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첫 아내는 이브 아닌 릴리트, 인류 최초 페미니스트였다?

홍익희 전 세종대 교수 2021. 4. 13.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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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희의 新유대인 이야기] [8]
유대신화의 인류 첫 여성.. 神과 남성에 맞선 릴리트

유대 신화에 의하면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창조했다. 아담(Adam)과 릴리트(Lilith)다. 릴리트가 아담의 첫 번째 아내였다는 주장이다. 주장의 근거는 이렇다. ‘성서’ 창세기 1장에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사람을 지어내시되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라고 쓰여 있다. 중세 유대교 신비주의 ‘카발라’를 신봉하는 랍비들은 이 구절을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를 동시에 만든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이어진 2장에는 하느님이 아담과 이브를 각각 따로 만들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하느님께서는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하시고는”,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신 다음 갈빗대 하나를 뽑아 여자를 만들었다.

19세기 英화가 존 콜리어의 '릴리트' - '릴리트'는 유대 신화에서 남자 '아담'과 동시에 창조된, '이브'보다 앞선 첫 번째 여인으로 전해진다. 유대교 신비주의자들이 창세기 1장과 2장의 모순을 없애려 고안한 해석으로도, 가나안에서 숭배받던 다산의 여신을 차용한 것으로도 여겨진다. 1970년대 유대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며, '릴리트'는 남성과 신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최초의 여성으로 재조명받았다. 존 콜리어, ‘릴리트’(1889), 영국 사우스포트 앳킨슨 아트갤러리 소장. /위키피디아

이 모순을 없애기 위해 유대교 랍비들은 처음 구절은 ‘릴리트’를, 두 번째 구절은 ‘이브’를 만든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이야기는 7~10세기 유대교 문헌 ‘벤 시라의 알파벳’에 처음 나온다. 11세기 카발라 문헌 ‘조하르’(빛의 책)에도 신이 아담을 위해 동반자를 창조했고 그 최초의 여자가 릴리트라고 기록되어 있다.

릴리트에 대한 또 다른 설이 있다. 아담의 첫 번째 아내 릴리트 이야기는 초기 유대교를 만든 사람들이 수메르 신화를 유대 신화에 도입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릴리트는 당시 가나안에서 추앙받던 다산의 여신으로, 뱀과 교합하는 밤의 마녀였다.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수메르 점토판에는 릴리트 여신이 새의 날개와 발톱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이 외에도 수메르 신화의 차용 예가 더 있다. 히브리 성서(구약 성경)의 에덴동산은 수메르 신화 ‘딜문’ 동산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딜문은 ‘정토’ ‘밝은 세계’란 뜻으로, 병도 죽음도 없는 생명의 땅이었다. 딜문동산 신화에서는 창조주가 여신이었는데 에덴동산 신화로 넘어오면서 창조주는 남신이 된다. 모계사회에서 남성 중심의 부계사회로 바뀌는 당시의 사회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노아의 대홍수도 수메르 서사시 ‘길가메시 서사시’의 대홍수 이야기를 따온 것으로 보인다. ‘길가메시 서사시' 점토판은 고고학자 레어드가 1851년 니네베 궁전 지하 서고에서 발견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 의하면, 길가메시에 의해 릴리트 여신은 쫓겨나고 이난나(난나) 여신이 등장한다. 이난나는 밤을 지배하는 달의 신으로, 풍요와 지혜의 여신으로 숭배받아 부엉이로 상징되었다. 이난나 역시 자신의 성적 매력으로 남자들을 홀리고 다닌 뒤 싫증나면 버리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난나 여신은 그리스 신화에서 아프로디테, 로마 신화에서 비너스로 거듭난다. 이후 릴리트 이야기는 문학에서도 부활한다. 괴테의 희곡 ‘파우스트’에 릴리트가 아담의 첫 아내로 등장한다.

인류 최초의 부부 싸움

유대 신화에 의하면, 아담과 릴리트는 성교 문제로 싸움을 시작했다. 릴리트는 성관계할 때 늘 남성 상위 체위를 하는 것과 아담이 원하면 무조건 성관계에 응해야 한다는 것에 불만을 가졌다. 릴리트가 “똑같이 흙으로 만들어졌는데, 왜 나만 당신 밑에 누워야 하느냐?”며 항의했다. 아담은 “나는 너보다 윗사람이니, 너는 내 말에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으나, 릴리트는 “우리는 둘 다 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동등하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복종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하면서 감히 말해서는 안 되는 거룩한 여호와의 이름을 거리낌 없이 부르며 홍해 근처 동굴로 도망가 악마 루시퍼의 연인이 되었다. 아담은 이 사실을 여호와에게 하소연했다. 여호와는 천사 3명을 보내 릴리트를 데려오도록 했으나 그녀는 귀환을 완강히 거부했다. 이 이야기는 성관계에 대한 불만으로 비치지만 인간의 본질적 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이다. 시대를 앞선 릴리트의 진보적인 사고였다.

