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특허강국 코리아'의 민낯
"이러고도 '특허 강국'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대기업 연구소에서 특허 업무를 담당하는 A씨는 이 같은 말로 우리나라가 안고 있는 특허 현실을 꼬집었다. 특허 부서에서 수십 년 째 근무하고 있는 그는 예전과 비교하면 특허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많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특허는 우선 순위에서 밀려 배제되거나, 소외받는 존재임을 실감하고 있다고 했다.
단적으로, 기업 내부에서 특허 인력과 부서의 위상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대기업 특허 부서 중 별도 조직을 갖춘 곳이 많지 않고, 대다수가 연구나 법무 조직에 소속돼 회사 차원의 지원도 열악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기업들은 특허를 회사의 자산이기 보다는 비용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고, R&D(연구개발)를 통해 단순히 창출되는 마지막 결과물로 치부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대기업 등 민간 기업 대표들이 신년 경영계획을 발표하는 신년사에 특허경영이나 특허전략 관련 언급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코로나19 이후 보호무역주의 강화, 디지털 경제 전환, 신기술·신산업 창출 등이 가속화되면서 특허 중요성은 이전과 달리 한층 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특허 현실은 '특허 강국'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더욱이 특허가 4차 산업혁명 시대에서 국가 혁신역량을 높이는 무형의 핵심 자산으로 존재 가치를 높여가고 있음에도, 그에 걸맞게 대접받지 못한 채 비주류 신세에 머물러 있다. 정부와 민간의 특허에 대한 투자와 지원이 저조하다 보니 특허를 통한 경제적 가치 창출 역시 미미한 실정이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특허를 포함한 지식재산권 무역수지는 8억 달러에 이르는 등 수년 째 적자 국면을 벗지 못하고 있다. 2020년 미국 상공회의소가 발표한 국가지식재산지수에서도 13위를 차지하는 데 그치고 있다.
이 같은 특허 성적표는 2019년 기준 우리나라가 GDP(국내총생산) 대비 특허출원과 인구 대비 특허출원에 있어 세계 1위이자 특허출원 세계 4위의 '특허 강국'으로 양적 성장을 이룬 것과 대조적인 모습이다. 이 때문에 특허를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한 핵심 국가 자산으로 키워 미래 대한민국을 준비하기 위한 혁신의 씨앗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녹록치 않다. 올해 '국가 R&D 100조 원', '정부 R&D 투자 27조 원'이라는 전례 없는 높은 R&D 투자에 비해 우리나라 특허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특허청 예산은 6000억 원에 그치고 있다.
이를 산술적으로 단순 비교하면, 국가 전체 R&D 투자의 0.6%, 정부 R&D의 2.2%가 정부의 특허 예산으로, R&D에서 특허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적다는 것을 알 수 있다.
R&D 투자는 매년 고공 성장하는 반면, 특허에 대한 정부와 민간 투자는 늘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뒷걸음질 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 정부가 무역 제재를 통해 수년 째 중국과 기술패권 경쟁에서 한 치의 양보 없는 싸움을 하고,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2년 넘게 배터리 소송을 치열하게 벌인 속내에는 결국 특허를 무기로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과 맞닿아 있다.
19세기 들어 미국이 영국을 앞질러 세계적인 산업 국가로 부상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앞선 특허제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 당시 미국에 '발명왕' 에디슨을 비롯해 전화기를 발명하고 AT&T 창업자가 된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 코닥을 설립한 조지 이스트먼, 세계적 자동차 기업인 포드자동차의 포드 등 세계적인 혁신기업가들이 나올 수 있었다.
앞으로 주요 선진국 간 기술패권 경쟁은 더욱 격화될 것이고, 글로벌 시장의 승자독식 구조는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그 경쟁에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누가 얼마나 강한 특허를 선점하고, 이를 얼마나 강력히 보호해 주는 탄탄한 특허제도, 그리고 발명이라는 혁신의 씨앗을 잘 키워 줄 친(親)특허 생태계를 갖추고 있느냐에 판가름 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보유할 만큼 발명에 익숙하고, 발명친화적 국민이라는 점은 우리가 혁신국가로 도약하는 데 커다란 자산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준기기자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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