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칼럼] 한전공대가 '정치공대'인 이유

송기영 기자 2021. 4. 12.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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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지역 홀대론’과 ‘지역균형 발전’, ‘인재 육성’ 등은 전형적인 정치 수사(修辭)다. 선거철만 되면 전 국토가 홀대받았다고 아우성이고, 지역 균형발전이 필요하다며 수조원의 예산을 달라고 한다. 여기에 지역 인재 육성을 덧칠하면 그럴싸한 선거 공약이 된다.

이런 정치 수사가 범벅된 정책이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설립하는 한전공대다. 정책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어느 하나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이 없다. 설립 목적부터 불온(不穩)하다. 한전공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다. 세계적인 에너지 특화 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이 설립취지지만, 그 속을 들여다 보면 정치색이 다분하다.

한전공대는 특정지역을 고려한 사실상 특혜 정책이다. 대전에는 카이스트(KAIST), 포항에는 포스텍(PosTech)과 같은 지역기반 특성화 대학이 있는데 호남에는 이런 대학이 없다는 논리에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이 한전공대를 호남 대표 공약으로 내건 이유다.

정책 수립 과정은 부실 투성이다. 인구 감소로 기존 대학 정원의 25%를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분석이 나오는데, 타당성 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주무부처인 교육부는 ‘패싱’ 논란이 있다. 현재 한전공대 부지는 건물 하나 없는 ‘허허벌판’이다. 그런데 내년 3월 신입생을 받겠다고 한다. 보통 대학을 설립하는데 82개월이 걸린다. 한전공대특별법은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했다. 법안 통과 1년만에 건물도 없는 대학이 신입생을 받겠다니, 같은 해 5월 열리는 대선을 노리고 개교를 강행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다.

국회 처리 과정도 졸속이다. 국민의힘은 그동안 지방대학의 정원 감소와 특정 지역 특혜, 한전 부채 급증 등을 이유로 한전공대 설립에 반대했다. 그런데 올들어 갑자기 여야가 합심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일부 야당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있었지만 묵살됐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민의힘도 호남 표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부산에 ‘가덕도 신공항’이 있다면 호남에는 ‘한전공대’가 있다"는 말이 정치권에서 나왔다.

무엇보다 국민이 부담해야 할 한전공대 설립·운영비가 가장 큰 문제다. 2031년까지 한전공대에 소요되는 비용 1조6000억원 가운데 1조원 가량을 한전과 5개 발전자회사가 부담한다. 한전은 재무상태가 양호한 공기업이 아니다. 지난해 말 기준 누적부채는 142조4753억원, 부채비율은 187%에 달한다. 부채비율은 2018년 160%에서 2년만에 27%포인트(P)가 뛰었다. 이런 수준이 계속된다면 2~3년 내에 부채비율이 200%를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금융당국은 기업 부채비율이 200%를 넘으면 부실위험 기업으로 분류한다.

산하 5개 발전공기업은 더 심각하다. 이들 기업은 지난해 2848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기록했다. 흑자를 낸 기업은 한 곳도 없었다. 문재인 정부가 탈석탄 정책을 펼치며 값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을 늘린 탓이다. 이들 발전 자회사는 올해도 1조원 가량의 손실을 기록할 것으로 자체 추산하고 있다.

결국 한전은 한전공대에 소요되는 비용을 전기요금 인상으로 충당할 가능성이 높다. 나머지 운영비를 한전공대가 자체 충당하는 것도 아니다. 이 비용은 정부가 전기요금에서 3.7%씩을 떼어내 마련하는 전력산업기반기금에서 나간다. 결국 국민 주머니를 털어 호남에 대학을 설립해주는 꼴이다.

이렇게 설립된 대학이 정상적으로 운영될지 미지수다. 한전공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외풍에 시달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몇년 후 ‘부모 찬스’, ‘지인 찬스’로 입학하는 사례들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 대학의 부실이 한전과 발전 공기업으로 옮겨붙을지도 모른다. 그땐 책임질 사람들이 이미 떠난 후일 것이다. 경제 논리가 배제된 포퓰리즘 정책의 처참한 말로를 우리는 너무 많이 봐왔다.

[송기영 재계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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