17세기 플랑드르 화가 조르다엔스의 '아담과 이브' - 루벤스와 반 다이크 이후 17세기 대표적 플랑드르 화가였던 자코브 조르다엔스의‘아담과 이브’(1642). 뱀의 유혹도 필요 없어 보일 만큼 탐욕스럽게 선악과를 따 먹는 이브와, 유혹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욕망이 이끄는 대로 팔을 내민 아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스페인 톨레도 미술관 소장. /위키피디아

이렇듯 원래 유대 신화에 의하면, 남녀는 평등하게 태어났다. 릴리트의 추방은 신의 뜻이 아니라 아담의 윽박과 구박 때문이었다. 릴리트는 오늘날 페미니스트 운동의 선구자였다. 그녀가 도망간 뒤, 여호와는 아담의 갈빗대를 취해 이브를 만들었다. 이브는 릴리트와는 달리 순종적이고 희생적이었다. 이런 아담의 갈비뼈 신화 때문에 유대 문화에는 철저한 남존여비 사상이 존재한다. 남녀 사이에 태생적 상하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다. 게다가 아담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따먹게 한 이브의 유혹은 여자가 남자보다 더 죄질이 무겁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 벌로 여자는 해산의 고통과 남편에 대한 복종을 숙명으로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유대인 사회에서 여자는 공동체를 구성하는 성인의 머릿수에 포함되지 않는다. 시너고그(유대회당) 의무교육에도 참가할 수 없어 여자아이는 보통 집에서 엄마가 가르쳤다. 여자는 예배에서도 배제되었다. 지금도 정통파에서는 여자가 남자와 함께 앉지 못하고 따로 앉아 예배를 드린다. 그리고 가족 사업에서도 제외되었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여자를 집안 사업에 참여시키지 않은 이유다. 율법도 남자처럼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 여자, 곧 신부(新婦)는 단지 거래의 대상이었다. 지금도 유대인들은 철저한 가부장제를 지켜, 집안의 가장은 남편이며 가장의 자리에는 그 누구도 앉을 수 없다. 심지어 이스라엘 초정통파 유대 사회에서 여성은 결혼과 동시에 삭발하고 가발을 써야 한다. 유부녀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외간 남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음모를 보여주는 것과 같다고 해석하는 유대 학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부에서 여성에 대한 지독한 차별이 아직도 존재한다. 물론 유대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는 개혁파에서는 이러한 관습이 많이 개선되어 남녀평등이 지켜지고 있다.

릴리스(릴리트) 콤플렉스

유대교에서 파생된 기독교에서도 여자는 남자보다 죄의식을 더 많이 가져야 한다는 사상이 깔려 있다. 실제로 사도 바울은 이브를 근거로 ‘남편은 모든 여자의 머리’라며 여성에 대한 남성의 권위를 강조했고, 여성 교육을 금지했으며, 여성들에게 침묵을 지킬 것을 명했다. 성 오거스틴도 이브는 아담의 옆구리에서 그 형태를 부여받았기 때문에 아담에게 봉사하도록 지어진 부수적 존재라고 했다.

이브는 가부장적 기독교 문화에서 이상적으로 바라보는 여성상으로, ‘남편에게 복종하는 현모양처, 모성애가 강해 육아와 집안일을 좋아하는’ 반면 릴리트는 ‘남녀 동등권을 주장하며, 성생활을 즐기고, 모성애를 거부하는’ 여성이다. 사실 여성의 내면에는 두 모습이 공존하고 있다. 하지만 남성 지배적 문화 구조는 일방적으로 이브의 미덕만을 인정하고 찬양했다. 여기서 유래된 용어가 ‘릴리스(릴리트) 콤플렉스’이다. 남자와 동등한 권리를 주장하거나, 성적으로 적극적이거나, 아이를 원하지 않는 본능을 지나치게 억압하는 문화 현상을 말한다. 특히 여성에게 모성애를 지나치게 강조해서 여성이 전적으로 육아를 담당하게 하고, 그러지 않으면 아이에게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만들었다.

[페미니즘 운동의 아이콘 릴리트]

페미니즘은 ‘여성도 인간이다’라는 지극히 당연한 선언으로 출발한다.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여성 억압의 상태와 원인을 설명하고 여성 해방을 위한 해법을 제시하는 이론이다. 페미니즘 운동가 중에 유독 유대인 여성이 많다. 그만큼 유대인 사회의 남성 우월주의가 심했다는 반증이다. 여자가 처음으로 남자는 물론 신에 맞섰다는 이야기 자체가 강렬했기 때문에 릴리트가 페미니즘 운동의 아이콘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1970년대 유대 페미니즘 운동이 일어나면서 재조명되었다. 유명한 신학자이자 유대 페미니즘 운동가인 주디스 플라스코가 책 ‘릴리트의 탄생’을 펴내며 전설 속의 악마와 요부로 취급되던 릴리트를 남성과 신에 맞서 자신의 권리를 위해 투쟁한 최초의 여성으로 만들어냈다. ‘여성 인권저널’을 창립해 평생을 여성 인권을 위해 싸워왔던 유대인 대법관 루스 긴즈버그는 이런 말을 했다. “여성에게 특혜를 달라는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 목을 밟고 있는 발을 치워 달라는 것뿐이다.”

유대인 사회의 남성 우월주의는 결국 사고를 치고 말았다. 유대인들이 주도하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2017년에 폭로된 혐오의 실체는 놀라웠다. ‘반지의 제왕’ 등을 히트시킨 유대인 영화 제작자이자 감독인 하비 와인스틴은 100건이 넘는 성범죄를 저질렀으면서도 그간 비밀 유지 각서 등의 교묘한 장치를 통해 여성을 억압해온 자였다. 그의 성추행 사건이 뉴욕타임스 기사를 통해 폭로되자 ‘나도 당했다’는 미투(Me too) 운동이 본격적으로 촉발하였다. 그 뒤 미투 운동은 전 세계로 빠르게 퍼져 나가며 연예계를 넘어 재계와 정치계로 그 범위가 확대 중이다. 이제 여성 누구나 남성 중심 사회의 억압에 맞서는 릴리트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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