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년 전 조선 왕실의 밤잔치, 오색찬란 LED로 되살려

허윤희 기자 2021. 4. 13.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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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리뷰] 야진연(夜進宴)

거대한 벽면에서 폭포수가 쏟아지며 연희가 시작된다. 바닥은 커다란 연못이 되고, 객석에서 걸어나온 황제가 천천히 무대 위 뱃머리로 오른다. 뱃길로 형상화한 무릉도원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설정이다.

119년 전 왕실의 밤잔치를 재해석한‘야진연’. LED 영상으로 펼치는 무대는 화려하지만, 고종의 기로소 가는 길을 무릉도원으로 설정한 대목은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국립국악원

119년 전 어둠을 밝혔던 궁중 잔치가 화려한 LED 무대로 되살아났다. 국립국악원이 1902년 펼쳐진 왕실의 밤 잔치를 재해석한 공연 ‘야진연(夜進宴)’이다. 국악원 개원 70주년을 기념해 선보이는 이번 공연은 대한제국 황제 고종의 기로소(耆老所) 입소를 축하한 잔치 중 밤에 열린 잔치를 재해석했다. 기로소는 나이 70세 이상의 고위 문신을 예우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조선시대 임금 중에서도 태조와 숙종, 영조, 고종만 들어갔다. 국악원이 소장한 10폭 병풍 ‘임인진연도병’ 중 여덟 번째 폭에 담긴 야진연 모습을 바탕으로 구성했다.

무대를 감싼 LED 영상이 시시각각 바뀌면서 은하수 수놓은 밤하늘을 판타지로 풀어냈다. 12종목의 궁중 무용에서 춘앵전, 선유락 등 6종목을 추렸고, 여민락, 수제천, 해령 등 궁중음악의 정수를 담았다. 이상원 정악단 예술감독은 “임인진연의궤에는 곡 제목이 아명(雅名)으로 표기돼 있고 악보가 전해지지 않아 곡을 구성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현재 전승되는 궁중음악의 진수만을 뽑아 구성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궁중음악의 맥을 이어온 국립국악원이 힘 있는 무대를 현대적 감각으로 펼쳐 보였다. 하지만 망국을 앞둔 격변의 시기, 기로소로 향하는 고종의 발걸음을 무릉도원과 연결한 설정부터 고개를 갸웃하게 만든다. 개원 70주년 대표 공연이라는 위상에 걸맞게 기존 궁중 잔치의 재현보다는 창작 음악의 역사와 미래까지 아울렀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14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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