조차 사치였다. 개농장 뜬장 안에서 사는 삶이 그랬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지나가던 시민이 여길 우연히 알게 됐다. 개들을 살리고 픈 시민 150여명이 모였다. 시민모임이었다. 동물보호단체 케어도 참여했다. 동물보호단체 대부분이 시민들 요청에 모른척할 때, 유일하게 도운 곳이었다.

개농장 주인은 육견사업을 포기하는 위로금으로 돈을 받았다. 소유권을 넘겨 받은 건 아녔다. 어떻게든 살리기 위한 거였다. 미국에 있는 복지가가 3300만원을 냈다. 2020년 7월 22일부터는, 가까스로 도살이 중단됐다.

처음으로, '살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똑같은 개들이다. 보호자와 행복하고 싶고 사랑 받고 싶어하는. 뜬장서 태어난 안소니(왼쪽)와 해외로 입양가 아이와 행복하게 뛰어노는 안소니(오른쪽)은 같은 개다. 그저 같은 개다./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개들은 뜬장서 내려와 처음 땅을 밟았다. 펜스를 쳤으나 사방이 뚫려 있어, 지난해 겨울엔 정말 다 얼어죽을 뻔했다. 가까스로 모금해 비닐하우스를 쳤다. 비로소 엎드려 편히 잘 수 있게 됐다. 음식물 쓰레기 대신에 깨끗한 물과 사료를 먹었다. 평범한 돌봄도 큰 행복이었으리라. 그리고 아플 땐 치료도 받았다. 죽기 위해 길러졌던 개들이, 처음으로 살기 위한 시간을 보냈다.

시민들은 밤낮 가리지 않고 봉사를 했다. 단체 톡방에 지난해 11월부터 들어가 있었다. 365일 언제나 대화가 오갔다. 오늘은 봉사자가 적다고 걱정했고, 그러면 제가 가겠다고 나섰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싸가지고 가는 이들도 많았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상관 없었다. 아픈 녀석들을 보며 노심초사하기도 했다.

개들을 보호하고 살리기 위한 이야기가 매순간 오가는 '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단톡방. 그런데 '시민보호소'로 인정해줄 순 없단다./사진=남형도 기자

개들을 살려야 했다. 보호를 받으니 정말 달라졌다. 실은 우연히 거기서 태어난 것일뿐, 다 같은 개였다. 식용견이 따로 있는 게 아녔다. 해외 입양 가기 전엔 씻기고, 말리고, 이름표도 붙여주고, 이동시켜 봉사해주는 이도 있었다. 뜬장서 벌벌 떨던 녀석이 새 보호자를 만나 뛰어노는 사진을 봤을 때 행복이란 것. 그건 살리려는 이들에게만 주어지는 거였다.

그렇게 계양산 개농장서 구한 개들은 253마리에서 계속해서 줄어들었다. 그러나 대형견이라 국내 입양도 쉽지 않아 속도는 더뎠다. 시민들이 물심양면 노력했으나, 여전히 그곳엔 160마리가 남아 있다.

계양구청, 개농장 25년 방치했으면서…보호하는 8개월만에 '형사고발'
계양산 개농장서 살린 개들은 해외로 가서 새 삶을 살게됐다. 마지막 인사, 눈맞춤, 살아줘서 고맙고 살려줘서 고맙다는. 개들은 차마 몰랐을 게다. 자신을 보호해줬단 이유로 형사고발까지 당했을 줄은. /사진=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
살리기 위한 시간이 더 필요했다. 갑자기 다 죽이거나, 산에 그냥 풀어놓으란 게 아니라면. 유예기한을 충분히 더 달라고 했다.

그러나 계양구청 도시재생과 개발제한구역관리팀은 불과 8개월 만에(유예기간으로 준 2020년 8월 말부터 현재까지), 롯데목장 개살리기 시민모임을 형사 고발(2021년 3월 2일)하고 이행강제금 724만원을 부과(4월 2일)했다. 개발제한구역 내 시민 보호소가 불법이니 철거하란 거다. 개들은 알아서 하란 식이었다.

