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법 개혁 외쳤던 바이든의 '난민 희망고문'
올해 단 2050명만 인정..트럼프 때보다도 규모 줄어들어
[경향신문]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가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적은 수의 난민을 받아들이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에서 망가진 이민법을 개혁하겠다”던 바이든 대통령의 공언이 오히려 ‘희망고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는 12일(현지시간) 국제구조위원회(IRC) 자료를 인용해 바이든 정부가 출범 이후 현재까지 2050명의 난민을 받아들였고, 이 추세라면 올해 총 4510명의 난민을 받아들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정부가 임기 마지막 해 받아들인 난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이다. 허리케인과 코로나19 피해 탓에 심각한 생활고를 겪고 있는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온두라스 등 3개국에선 단 139명의 난민만 인정됐고, 무슬림 난민은 고작 42명만 받아들인 것으로 조사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 때부터 트럼프 정부의 ‘비인간적’인 이민법 개혁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난 1월20일 취임 직후 서명한 행정명령 17건 중 6건이 이민 관련 조치였다. 특히 취임 보름 만인 지난 2월3일에는 트럼프 정부가 한 해 1만5000명으로 제한한 난민 인정 규모를 12만5000명으로 확대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하지만 난민 인정 규모를 큰 폭으로 늘리는 행정명령은 발표 두 달이 넘도록 아직까지 대통령의 공식 재가를 받지 못한 상태다. 통상적으로 대통령의 재가는 행정명령 발표와 동시에 이뤄진다.
IRC의 글로벌 정책 담당 부대표인 나자닌 애쉬는 워싱턴포스트에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을 하지 않은 구체적 이유를 알 수 없다”면서 “서명은 행정조치 과정의 아주 자연스러운 마지막 단계일 뿐인데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결국 바이든 정부가 기대감만 한껏 부풀린 채, 행정명령에 서명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이민자들의 혼란을 더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바이든 정부가 이민자들에게 포용적인 제스처를 취하면서 지난 석 달 동안 미국 국경에는 많은 이민자들이 모여들었다. 멕시코 국경을 넘어온 미성년 이민자는 3월 한 달에만 1만9000명이 몰려 월 단위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뉴욕타임스는 정부보고서를 인용해 “오는 6월까지 미성년 이민자의 수가 3만5000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원책과 수용시설이 턱없이 부족해 미성년자를 3일 이상 수용할 수 없게 돼 있는 ‘국경 감옥’에 어린이들이 한 달 이상 머무르며 대기하고 실정이다.
IRC의 애쉬 부대표는 “바이든 대통령의 절차 지연은 처음에는 혼란으로 다가왔고 이제는 깊은 우려를 일으키고 있다”며 “결과적으로 난민들을 더 힘든 상황에 빠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주 공개한 2022년 회계연도 예산안에 난민재정착사무소 예산 43억달러(4조8405억원), 난민 수용한도를 늘리기 위한 예산 3억4500만달러(3884억원), 인도적 지원을 위한 예산 100억달러(11조2600억원)를 반영했다. 하지만 활동가들은 불안정한 상황의 난민들이 내년 회계연도까지 기다릴 여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최근 지방정부 선출직 공무원 100여명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올해 회계연도에 총 6만2500명의 난민 수용을 위한 예산이 반영되도록 즉각 행정명령에 서명할 것을 촉구했다.
장은교 기자 ind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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