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미라 특별법’을 제정하라

원선우 기자 2021. 4. 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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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이집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이집트 박물관에 있던 고대 이집트 파라오와 왕비 미라 22구가 국립문명박물관으로 운구하는 ‘파라오의 황금 행진’ 행사가 열렸다./AFP 연합뉴스

지난 3일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서 역사적인 행사가 열렸다. 타흐리르 광장 이집트박물관에 있던 고대 이집트 파라오와 왕비 미라 22구를 최근 완공된 국립문명박물관으로 운구하는 ‘파라오의 황금 행진’이었다. 이집트 국영 TV 유튜브에 공개된 2시간짜리 영상을 보니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 수준인 이집트가 그야말로 국운을 걸고 연출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오케스트라와 대합창단이 장엄한 곡조를 연주하는 가운데, 고대 이집트 파라오 장례식 때 쓰던 목선을 본뜬 운구 차량들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전통 의상을 입은 무용수들과 의장대·군악대 행렬도 이어졌다. 파라오들의 ‘새집 입주’를 축하하기 위해 21발 예포가 발사됐다. 신왕국 절대 군주였던 람세스 2세, 최초 여성 파라오 하트셉수트의 미라도 이날 운구됐다.

한국에서 발견되는 미라도 인류사적 가치가 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조선시대 ‘회곽묘’ 장례 풍습 때문에 이장·파묘 때마다 상당수 미라가 나온다고 한다. 머리카락과 피부는 물론 소화기관 내 음식물까지 보존돼 있어 당대 생활사를 증언한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조선 왕릉에 잠든 임금과 왕비도 미라가 돼 있을 가능성이 적잖다고 한다. 현재 ‘파평 윤씨 모자(母子) 미라’ 등 8구가 고려대 등에 보관돼 있다.

하지만 국내 대표 미라학자 김한겸 고려대 교수가 최근 정년 퇴임한 후 이 미라들이 곧 화장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현행 매장문화재법은 출토된 유물의 법적 지위는 규정하고 있지만 미라·인골에 대한 항목은 없기 때문이다. 2010년 발굴된 ‘오산 구성이씨·여흥이씨 묘 출토복식(총 96건 124점)’은 최근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됐다. 그러나 정작 무덤 주인이었던 여성 2명은 차가운 부검실에 10년 넘게 방치 중이다. 1998~2017년 문화재청에서 파악한 미라 59구 중 24구가 재매장 또는 화장됐다.

문제는 결국 여의도 정치권으로 돌아온다. 미라에도 법적 지위를 부여해 체계적인 보관·관리를 꾀하도록 하는 매장문화재법 개정안이 2014년, 2016년 발의됐지만 회기 만료로 모두 폐기됐다. 한국은 국민소득 3만달러,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다. 하지만 우리 국회의원들의 인문학적 감수성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집트에 비교할 수준이 못 된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은 뜻밖에도 국제적인 관광 명소다. 2019년 누적 관람객 3000만명을 돌파했다. 외국인 비율이 10%대, 연 20만명 규모다. 이른바 ‘밀덕(군사 마니아)’ 외국인들이 “아시아에도 이런 곳이 있느냐”며 감탄한다. ‘한국 미라 박물관’도 그런 곳이 될 수 있다. ‘무연고 시신’으로 화장되느니 후손이 마련해준 안락한 집에서 쉬시는 게 조상님 입장에서도 편하실 터다. 관련 일자리 창출 효과도 있다. 정치권에 ‘미라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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