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당신의 문해력

입력 2021. 4. 1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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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2학년 사회 수업 시간, 교사가 사회 불평등 현상을 보여주는 영화로 '기생충'을 소개하며 "이 영화의 구성 초기에 가제는 데칼코마니였대요. 가제가 뭐야? 아는 사람?" 하고 물으니 "랍스터요"라는 답이 나왔다.

본방송 때 챙겨보지 못해 지난 주말 몰아보기를 시작한 EBS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프로그램 속 한 장면이었다.

'당신의 문해력'은 문맹률은 낮지만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한국의 실태를 점검하는 방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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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고등학교 2학년 사회 수업 시간, 교사가 사회 불평등 현상을 보여주는 영화로 ‘기생충’을 소개하며 “이 영화의 구성 초기에 가제는 데칼코마니였대요. 가제가 뭐야? 아는 사람?” 하고 물으니 “랍스터요”라는 답이 나왔다. 본방송 때 챙겨보지 못해 지난 주말 몰아보기를 시작한 EBS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프로그램 속 한 장면이었다. ‘가제=랍스터’라는 대답은 친구들을 웃기려는 학생의 장난이 아니었다. 교사는 ‘기생충’과 관련해 학생들이 모르는 기득권 위화감 차등 구김살 직인 양분 같은 단어의 뜻을 설명하느라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학생들이 우리말 뜻을 몰라 영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영어 교사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지난주 화성 탐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게재한 후 ‘잘못된 말을 썼다’는 독자의 항의 메일을 받았다. “우주 개척 철학의 빈곤 심각… ‘예타’하는 나라 한국뿐”이라는 제목에서 ‘예비타당성조사’의 줄임말인 ‘예타’를 지적하며, ‘애타하는’을 ‘예타하는’으로 틀리게 썼다는 힐난이었다. 신문 제목에는 ‘예타’ 밑에 라는 설명이 들어갔지만, 온라인 기사 제목에는 설명을 따로 넣을 수 없어 오해를 불러일으킨 모양이었다.

‘당신의 문해력’은 문맹률은 낮지만 문해력, 즉 글을 읽고 의미를 이해하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한국의 실태를 점검하는 방송이었다. ‘읽지 않으려는 아이들, 이대로 괜찮은 걸까’라는 질문에 ‘그래, 그래, 큰일이지’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제작진이 온라인에 올려놓은 성인 문해력 테스트를 풀어보고는 아연실색했다. 문제를 풀기 전 사전 설문에서 ‘당신의 문해력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내심 만점을 기대하면서도 겸손하겠다며 ‘매우 우수하다’를 체크하지 않았는데, 정말 ‘매우 우수하다’에 해당하지 않는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뇌와 언어, 난독증을 연구하는 인지과학자 매리언 울프가 ‘다시, 책으로’에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저자는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오랜만에 다시 펼쳐 들었다가 ‘뇌를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길고 난해한 문장을 이해하지 못해 좀처럼 책장이 넘어가지 않더라는 것이다. 디지털 매체를 사용하면서 듬성듬성 건너뛰며 읽거나 빠른 겉핥기식 읽기에 익숙해져, 자신조차 자신이 연구하던 ‘초보자 수준의 뇌’로 돌아간 것을 그동안 깨닫지 못했다고 했다.

‘당신의 문해력’은 초등 저학년들의 문해력 향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어 성인들을 위한 처방은 다뤄지지 않았다. 다만 테스트 사전 설문에서 힌트를 제시하고 있었다. 꾸준한 독서, 신문 기사 정독, 국어능력시험을 보는 등의 꾸준한 국어 공부, 일기·블로그 등 단문이라도 글을 자주 써보기…. 울프 박사는 ‘다시, 책으로’에서 연속적이거나 집중적인 읽기, 깊이 읽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을 권했다. 그는 깊이 읽기를 통해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 비판적 사고와 성찰하는 힘, 진실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판단력을 키울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이 능력들이 마비되거나 점점 사용하지 않게 되는 것은 민주사회에 있어 최악의 적이라고 단언했다. 비약하자면 역사상 갈등과 대립이 가장 심하다는 지금의 한국 사회 상황도 문해력 저하 혹은 난독이 원인일 수 있다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든, 심심풀이에서든 한 번 성인 문해력 테스트에 도전해 보시기를. 복약 지도서, 주택 임대차 계약서, KTX 열차 할인금액 계산 등으로 이뤄진 11문제를 15분 안에 풀어야 한다. 학생들만 걱정할 것이 아닌 게, 성인들의 평균 점수는 54점, 만점자는 0.5%라고 한다.

권혜숙 인터뷰 전문기자 hskw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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