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과 큰 정부의 시대..'증세'가 다가오고 있다 [김학균의 금융의 속살]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2021. 4. 12.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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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미국이 법인세 인상 계획을 밝히고 있는 가운데,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은 다른 나라들에도 법인세 인하 경쟁을 멈추자고 제안했다. 이에 대해 독일과 프랑스가 동의를 표했고, 국제통화기금(IMF)도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이에 앞서 영국은 2023년부터 법인세 세율을 올리기로 결정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국면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난 공공부채 때문에 증세가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경제 운용에 정부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오래된 논쟁거리이다. 많은 이들에게 감세와 규제 완화로 대표되는 작은 정부 패러다임이 익숙하겠지만, 자본주의가 늘 그렇게 운영돼왔던 것은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 국면을 기점으로 1960년대까지 이어진 시기는 큰 정부의 시대였다. 경제 운용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매우 컸고, 그러다 보니 미국의 최고 소득세율은 90%를 넘어서기도 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부가 책임져줬지만, 이를 위해 세금은 많이 걷었다. 반면 1980년대부터는 가능하면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시장의 자율권이 커지는 흐름이 자본주의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패러다임의 변화는 직전 시대에 대한 부정에서부터 비롯된다. 큰 정부 시대의 방종과 무능이 1980년대 이후 작은 정부의 시대를 불렀다. 케네디 대통령 사후 집권한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건설은 미국 진보주의자들의 로망이었지만, 이때부터 미국 경제는 쇠락기에 접어들기 시작했다. 방만한 재정지출과 중앙은행의 통화 증발로 만성적 인플레이션이 나타났고, 기축통화 달러의 권위도 심각하게 훼손됐다. 가능하면 많은 것을 경쟁과 시장에 맡기는 1980년 이후의 흐름은 이런 과정에서 잉태됐다.

이젠 다시 큰 정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이번에는 작은 정부 시대의 어떤 그림자들이 부정되면서, 새로운 세상의 동력이 되고 있는 걸까. ‘불평등’과 ‘경제적 자원 배분의 실패’를 들고 싶다. 두 표현은 실은 동전의 양면이다. 불평등은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로 설명할 수 있다. 많은 한계가 지적되고 있지만 그래도 국내총생산(GDP)은 실물경제 활동을 평가하는 가장 권위 있는 지표이다. 주식시장 시가총액은 금융영역에서 평가받는 경제(기업)의 가치로 볼 수 있다. 한국과 미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에서 최근 10여년간 주식 시가총액 증가 속도가 GDP 증가율보다 훨씬 빠르게 나타났다. 2020년 말 기준 한국과 미국의 GDP 대비 시가총액 비율은 각각 119%와 234%이다. 직전 사상 최고치는 양국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이었던 2007년에 기록됐는데 한국이 99%, 미국이 195%였다.

주가 상승이 국가 경제에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건 아니다. 주식시장이 버블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설사 버블이 붕괴되더라도 그 손실이 주주 이외의 다른 경제주체들에게 파급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 문제는 실물경제의 정체 속에 나타나는 자산가격의 상승은 불평등을 강화시킨다는 점이다. 주식이건, 부동산이건 기본적으로 투자는 여윳돈을 가진 사람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시드머니가 많건, 적건 관계없이 말이다.

방법론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역사적으로 근로소득의 증가율보다 자산가격 상승률이 높았고, 이런 점이 불평등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필자는 그래서 생활인의 관점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투자하고 사는 게 좋다고 본다. 토마 피케티가 투자를 장려하려고 글을 쓴 건 아니겠지만 말이다. 작년부터 나타나고 있는 주식투자 붐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다만 어떤 경우든 실물이 정체된 가운데 주가만 오르면 버블에 대한 논란과 별도로 불평등이 강화된다. 투자를 하는 사람보다 안 하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작년에 주식투자 붐이 일면서 한국의 주식투자 인구는 913만명까지 늘어났다. 2019년의 613만명에서 폭발적인 증가세를 나타냈지만, 경제활동인구 3735만명과 비교하면 2020년 말의 주식투자 인구 비율은 24%에 불과하다.

1980년대 이후의 시장과 경쟁 중시 패러다임으로 능력 본위에 따른 불평등이 강화돼 온 가운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는 실물경제와 자산시장의 괴리가 극단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식이야 투자를 안 하고 살 수도 있지만, 의식주를 구성하는 필수 항목인 주택가격 급등 앞에서 많은 이들이 느끼는 절망감은 불평등의 생생한 증거이다. 민간에서 이뤄진 경제적 자원 배분이 실물경제보다 자산시장에 편중돼 이뤄진 데 대한 성찰이 큰 정부의 시대를 불러오고 있다고 본다. 정부가 시장보다 더 잘한다는 보장은 그 누구도 할 수 없지만, 부정해야 할 상은 비교적 명백한 게 아닌가 싶다. 장기적으로 주식시장의 가장 큰 리스크는 투자자들이 전유했던 부를 정부가 가져가 경쟁에서 뒤처진 사람들에게 분배하는 일련의 과정이고, 이는 증세의 형태로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김학균 |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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