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하게 또 섬세하게..러시아 고전, 뮤지컬이 되어 돌아오다
[경향신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재해석한 블루레인
‘첫사랑’ 각색한 붉은정원
“1997년 7월2일, 나는 죽었습니다.” 다소 충격적인 첫 대사, 곧이어 배우의 서늘한 얼굴을 비추는 조명. 살해된 남자, 존 루키페르의 독백으로 시작하는 뮤지컬 <블루레인>은 초반부터 강렬한 몰입감을 선사한다.
폭력적이고 탐욕스러운 아버지이자 지역 유지인 존 루키페르가 자신의 저택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현장에서 검거된 이는 그의 장남, 테오다. 진범은 누구인가를 두고 한 편의 범죄소설처럼 전개되는 극 초반부터 반전을 거듭하며 내달리는 결말에 이르기까지, 공연은 선과 악의 경계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코로나19로 움츠렸던 공연계가 새봄을 맞아 고전을 재해석한 창작 뮤지컬을 잇따라 선보이며 관객과 만난다. 도스토옙스키, 투르게네프 등 러시아 문호의 고전문학이 뮤지컬 무대에서 재탄생했다.
지난달 16일부터 서울 대학로 드림아트센터에서 공연 중인 <블루레인>은 도스토옙스키의 대작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바탕으로 한 창작 뮤지컬이다. 원작의 친부 살해라는 소재를 1990년대 후반 미국으로 시공간을 옮겨 재해석했다.
아버지를 죽인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인물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의심하며, 선과 악의 경계를 넘나든다. 테오의 이복동생인 변호사 루크는 형의 변호를 맡지만 내심 그가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을까 의심한다.
얼룩진 아버지의 과거와 대면하게 되는 주인공 루크는 테이·윤형렬·양지원이, 결백을 주장하는 용의자 테오 역은 김산호·임강성·임정모가 연기한다. 잔혹한 아버지이자 비극의 씨앗인 존 루키페르는 최민철·박시원·최수형이 열연한다.
무대를 채우는 것은 배우들과 여섯 개의 의자 그리고 시시각각 변하는 조명뿐이다. 단출한 의자들로 구성된 무대는 배우들의 연기와 어우러져 살인사건이 발생한 대저택, 테오의 집과 그가 일하는 클럽, 경찰서 취조실로 전환된다.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도 공연을 꽉 채우는 것은 감각적인 조명이다. ‘블루레인’을 떠올리게 하는 푸른빛과 레이저를 쏘는 듯한 붉은빛이 교차하는 조명이 독특한 아우라로 각 인물이 처한 심리적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서울 대학로 유니플렉스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붉은정원>은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19세기 러시아의 한 정원으로 관객들을 데려간다. <붉은정원>은 투르게네프의 대표작 <첫사랑>을 원작으로 각색한 창작 뮤지컬이다. 원작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18세 소년 이반뿐만 아니라 위태로운 삼각관계에 놓인 주인공 세 사람 모두의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단 세 명의 배우만 출연하는 공연이지만 섬세하면서도 드라마틱한 감정 연기로 극을 이끌어 간다.
소극장 공연임에도 매 공연 플루트,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연주자들의 라이브 연주를 들을 수 있다. 공연계에서 주목받는 작곡가 김드리의 섬세한 클래식 선율이 극에 대한 몰입도를 높인다. 지난 2월 막을 올린 공연이지만 관객 호응에 오는 18일까지 3주간 연장 공연하며, 배우 오창석이 이반의 아버지 빅토르 역으로 합류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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