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품 용기의 재활용 마크를 믿지 마세요

김한솔 기자 2021. 4. 1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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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개 제품 모니터링 해보니

[경향신문]

‘화장품 어택’ 시민 모니터링 요원들이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 녹색연합에 모여 다 쓴 화장품 용기 가운데 재활용할 수 있는 것들을 골라내고 있다. 그러나 화장품 용기 대부분이 반투명하거나 색깔이 있어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재활용 시 품질이 떨어지는 복합재질로 만든 용기가 특히 많았다. 녹색연합 제공
재질명·순환 마크 찍혔어도
색 등 다른 성분 첨가되면
재활용 안 되는 그냥 쓰레기
‘OTHER’는 대부분 불가
화장품 업체 등급 표기 면제
“회수 여부 상관없이 부적절”

사용 후 깨끗이 세척된 흰 로션 용기가 있다. 용기 하단엔 재활용 마크와 함께 재질명인 ‘페트(PET)’가 표기돼 있다. 펌프는 ‘OTHER(복합재질)’, 뚜껑은 ‘PP(폴리프로필렌)’ 재질이다. 마크도 찍혀 있고, 재질도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이 용기는 재활용이 가능할까? 거의 불가능하다.

페트는 투명한 것만 재활용할 수 있다. 이 용기 재질은 페트지만 겉에 ‘흰색’을 입혔기 때문에 재활용할 수 없는 ‘쓰레기’가 됐다. 두 가지 이상의 성분으로 구성된 OTHER는 재활용해도 그 품질이 워낙 낮아서 거의 재활용되지 않는다. 이것저것 다 빼고 나면 이 용기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크기의 작은 뚜껑뿐이다.

화장품 용기는 대체로 이런 식이다. 재활용이 가능할 것처럼 생겼지만, 거의 할 수 없다. 그런데도 환경부는 최근 화장품 업체들의 재활용 등급 표기를 면제해 주는 행정예고를 했다. 용기에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 등 재활용 등급 표시를 하고, 재활용이 어려운 것은 ‘재활용 어려움’이라고 표시해야 하는데 이를 면제한다는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녹색연합 작은 마당과 사무실에 샴푸와 로션 등 다양한 종류의 빈 화장품 용기 550개가 쌓였다. 화장품 용기의 재활용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고 있는 녹색연합이 시민들과 화장품 용기의 재활용 가능 여부를 직접 모니터링하기 위해 마련했다.

재활용 가능 여부는 용기의 몸통 재질을 기준으로 판단했다. 단일 재질인 페트, PP, HDPE(고밀도폴리에틸렌), LDPE(저밀도폴리에틸렌), PS(폴리스타이렌)이면 재활용할 수 있다. 페트는 투명하더라도 용기 표면에 직접 인쇄가 돼 있으면 재활용할 수 없다. 유리병은 투명, 녹색, 갈색만 가능하다.

용어가 복잡하고 조건이 다양해 설명서를 옆에 펴놓고 분류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 설명서가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록 시작 10분 만에 빈 샴푸통 15개를 모니터링했는데, 단 한 개도 재활용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이유도 똑같았다. ‘불투명, 반투명 페트 재질’. 30개를 넘어가면서부터는 아예 기록지에 ‘재활용 불가능’을 미리 써놓고 분류를 진행했다. 페트·유리 할 것 없이 알록달록한 색이 입혀져 있었고, 어쩌다 하나씩 나오는 투명 용기에는 표면에 브랜드명과 사용법이 프린트돼 있었다.

분류 시작 30분 만에 유리처럼 묵직한 투명 용기를 발견했다. 사용법도 탈·부착할 수 있는 스티커로 붙어 있길래, 반가운 마음에 일단 ‘재활용 가능’에 표기를 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니 ‘유리처럼 만든’ OTHER 재질의 페트였다. 여기저기서 “(재활용 가능한 거) 어, 찾았다! … 아니네?” “무슨 보물찾기 하는 것 같네” 등의 이야기가 들렸다.

재활용 가능 여부 자체를 알기 어려운 것도 문제였다. 현행대로라면 재활용 마크와 상관없이 ‘어떤 재질이 어떤 상태일 때’ 재활용할 수 있는지 개인이 알아서 파악해야 제대로 분리수거를 할 수 있다.

환경단체의 항의가 계속되자 환경부는 ‘자체 회수 시스템을 갖춘 업체’에만 등급 표기를 면제해주는 것으로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화장품 업체가 용기를 자체 회수하더라도 재활용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허승은 녹색연합 팀장은 “자체 회수와 상관없이 표기 예외를 두는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김한솔 기자 hanso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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