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脫탄소때 더투자"..신한운용 실험에 101개 기업 화답

문지웅 2021. 4. 12.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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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脫탄소 금융 시대 ◆

신한자산운용이 지난해 10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자동차 등 주요 투자 대상기업 242곳에 서신을 보내 탄소배출량과 녹색사업 현황에 대한 정보 제출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화석연료 관련 매출 비중이 25%가 넘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겠다는 서신을 보내면서 환경·책임·투명경영(ESG) 강화 흐름이 확산된 데 이어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도 '한국판 블랙록' 움직임이 처음 포착된 것이다.

신한자산운용 측은 101개 기업에서 회신을 받았으며 주기적으로 ESG 서한을 보내 투자기업의 탄소 감축 등 기후변화 대응 정보를 파악해 실제 투자에 반영할 계획이다. 신한자산운용이 포문을 열면서 연기금과 대형 자산운용사들의 기업에 대한 ESG 정보공개 요구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12일 매일경제가 단독 입수한 '기후 관련 재무정보 공시 협의체(TCFD) 권고안에 따른 주주 서한'에서 신한자산운용은 이번 서신이 단순한 정보 파악용이 아님을 분명히 했다. 이창구 신한자산운용 대표는 "질의서를 통해 얻게 되는 정보로 운용 자산의 기후 리스크를 파악하고 자산 운용 전반에 기후변화 요소를 반영할 예정"이라며 "주주 서한에 적극적으로 응답하고 향후 경영정책에 탄소 감축 노력을 반영하는 기업에 대한 투자는 더욱 늘리고 기후문제에 전혀 대응하지 않는 기업의 투자 비중은 차츰 줄여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기후 리스크에 대처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시장 평가는 시간이 갈수록 더욱 회의적으로 변하고 자본비용은 증가하게 되지만 투명성을 높이고 이해관계자 요구를 만족시킨 기업은 장기 자본이 유입되는 긍정적인 기회를 맞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신한자산운용은 이번에 확보한 자료와 기존 데이터를 종합해 모든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에 적용할 계획이다. 일정 ESG 등급 이상 기업에만 펀드 투자가 이뤄지도록 최근 내부 투자지침도 개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독] 투자 70%는 ESG 실천 기업으로…'한국판 블랙록' 떴다

63조 굴리는 신한운용, 242개 기업에 녹색경영 서신

신한운용, 3개부문 12개 질문
삼성전자·SK하이닉스·현대차
상위 20개 기업의 55% '응답'
국내 자산운용사로 첫 사례

美·日 등 세계 각국 연기금들
탄소중립 선언에 기업들 동참

선택적 촉매환원(SCR) 소결기 설비가 설치된 포스코 포항제철소.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종전보다 최대 80%까지 줄어들 것으로 기대된다. 포스코는 친환경 제철소 구축에 나서는 등 환경·책임·투명경영(ESG)에 주력하고 있다. [매경DB]
63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신한자산운용이 242개 투자기업에 서신을 보내 탄소배출량과 배출량 감축 목표, 저탄소·친환경 사업 현황 등 파악에 나선 것은 세계적인 환경·책임·투명경영(ESG) 투자 강화 기조를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 이창구 신한자산운용 대표는 "온실가스 배출 등 기후변화 관련 문제를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는 체계가 어느 정도 갖춰져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며 서신을 발송한 배경을 설명했다. 박준석 신한운용 팀장은 "질의서는 3개 부문 12개 질문으로 구성되는데 기대보다 훨씬 많은 기업(101곳·42%)이 구체적으로 응답해 놀랐다"며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을 관리하는 83개 기업 중 82개 기업이 배출량 데이터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신한운용 투자 규모가 많은 상위 20곳의 응답률은 55%로 평균보다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네이버 카카오 셀트리온 한국금융지주 등 시가총액 상위 기업들이 신한운용 질의서에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영훈 신한운용 주식리서치팀 팀장은 "기후 리스크에 대처하지 않는 기업에 대한 시장 평가는 갈수록 회의적으로 변할 것"이라면서 "온실가스 다배출 기업이면서 감축 목표가 없고 녹색사업을 확대하지 않는 기업의 경우 기업가치가 하락할 수 있으며 투자 대상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달부터 신한운용은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포트폴리오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ESG 등급을 확보한 기업 비중이 70%가 넘도록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고 팀장은 "기준에 미달한 등급을 가진 A기업이 포트폴리오에 담기면서 70%에 미달할 경우 A기업 주식을 팔아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며 "일부 펀드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공모펀드 전체에 ESG 투자 기준을 적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규모 자금을 집행하는 각국 정부와 연기금, 국부펀드 등의 관심은 추상적인 사회적책임(S)과 지배구조(G)보다 구체적인 수치로 재무제표에 반영할 수 있는 환경(E)에 모아지고 있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과 뱅가드는 2050년까지 포트폴리오 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면서 '탄소중립 자산운용사 이니셔티브' 참여를 선언했다. 이 모임에 참여하는 운용사는 피델리티, UBS 등 세계 73개사로 운용 자산 규모는 무려 32조달러에 이른다.

기업의 기후 리스크는 구체적인 공시를 통해 확인하는 방법이 마련되고 있다. 2015년 12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의 위임을 받은 금융안정위원회(FSB)는 '기후 관련 재무공시 협의체(TCFD)'를 만들었고, 2017년 6월 공시 가이드라인(권고안)을 마련해 발표했다. 현재 78개국에서 1900개 이상의 정부부처, 금융회사, 민간기업 등이 TCFD에 참여하고 있다. 2018년 9월 신한금융지주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TCFD 지지 선언을 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3월 국내 제조업체 중에는 처음 TCFD 참여를 선언했다. 신한운용은 지난해 9월 국내 종합자산운용사 중 처음으로 TCFD에 동참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TCFD 권고안은 환경 정보 관련 국제표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약 4000억달러의 자금을 운용하는 미국 캘리포니아공무원연금(CalPERS)은 TCFD는 물론 '탄소중립 연합'에 가입해 활동하며 2025년까지 탄소배출 기업 포트폴리오를 최소 16%, 최대 25% 감축할 계획이다. 1800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 연기금인 일본 GPIF는 2018년 12월 TCFD 참여 선언을 했으며, 도요타·소니·파나소닉·닛산·미쓰비시 등 일본 주요 기업 370곳이 TCFD에 가입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투자 대상에서 제외될까봐 많은 기업들이 신한운용 질의서에 회신을 한 것 같다"며 "일본 기업들이 줄줄이 TCFD에 동참한 이유도 GPIF 투자 리스트에서 배제될 경우 심각한 경영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850조원의 자금을 운용하는 국민연금은 내년까지 전체 투자자산의 50%에 대해 ESG 기준을 반영할 계획이다. 국민연금은 아직 TCFD에 가입하지 않았는데, 만약 TCFD에 가입할 경우 투자 기업과 자금을 위탁한 자산운용사들에 대해 친환경·저탄소 요구를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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