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실의 서가] 불공정 세금의 결탁구조

이규화 2021. 4. 12.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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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기준 미국의 각 소득집단들은 소득의 25~30%를 세금으로 냈다.

소득 하위 50% 노동자들의 소득세는 25%다.

하지만 소득의 맨 꼭대기에 있는 슈퍼리치 400명에 도달하면 소득세율은 23%로 떨어진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8년 40억 달러를 벌었지만 단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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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왜 나보다 덜 내는가 이매뉴얼 사에즈·게이브리얼 저크먼 지음/노정태 옮김/부키 펴냄

2018년 기준 미국의 각 소득집단들은 소득의 25~30%를 세금으로 냈다. 소득 하위 50% 노동자들의 소득세는 25%다. 중산층으로 올라갈수록 세율은 조금씩 높아진다. 하지만 소득의 맨 꼭대기에 있는 슈퍼리치 400명에 도달하면 소득세율은 23%로 떨어진다. 미국 조세체계가 비례세(flat tax) 성격을 갖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렇게 역진적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의외다.

미국 조세체계에 허점이 있다는 사실은 최근 들어 자주 지적된다. 특히 슈퍼리치들에 대한 과세에서 이해하기 힘든 제도적 구멍이 있다.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2018년 40억 달러를 벌었지만 단 한 푼도 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그의 재산의 대부분이 주식으로 돼 있고 페이스북이 배당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인세를 부과할 수 있겠지만 페이스북의 이익은 서류상 미국이 아닌 케이먼제도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돼있다. 이곳의 법인세는 0%다.

책은 일반인들은 지나쳐버리는 미국 조세체계의 불편한 진실을 까발린다. 수많은 원천데이터를 샅샅이 뒤져 발견한 사실이다. 철저히 데이터에 근거한 주장이어서 반박이 쉽지 않다. 특히 공동저자 이매뉴얼 사에즈와 게이브리얼 저크먼 UC버클리 교수는 조세문제에 관한 한 최고 수준의 분석가로 인정받는 학자들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불공정한' 조세체계가 생기게 됐나. 저자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미국은 누진세가 제대로 적용되는 나라였다. 그러나 1980년대 레이건 시대에 접어들어 높은 세율에 대한 일부 반대여론이 일어났고 그 틈을 타고 '납세 회피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라는 인식까지 퍼지게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세금개혁법이 통과됐다. 민주당도 적극 동조했다. 본의든 아니든 부자들을 위한 결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저자들이 주장하는 공정한 세법은, 우선 누진적 소득세의 복원이다. 누진세 없인 불평등 악화를 해결할 가망은 없다고 단언한다. 다음으론 절적한 법인세율의 유지다. 최근 바이든 행정부가 G20 국가를 대상으로 법인세율 하한선을 국제적 규범으로 정하자는 제안은 이 점에서 타당하다. 그리고 타국의 세금을 파먹는 '세금 거머리' 조세도피처를 어떤 식으로든 손봐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이규화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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