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이 "논의 없다"며 물러섰지만] 베이징 올림픽 공동 보이콧 이슈로 번진 미·중 갈등

전준범 기자 2021. 4. 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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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인들이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홍보하면서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 국제올림픽위원회

정권 교체 후에도 중국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이 이번에는 내년으로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동맹국들과 함께 ‘공동 보이콧’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대중(對中) 압박 수위를 높였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4월 6일(이하 현지시각) 진행된 정례 브리핑에서 베이징 올림픽 참가 여부에 관한 질문이 나오자 중국의 신장 지역 위구르족 인권 탄압 문제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그는 “동맹들과 중국에 대한 접근법을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 베이징 올림픽도 계속 논의 중인 이슈”라고 했다. 중국이 인권 탄압을 멈추지 않으면 미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가 중국에서 열리는 국가 스포츠 행사에 참가하지 않을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무역 분야에서 본격화한 G2 갈등은 이제 정치적으로도 충돌 양상을 보인다. 미·중 양국은 이 첨예한 갈등 상황에 동맹까지 끌어들여 긴장감을 더 고조시킨다. 3월 22일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을 대표하는 EU 이사회는 중국을 포함한 6개 국가의 단체·개인을 인권 유린 혐의로 제재한다고 밝혔다. EU가 인권과 관련해 중국을 제재한 것은 1989년 천안문광장 사태(무기 거래 금지) 이후 32년 만이다. 제재 대상은 EU에 입국할 수 없고 EU 내 자산도 동결된다. EU에 이어 캐나다·영국 등도 대중 제재에 동참했다.

중국은 즉각 반격에 나섰다. 중국 외교부는 대중 제재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가짜 정보를 퍼뜨리고 악의적으로 거짓말한다”며 중국에 부정적인 서구권 단체와 개인을 똑같은 방법으로 제재했다. 또 러시아와 외무장관 회담을 열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구두 친서 교환 소식을 공개하는 등 동맹 다지기에 열을 올렸다. 그러자 미국은 3월 30일 조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처음 출간한 ‘세계 인권보고서’를 통해 중국의 위구르족 탄압을 재차 비난하며 팽팽한 신경전을 이어갔다.

프라이스 대변인의 베이징 올림픽 보이콧 시사 발언도 이런 대립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중국과 힘 겨루기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서 인권 문제는 국제 여론을 자신들 쪽으로 쉽게 끌어당길 수 있는 소재다. 브리핑 이후 논란이 커지자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4월 7일 “베이징 올림픽과 관련해 진행 중인 논의는 없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나 미국은 앞으로도 대중 압박 카드가 필요할 때마다 올림픽 보이콧 이슈를 꺼내 들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스포츠의 정치적 활용이 올림픽 출전만 바라보며 수년간 땀을 흘려온 운동선수들의 불만과 국민 여론 악화를 야기할 수 있다며, 미국이 올림픽 보이콧을 강행하더라도 정부 대표단의 급을 하향하는 식으로 수위 조절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정치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 그룹은 미국이 영국·캐나다·호주 등과 함께 정부 대표단을 보내지 않거나 대표단의 급을 낮추는 식의 ‘외교적 보이콧’에 나설 가능성이 60%라고 관측했다. 선수 참가를 거부하는 식의 보이콧 가능성은 30%라고 분석했다.

만약 미국이 선수단을 보내지 않는다면 1980년 소련 모스크바 올림픽 때와 같은 냉전 분위기가 재현될 수 있다. 당시 미국은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이유로 올림픽 불참을 통보했고, 65개국이 미국과 뜻을 함께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은 4년 후 열린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에 선수단을 파견하지 않았다. 북한을 비롯한 16개국이 소련과 행동을 같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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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성이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연결 포인트 1
올림픽 후원사 삼성 ‘입장 곤란하네’

미·중 기(氣) 싸움이 올림픽 보이콧 이슈로 번지면서 후원사들은 난처한 처지에 놓였다. 어찌 됐든 미국의 보이콧 검토 사유는 중국의 ‘인권 탄압’이기 때문이다. 자칫 인권유린에 동조하는 이미지로 비칠 수 있다 보니 기업들은 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미국이 위험 부담이 큰 선수 불참 대신 후원 기업을 압박할 가능성도 있다.

베이징 올림픽의 글로벌 파트너는 에어비앤비·알리바바·알리안츠·아토스·브리지스톤·코카콜라·인텔·오메가·파나소닉·P&G·삼성·도요타·비자 등 13곳이다. 이 중 한국 기업인 삼성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화하는 등 지속 가능한 기업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 중이다.

삼성전자는 영국 비영리 기구인 기업인권벤치마크(CHRB)가 지난해 199개 기업의 ‘유엔 기업과 인권 이행지침(UNGPs)’ 준수를 평가한 결과에서 14.0점(26점 만점)을 받아 공동 50위에 올랐다.

일본 후쿠시마현 나라하의 주민들이 오륜기를 들고 성화 봉송을 환영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日은 코로나19 보이콧 수난

상상하기도 싫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2022년까지 이어진다면 베이징 동계올림픽 정상 개최 여부도 불투명해진다. 그렇게 되면 중국은 정치적 이유가 아닌 ‘생존을 위한’ 보이콧에 직면할지 모른다. 도쿄 올림픽 개최를 1년 연기했음에도 코로나19 사태가 끝나지 않아 위기에 몰린 일본처럼 말이다.

4월 6일 북한 체육성이 운영하는 ‘조선체육’은 홈페이지를 통해 “조선 올림픽위원회는 총회에서 악성 바이러스 감염증에 의한 세계적인 보건 위기 상황으로부터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위원들 제의에 따라 제32차 올림픽 경기대회에 참가하지 않기로 토의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가입한 206개 국가·지역 가운데 도쿄 올림픽 불참을 표명한 건 북한이 처음이다. 북한은 불참 발표 전 IOC에 별다른 통보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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