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기운 사라질라"..강렬하고 거칠게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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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산이다.
자연을 품게 되면, 하늘도 산인 듯하고 산도 바다 같다지만, 도대체 무엇을 봤던 건가.
눈이 시리게 '푸른 산'이라니.
가로 2m에 육박하는 파노라마 같은 화면에 깊은 산세를 펼쳐낸 저곳은 '지리산-노고단'(2021)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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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다시 가나인사아트센터서
그간 매진해온 서정적 수채화 대신
아크릴물감·콜라주기법으로 변화줘
강렬한 색감 내뿜는 100호작품 다수
[이데일리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푸른 산이다. 상징과 은유에 자주 동원되는 흔한 ‘푸름’이 아니다. 슬쩍 묻혀 짜내면 내 속살까지 퍼렇게 물들일 듯한 코발트블루, 그거다. 자연을 품게 되면, 하늘도 산인 듯하고 산도 바다 같다지만, 도대체 무엇을 봤던 건가. 눈이 시리게 ‘푸른 산’이라니.
가로 2m에 육박하는 파노라마 같은 화면에 깊은 산세를 펼쳐낸 저곳은 ‘지리산-노고단’(2021)이란다. 그렇다고 굳이 푸른 ‘지리산’만 바라볼 것도 아니다. 온통 보랏빛이 뒤덮은 ‘월출산’(2021)도 보이고, 노랗고 불그스름한 ‘대둔산 가을’(2021)도 있다. 초록 숲과 주황 하늘이 잿빛 바위 사이에서 랑데부 중인 ‘내장산’(2021)도 빠뜨릴 수 없다. 벗겨지고 날아가 차라리 희어져버린 ‘한라산’(2021)은 또 어쩔 건가.
슬쩍 알아챘겠지만, 유독 작품에서 시선을 붙드는 게 있다. ‘색’이다. 제멋대로 생긴 산에 제멋대로 입혀낸 색 말이다. 화가가 작품에 색을 쓰는 게 뭐가 이상한 일이겠나. 하지만 이 화가라면 다르다. 허투루 넘길 일이 아니다 싶은 거다.
중견작가 권찬희(58). 국내서 손꼽히는 수채화가로 활동해 왔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바닥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고 투명한 톤에 부드러운 질감을 입힌 아련한 전경들이 그이의 손끝에서 연달아 밀려 나왔다. 무엇보다 물·산·섬을 찾아 현장에서 바로 옮겨놓는, 밑그림 없는 수채화는 작가의 장기이자 무기다. 5호(34.8×27.3㎝) 남짓한, 휴대가 가능한 캔버스작품이 유독 많았던 건 그 때문이다.
그러던 작가가 색을 쥐었다는 건 적잖은 변화를 겪었다는 뜻이 아닌가. 강렬하고 진해진 색감뿐만이 아니다. 수채물감 대신 아크릴물감을 꺼내 들고 여리한 질감 대신 거친 마티에르를 얹었다. 새롭게 시도한 기법도 있다. 잡지에서 뜯어내고 오려낸 조각을 화면에 붙여낸 콜라주 작업이다. 결정적으로는 이들을 다 담아낸 작품의 규모가 잔잔한 수준을 뛰어넘는데. 100호(162.2×130.3㎝) 이상의 대작이 적잖은 거다.
이 모두를 한자리에 내보이는, 작가의 열네 번째 개인전이 열린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가나인사아트센터에서 2년여 만에 다시 여는 전시의 테마는 ‘여정스토리-피우다’. 전국이 좁다 하고 스케치여행을 다니는 작가에게 ‘여정스토리’는 오래된 키워드다. 이번에는 여기에 ‘피우다’를 얹어 확장한 영역을 에둘렀다. ‘자연과의 교감’도 여전하다. 서정이 흐르는 풍경화 작업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작가의 붓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코로나19가 계기라면 계기”라고 작가는 말한다. “자꾸 사람과 멀어지라고 하니 대신 찾아나선 산에서 새로운 것을 봤다”는 거다. “둔덕에 머물다 돌아오던 예전과 달리 정상에 올라 능선을 바라보고 거대한 산세를 마주 대하니 큰 작품을 할 수밖에 없더라”고도 했다. 덕분에 마무리는 작업실에서 ‘제대로’ 했단다. 산에서 얻어온 기운이 사라지기 전 색감과 질감으로 새겨넣었다.
이번 개인전에는 70여점을 건다. ‘지리산-노고단’을 앞세워 ‘월출산’ ‘내장산’ ‘한라산’ 등 파격적으로 작업방식을 바꾼 100호 이상 8점, 10∼50호 4점이 나온다. 그렇다고 해도 작가의 수채화가 빠지면 영 허전할 터. 소품으로 제작한 수채화 60여점이 그 빈틈을 메운다. 전시는 14일부터 19일까지다. 서울전 이후 전북 익산예술의전당 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겨 21일부터 25일까지 이어간다.
오현주 (euanoh@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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