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출발선..'K-배터리' 재가속 계기될까
테슬라·폭스바겐 완성차업계도 배터리 진출
LG에너지솔루션(LG엔솔)과 SK이노베이션(SKI)이 2년간 치른 배터리 분쟁의 종식으로 이른바 'K-배터리'의 글로벌 성장을 억눌렀던 문제가 해결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는 앞으로다. 경쟁 관계인 LG엔솔과 SKI, 삼성SDI 등 국내 3대 배터리 업체가 이끄는 K-배터리는 중국 기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의 도전에도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번 합의를 계기로 K-배터리가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세를 재가속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 LG와 SK, 기회와 도전
LG엔솔과 SKI는 기회와 함께 도전에도 직면할 전망이다. 일단 LG엔솔은 당장은 아니지만 몇년간 합의금 2조원을 추가 투자에 활용할 수 있다. 당초 요구했던 3조원에서 1조원 모자라는 규모다. 하지만 적지 않은 금액이다. LG에너지솔루션을 100% 자회사로 거느린 LG화학도 최근에 1조2000억원 규모의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채권을 발행한 바 있다. 이를 합하면 글로벌 시장을 개척하는데 상당한 마중물이 될 전망이다.
LG화학은 이 회사채를 ▲이산화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한 재생에너지 전환 투자 ▲친환경 원료 사용 생산 공정 건설 ▲양극재 등 전기차 배터리 소재 증설 ▲소아마비 백신 품질관리 설비 증설 ▲산업재해 예방 시설 개선 및 교체 ▲중소 협력사와의 상생을 위한 금융지원 등에 사용할 계획이다. 특히 이번 판결을 계기로 미국 투자를 확대할 것으로 관측된다. LG엔솔은 최근에 SKI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2025년까지 5조원 이상을 투자해 미국 내 공장을 최소 2개 추가로 지을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무엇보다 LG엔솔은 로열티를 받는 기술기업 타이틀을 달았다. 배터리 관련 지식재산권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향후 글로벌 고객사 유지, 확대에 긍정적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 당장의 금전적 이익만 거둔 것이 아닌 셈이다. 경쟁사와 상생하는 이미지를 얻은 모습도 소득이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구광모 회장이 LG 답게 명분을 챙겼다"는 해석도 나온다.
SKI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2조원에 껐다. 앞으로는 이 비용을 만회하면서 성장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관측된다. 충남 서산, 미국 조지아주뿐만 아니라 헝가리, 중국 창저우 등지에서 가동중인 배터리 공장을 증설해 생산능력을 끌어올릴 것이란 설명이다. 메리츠증권에 따르면 SKI의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이 지속 증가해 오는 2022년 3분기부터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SKI가 매출에 비례한 로열티 비용으로 1조원을 지급할 계획인 점도 뜯어볼 만하다. SKI가 1조원을 줘도 될 만큼의 상당한 성장세를 자신하고, 경쟁사인 LG엔솔도 이를 인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어서다. SKI의 작년 배터리 사업 매출액은 1조6102억원으로 처음으로 조 단위를 넘었다.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하고 있는 배터리 공장에는 최대 5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신한금융투자는 SKI의 배터리 생산에서 미국 공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오는 2023년 25%가 될 것으로 관측했다.
유럽 시장을 통한 성장도 관심이다. SKI는 유럽 전기차 배터리 시장 거점으로 헝가리 법인(SKBH)를 가동중이다. 지난 3월 공개된 SKI 사업보고서를 보면, SKBH의 2020년 영업이익은 6억9000만원으로 2019년(195억원 손실) 대비 흑자전환했다. 같은 기간 매출액은 17억원에서 3572억원으로 급증했다. 헝가리 제2공장의 양산 시작 시점은 2022년 1분기부터인데, 제3공장도 올 3분기 착공을 시작할 예정이다. 3공장에는 2조6000억원이 추가로 투자된다.
재원은 부실 사업을 매각해 마련하고 있다. 지난 3월 SKI는 북미 지역 셰일오일 광구 지분 및 설비를 수 천억원에 매각했다. SK아이이테크놀로지의 상장이 성공적이라면 추가 재원도 마련할 수 있다. KB증권은 "올해 SK이노베이션은 SKIET(SK아이이테크놀로지 IPO(기업공개, 상장)와 SK루브리컨츠 지분 매각 등을 통해 2조원 내외 현금 유입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 '열린 시장의 적들'
다만 양사는 다년간 소송을 진행하는 사이 급성장한 중국 배터리 업체들과 새롭게 등장한 경쟁사들의 도전에도 직면했다. 실제로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2월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선 중국 CATL이 1위였다. LG엔솔은 2위, 삼성SDI와 SKI는 각각 5위와 6위였다. 국내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계 사업자들이 세계 최대 규모의 내수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했다"고 평가하지만, 중국 CATL이 폭스바겐과 손잡는 장면을 보면 간단히 평가절하하기 어려운 양상이다.
여기에 더해 완성차들의 변화도 감지된다. 글로벌 전기차 수위를 다투는 테슬라와 폭스바겐이 배터리 자체 생산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특히 폭스바겐은 2030년 말까지 신규 자동차 10대 중 7대를 전기차로 전환하고 배터리 공장 6개도 건설하겠다고 했다. 이같은 움직임의 배경에는 한국과 중국 등 아시아 기업 의존도를 낮추려는 유럽연합(EU)의 의중이 담겼다.
코트라 관계자는 "이런 배경에는 유럽에서 배터리를 생산해 아시아 생산국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유럽연합의 막강한 지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바이든 정부도 배터리 공급망을 점검하고 있다. GTA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이 수입한 전기차 배터리 제품의 43.4%가 중국산이었다. 한국은 19.4% 점유율로 중국에 이어 2위다.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기술력과 글로벌 경쟁력이 향후 사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나, 이번 LG엔솔-SKI 합의가 미국 정부의 우호적 손길로 이어질지도 양사의 앞길에 관건인 이유다.
김동훈 (99re@bizwatc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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