개농장으로 있을 땐 25년(1992년부터 첫 계도에 나선 2017년까지)이란 시간 동안 방치해놓고, 개들을 살리고 보호하는 8개월은 두고 보지 못해 고발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계양구청 환경과 오수관리팀도 '가축분뇨 배출시설'을 불법 설치했다며 행정 처분을 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다. 5월 24일까지 유예기간을 주고, 이후엔 형사 고발을 하겠다고 예고했다.

'유기견 보호시설'로 인정 받으면 가축분뇨 배출시설서 제외하지만, 계양구청은 계양산 시민보호소 개들이 개농장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보호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박성환 계양구청 지역경제과 동물보호팀장은 "동물보호법에 개농장 개들 내용은 없다"고 했다. 개농장서 태어났으니 가축이란 얘기다. 90여마리를 살리고 돌보고 먹이고 치료했어도.

죽을 개들 살린 시민들에게만 죄(罪) 물어

정리하면, 계양산 개농장을 둘러싼 상황은 상당히 역설적이다.

우선 개농장을 운영하던 이씨 부부는 3300만원을 받고 빠졌다.

땅을 빌려줘 개농장을 시작할 단초를 제공한 롯데 측도 아직 시민모임 측과 제대로 된 합의를 못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보상 금액 부분에 있어선 합의가 됐으나 지급 시기를 놓고 논의 중"이라고 했다.

심지어 계양구청은 롯데 측 상속인들에 대해선 형사 고발도 진행하지 않았다. 이학진 계양구청 도시재생과 개발제한구역관리팀장은 "토지 소유자이긴 하지만 행위를 직접적으로 한 건 아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박형우 계양구청장. 시민모임에서 박 구청장을 만나러 수차례 갔으나 단 한 번도 만나주지 않았다./사진=박 구청장 페이스북

관할 지자체인 계양구청은 개들을 살리기 위한 해결책은 아무것도 내놓지 못하면서, 무조건 불법이니 나가라고만 압박하고 있다. 시민모임 관계자는 "계양구청 공무원들 말대로 철거하고 개들을 산에 다 풀어 놓으면 어떻게 할 생각인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처음 개농장을 만들지도 않았고, 땅 주인도 원래 자기 일도 아녔던, 시민모임만 형사고발을 당하고 이행강제금 724만원을 물게 됐다. 생명을 모른척하지 못하는 측은지심을 지닌 죄(罪), 자신의 돈과 시간을 들여 개고기가 될 뻔한 개들을 여태껏 살려낸 죄다.

이제 남은 건 '청와대 국민청원' 뿐
계양산 개농장 개들을 살린, 시민보호소를 보호소로 인정해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 청원 기간은 5월 9일까지다. 한 달 안에 20만명을 넘겨야 청와대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이젠 달리 남은 방법이 없다. 청원 주소(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x6ycVA)./사진=남형도 기자
이들은 더는 기댈 곳이 없다. 청와대 국민청원 말고는.

계양구청이 내린 시정명령을 취소하려 행정심판을 했으나 기각됐다. 인천시에 시민보호소소로 지정되게 해달라 청원했으나(역대 최다 청원), 구조나 보호 대상이 아니란 대답만 돌아왔다.

시민모임은 지난 9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국민청원(https://www1.president.go.kr/petitions/Temp/x6ycVA)을 올렸다. 동물보호시설로 유권해석을 해달라고, 형사고발을 취하하고 중단해달라고, 롯데 상속인 4명이 도덕적 책무를 다하게 촉구해달란 게 골자다.

법도, 행정기관도, 땅주인인 기업도 보호해주지 않는 '사각지대'서 기댈 곳이 청와대 국민청원밖에 없다. 한 달 안에 20만명을 채워야 하는데, 고작 9000여명(12일 기준) 밖에 안 됐다. 기한은 5월 9일까지다. 힘들단 걸 안다고 했다. 그래도 해보자고 한 건, 정말 방법이 없어서였다.

초록 빛이 늘어나고 있건만, 계양산 시민보호소엔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곳엔 여전히 160마리 개들이 살아 있다.

지금 어떤 일이 있는지도 모르면서, 사람을 보면 마냥 좋아서 꼬릴 흔들고, 귀를 젖히고, 핥아주는 귀한 생명들 말이다.

"우리도 살고 싶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계양산 시민보호소에서 만난 녀석. 그리 말하는듯 하다./사진=남형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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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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