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부각한 삼성의 중소기업 '기술 과외'] 월 2000만 개 생산 'K주사기', 그 뒤엔 삼성 '제조의 달인'
“풍림파마텍의 성과는 삼성의 기술,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의 지원, 직원들의 주인의식이 있어 가능했다.”
3월 31일 ‘제1호 이달의 한국판 뉴딜’ 인물 부문에 풍림파마텍 직원 10명이 선정되자, 조희민 풍림파마텍 사장이 한 말이다. 풍림파마텍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접종 현장에서 쓰는 최소 잔여형(LDS) 주사기를 개발해 생산하고 있다. 일반 주사기로 코로나19 백신을 접종하면 20%가량을 낭비하게 된다. 풍림파마텍이 만든 LDS 주사기는 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백신 1바이알(병)당 접종 인원을 1~2명 더 늘릴 수 있는 셈이다.
풍림파마텍의 성과를 이야기할 때마다 빠지지 않는 인물이 있다. 김종호 삼성전자 스마트공장지원센터장이다. ‘제조의 달인’으로 불리는 김 센터장의 도움으로 반년 이상 걸린다던 LDS 주사기 양산이 두 달 만에 실현됐다.
시작은 지난해 12월 삼성전자 측 임원과 미국 제약사 화이자 임원 간 영상 통화였다. 당시 삼성전자는 한국에 백신을 들여오기 위해 전방위로 뛰었고 화이자는 여러 나라로부터 백신을 지원해달라는 요청에 시달렸다. 영상 통화가 성사된 배경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화이자 고위급 임원과의 개인적인 인연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와 화이자의 통화 말미에 주사기가 화두에 올랐다. 화이자 임원은 “일반 주사기로 백신을 접종하면 백신의 약 20%가 낭비돼 고민”이라는 취지로 말했다. 일반 주사기에는 밀대(피스톤)와 바늘 사이에 남는 공간이 0.07㎖가량 있어, 주사기에 정량보다 많은 양을 담아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임원은 이 문제를 해결하면 화이자로부터 백신을 확보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 삼성전자는 곧바로 주사기 생산업체를 찾았고, 특허나 기술 측면에서 풍림파마텍을 가장 적합한 업체로 꼽았다.
‘속도전’으로 한 달 만에 LDS 주사기 양산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면서 LDS 주사기 생산에 속도가 붙었다. 지난해 12월 24일 김 센터장은 풍림파마텍, 중기부와 처음 만나 머리를 맞댔다. 가장 시급한 것은 LDS 주사기 시제품 생산을 위한 ‘금형(金型)’이었다. 중소기업이 정교한 금형을 준비하려면 최소 한 달은 걸릴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구미‧광주 협력사 공장을 통해 나흘 만인 12월 27일 금형을 마련했다.
김 센터장을 비롯해 삼성전자 스마트공장 멘토, 삼성바이오에피스 연구원 등은 시제품 생산까지 도왔다. 40일가량 소요될 것으로 예상했던 시제품 생산은 지난해 말 마무리됐고, 풍림파마텍은 곧바로 시제품을 미국으로 보냈다. 화이자는 1주일 동안 성능 테스트를 진행했고, 올해 1월 9일 “기능이 탁월하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와 중기부의 지원에 힘입어 풍림파마텍의 LDS 주사기는 1월 15일 식약처의 국내 사용 허가를 받았다. 이어 2월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긴급사용 승인과 3월 16일 유럽안전인증(CE)까지 획득했다.
김 센터장은 이 기간 양산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사출성형기 납기가 3개월 이상 지연될 위기도 있었지만, 중고제품을 구하면서 이를 해결했다. 풍림파마텍은 지난 1월 기준으로 월 1000만 개의 LDS 주사기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삼성전자, 중기부와 첫 만남을 가진 뒤 한 달 만이었다.
풍림파마텍은 4월 말까지 제3공장을 준공해 LDS 주사기 월 생산량을 2000만 개로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세계 최대 규모의 LDS 백신 주사기 생산체계를 갖추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K방역’ 최전선서 막힌 곳 뚫어내
김 센터장은 풍림파마텍뿐 아니라 이른바 ‘K방역’ 최전선 곳곳을 누볐다. 지난해 코로나19 사태 초기 전국에서 마스크 부족 문제가 불거지자 마스크 생산업체 화진산업으로 달려가 일일 생산량을 4만 개에서 10만 개로 끌어올렸다. 당시 화진산업은 필터용 원부자재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김 센터장은 조달처를 연결해 화진산업의 고민을 해결해줬다.
코로나19 진단키트 양산도 김 센터장의 손을 거쳤다. 진단키트 생산업체 SD바이오센서는 핵심 부품인 작은 유리관을 독일에서 수입해왔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이를 공수하기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김 센터장의 도움으로 삼성전자 협력업체에서 금형을 제작하면서 국산화는 물론 대량 양산까지 가능해졌다.
스마트공장 지원사업을 함께하며 김 센터장을 옆에서 지켜본 차정훈 중기부 창업벤처혁신실장은 그를 “엄밀한 실행가”라고 표현했다. 차 실장은 “김 센터장은 제조 시간을 단축하면서도 제품 품질에 있어서만큼은 절대 타협하지 않았다”며 “새로운 분야는 직접 공부하고 준비할 만큼 전문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한 관계자는 “과장을 좀 보태면 김 센터장이 공장을 한 바퀴 돌면 막혔던 문제가 어딘지 드러나고, 두 바퀴 돌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제조의 달인을 만든 ‘애니콜 화형식’
김 센터장은 1957년 충남 홍성군에서 태어났다. 숭실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1983년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줄곧 공장에서 생산·관리 업무를 맡았다.
김 센터장에게 큰 변곡점이 된 사건이 바로 ‘애니콜 화형식’이다.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5년 3월 휴대전화 불량률이 11.8%에 이르자 경북 구미공장 운동장에 휴대전화 15만 대 등을 모아 놓고 해머와 불도저로 조각내고서 불태우게 했다. 시가 500억원어치 제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김 센터장이 무선사업부 제조부장이 되고 2개월이 지났을 때였다.
김 센터장은 공개석상에서 여러 차례 당시 일을 언급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조선일보와 중소기업중앙회가 함께 주최한 포럼 특별강연에서도 “애니콜 화형식에서 불을 붙인 장본인이 사실상 나였다”며 “품질이 잘못되면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회사를 30년 넘게 다닐 수 있었던 것도 품질에 관한 쓰라린 경험 덕일 것”이라고 했다.
김 센터장은 2013년 삼성전자의 모든 제품의 품질을 책임지는 글로벌 기술센터장(사장)으로 승진했다. 2016년에는 삼성중공업 생산부문장으로 일하며 조선소 생산 업무를 총괄했다. 2017년 ‘갤럭시노트7 발화 사태’ 때 삼성전자로 복귀, 세트 사업 전반에 걸쳐 품질과 제조 혁신을 주도하는 글로벌품질혁신실 실장도 지냈다.
삼성전자는 2015년부터 추진해오던 스마트공장 사업을 2018년 스마트공장지원센터로 개편하면서 김 센터장에게 맡겼다. 김 센터장은 3년 넘게 스마트공장을 비롯해 중소·중견기업에 필요한 종합지원 활동을 총괄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중기부는 2025년까지 2500개 중소기업에 스마트공장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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