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美-韓 역사 왜곡 학자 '문옥주 증언 찬탈'

안양봉 2021. 4. 12.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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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피해자들의 증언을 편집해 의미를 자의적으로 바꿔놓는데요, 대표적인 사례가 위안부 피해자 고 문옥주 할머니 증언입니다.

증언을 거꾸로 뒤집은 거나 다름없다는 비판까지 나오는데요.

어떻게 왜곡하고 있는지 이어서 안양봉 기잡니다.

[리포트]

1991년 첫 공개 증언을 한 문옥주 할머니.

[故 문옥주 할머니 : "보통은 30-40명, 토요일은 50-60명, 일요일은 60-70명까지 손님을 받고 있었습니다."]

16살에 헌병대에 붙잡혀 위안소로 간 할머니는 6년만에 귀국합니다.

그런데 일본 하타 이쿠히코는 미얀마 위안소를 탈출한 할머니 사례를 들며 "문옥주가 베트남 사이공까지 갔던 것을 보면, 귀국한 위안부가 적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할머니가 폐병 환자로 속여 탈출했던 앞뒤 사연을 자르고, 마치 떠나고 싶을 땐 떠날 수 있었던 자유인 처럼 왜곡한 겁니다.

[박정애/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 "당시 군대는 위안부를 사람으로 보지 않고 군수품으로 취급했습니다. 문옥주 할머니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고, 위안부로서는 가치 없는 병자라고 어필을 해서 위안소를 떠날 수 있었습니다."]

'반일 종족주의' 저자 이영훈 전 교수는 "우리도 일본인"이라는 문옥주 할머니의 법정 진술을 "위안부라는 신성한 책무를 인식하고 있었던 증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사실은 다툼 끝에 일본 군인을 살해한 할머니가 어떻게든 목숨을 건지려고 궁리 끝에 한 진술 입니다.

할머니의 이 저축 기록을 두고도 돈벌이를 잘했다고 왜곡합니다.

"지금 가치로 보면 1억엔이나 되는 큰 돈이다"

램지어는 "계좌를 둔 한국인 위안부 중 가장 잘했던 이는 문옥주였다"고 비꼽니다.

[강성현/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 : "동남아는 전시 초인플레 지역이었기 때문에 도쿄 물가지수, 가치로 보면 100엔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고요. 무엇보다 이게 군표였거든요. 실제 엔화가 아니에요."]

진심을 뒤틀어 위안부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왜곡하는 역사부정주의자들에 대해 위안부 전문가들은 이게 학문의 자유냐고 되묻고 있습니다.

KBS 뉴스 안양봉입니다.

촬영기자:임동수/영상편집:신선미/그래픽:김현석

안양봉 기자 (beebe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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