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의 촉] 민주당이 '대패'하자 '유시민 입'이 봉인해제됐다

이동훈 논설위원 2021. 4. 12.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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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씨, 노무현재단 이사장입니다. 친노친문 진영의 배후에 자리한 핵심 인물입니다. 논란의 인물입니다. 그가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유씨는 이번 보궐선거 전 유튜브에 출연해 ‘신념을 무조건 잘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답했습니다. “한결같은 것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구체적인 생각을 안 바꾸고 환갑이 지난 때까지 그대로 갖고 있으면 일관성이 있는 게 아니고 벽창호.” 사람이 살다보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죠. 친문 진영 일각에선 유 이사장의 이런 발언을 정계 복귀설로 해석하는 기류가 있습니다.

유시민씨는 2013년, 지금부터 8년 전에 정계은퇴를 선언했습니다. 2018년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으면서 또 다시 정계은퇴를 강조합니다. ‘임명직 공무원이 되거나 공직 선거에 출마하는 일은 제 인생에 다시는 없을 것이다’고 했습니다. 정치에 대해 떠들기는 하겠지만 공직을 맡거나 선거에 출마하지는 않겠다는 거죠. 이번에 등장해서 ‘사람이 살다보면 생각이 바뀔 수 있다’ 뭐 이런 얘기를 한겁니다.

이 내용을 소개하는 기사에 댓글이 이렇게 달렸습니다. “그가 복귀한다면 여권 세력에겐 천군만마” “이재명에 대항할 친문 후보는 유시민뿐”

유씨는 선거 직후, 미국 하버드대 교수들이 집필한 ‘민주주의는 어떻게 무너지는가?’를 읽고 “야당이 왜 민주주의 위기라고 현 정부를 비판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저도 이 책 읽어봤지만 저는 이책을 관통하는 하나의 메시지가 ‘국민에 의해 선출된 소수 엘리트들에 의해, 파시즘이 다수결의 미명하에 은밀하고 부드럽게 진행된다’는 문장 같습니다. 지금의 문재인 정부를 바로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유씨가 야당의 비판을 이해한다 합니다. 언뜻 들으면 야당 의견에 동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지금의 한국적 상황을 “여야가 정당 지지를 위한 싸움일 뿐”이라는 겁니다. 도리어 야당을 비판하는 겁니다. 유시민 특유의 곡하아세, 궤변입니다. 역시 유시민입니다. 그는 죽지 않았습니다.

대중은 참 쉽게 잊어버리고 값싸게 용서합니다. 유시민씨는 그런 대중의 망각을 먹고 사는 사람 같습니다. 비난이 쏟아지면 피했다가 잊혀질 때쯤 되면 다시 고개를 내밉니다. 특유의 궤변과 지식인연하는 모습을 앞세웁니다.

일단 조국 사태 당시 유씨가 해왔던 말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조국씨 아내의 PC 반출을 “증거 인멸이 아니라 검찰이 장난칠 경우를 대비한 증거 보존”이라고 했습니다. 검찰이 그 컴퓨터로 ‘장난을 치지’ 못하도록 집으로 미리 가져온 거랍니다. 최성해 전 동양대 총장은 “유씨가 전화를 걸어 ‘정 교수에게 표창장 발급을 위임한 것으로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유씨는 “유튜브 언론인으로서 취재 차 전화했다”고 합니다. 기자들을 검찰 받아쓰기나 하는 ‘기레기’로 매도합니다. 그의 말 한마디에 KBS 법조팀이 날아갔습니다. “검찰이 노무현재단 계좌를 들여다봤다”고 주장했습니다. 계좌를 본 검사로 한동훈 검사장을 지목했습니다. 그는 이 일로 고발됐습니다. 5억을 배상하라는 소송도 당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올해 초에 반성문도 썼습니다. “어떤 형태의 책임 추궁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 뭐 이런 내용 기억나실겁니다. 사실 그것도 ‘노무현 재단'을 둘러싼 잡음이 노출되면서, “유시민은 왜 노무현재단을 끌어들여 재단을 어지럽게 하느냐”는 친노 그룹의 비판 때문이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의 행적을 보면, 혹세무민의 연속이었습니다. 비난이 쏟아지면 잠수합니다. 비난이 사라지면 다시 고개를 내밉니다.

무엇보다 대선주자로서 유씨의 장점은 대중성입니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라는 책이 나온게 1989년입니다. 이후 100만부 넘게 팔렸습니다. 90년대 학번들이 운동권 입문단계 필독서였습니다. 유씨는 그 이후 많은 책을 냈고 베스트셀러가 됐습니다. 유씨 책 한권 없는 집이 없을 겁니다. 지금의 3040대의 정서를 좌우했던 사람입니다. 대중이 유씨에 대해 분노했다가 쉽게 잊어버리는 건 그가 깔아놓은 지식인 이미지 때문이 아닐까란 생각도 듭니다.

유씨는 “50대에 접어들게 되면 죽어나가는 뇌세포가 새로 생기는 뇌세포보다 많다. 사람이 멍청해진다” “개인적인 원칙 중 하나가 가능하면 60세가 넘으면 책임있는 자리에 있지 말자는 것이다” 이렇게 말했던 사람입니다. 유씨가 1959년생, 올해 62세입니다.

유씨의 재등장은 무슨 의미일까요. 보궐선거 패배로 상처받은 친문 진영을 달래기 위한 제스처일까요, 1년 후 대선을 보는 포석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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