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 생일날 미국은 '대북전단' 청문회..김정은 선택은?

김경진 2021. 4. 1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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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가 현지시각 15일 대북전단금지법과 관련한 화상 청문회를 개최합니다. 우리 정부가 대북전단금지법 입법 취지를 설명하며, 어떻게든 개최를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열리게 됐습니다.

미국 의회가 한국 인권 문제로 청문회를 여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화상으로 열리는 이번 청문회는 전 세계에 온라인으로 생중계될 예정입니다.

회의가 열리는 15일은 북한에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이기도 합니다.

미국 하원 의회 산하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


■ 미국 의회가 갑자기 왜?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는 2008년부터 활동한 미국 하원 산하 조직입니다. 소속 정당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는 초당적 기구입니다. 이 위원회는 홀로코스트 피해자인 톰 랜토스 전 미 하원의원을 기리기 위해 이름이 붙여졌으며, 전 세계 인권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러시아, 중국, 아이티 등의 인권을 다뤘는데, 한국이 대상이 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번 청문회의 주제는 '한국의 시민적, 정치적 권리 : 한반도 인권에 대한 시사점'입니다. 한국의 대북전단금지법이 '시민,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을 침해했는지, 침해했다면 최소한의 범위에서 침해된 것인지를 살펴보겠다는 취지입니다.

대북전단금지법은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을 개정한 것으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대북확성기 방송과 전단 등 살포 행위에 대해 최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 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정부는 접경지역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지만, 자유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계속 제기돼왔습니다.

위원회는 홈페이지에 올린 청문회 공지에서 "대북전단 금지법에 대해 일부 관찰자들은 이 법이 외부 세계 정부가 담긴 USB 보급과 같은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포함해, 북한 내 인권 증진 노력을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 부의장


■ "미국 강경파의 불순한 의도로 청문회 개최"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주평통 수석 부의장은 오늘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미국 의회에서 (대북전단금지법으로) 청문회를 연다는 것은 일종의 내정간섭이라고 본다"며 "미국이 아무리 큰 나라지만 미국 의회에서 뭐든지 할 수 있다 하는 것은 착각이라 생각한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정 부의장은 이번 청문회에 숨겨진 '의도'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정 부의장은 "4월 15일은 또 절묘하게도 김일성 생일인데, 일부러 그 날을 맞춘 것 같다"며 "북한을 자극하고,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그런 절묘한 시점에 이 행사를 한다는 것은 조금 의도가 불순하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공화당과 대북 강경파들의 입김이 작용해 북한 태양절에 맞춰 청문회가 열리는 것이고, 이를 통해 대북 강경파들이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는 겁니다.

정 부의장은 "(위원회가) 세미나 수준이지만, 이 민감한 시기에 그런 일을 벌여 놓으면 미국 정부의 대북 정책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목"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이번 청문회는 톰 랜토스 인권위 위원장인 공화당 소속 크리스 스미스 하원의원이 나서서 개최가 확정됐습니다.

또 청문회에는 대북 강경파로 평가받는 이들이 증인으로 채택됐습니다. 동북아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와 존 시프턴 휴먼라이츠워치 아시아인권옹호국장, 수잔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 워싱턴 퀸시연구소의 제시카 리 선임연구원, 주러시아 대사를 지낸 이인호 서울대 교수 등입니다.


■ 정부,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정부는 외교부와 주미대사관을 중심으로 이번 청문회가 열리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법률의 입법 취지를 미국 내 각계각층에 설명하고, 남북 관계의 특수성 등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청문회는 열리게 됐습니다. 일각에서는 미국 국무부가 청문회 개최를 적극적으로 만류하지 않은 것이라며, 이번 청문회는 인권을 강조하는 미국 정부의 기조와 같이 가는 것이란 분석도 내놓고 있습니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는 앞으로도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와의 소통을 더욱 강화함으로써 법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구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청문회 개최가 공지된 마당에 마땅한 대책은 없는 상태입니다.

통일부는 애써 청문회의 가치를 평가절하하기도 했습니다. 통일부 차덕철 부대변인은 지난 9일 정례 브리핑에서 "랜토스 인권위원회 청문회는 의결 권한이 없는 등 국내 청문회와 성격이 다르고 정책 연구 모임 성격에 가깝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랜토스 위원회 위상이 그렇게 낮지 않다는 게 중론입니다.

베르타 코언 전 미 국무부 인권담당 부차관보는 지난 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부통령 시절, 2008년 세상을 떠난 톰 랜토스 전 하원의원에 헌사를 보내 랜토스 의원을 가족처럼 여겼다는 점을 강조해왔다"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인권위원회의 권고사항을 주목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로버트 킹 전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지난 9일 같은 방송에서 "톰 랜토스 인권위에서 다뤄지는 문제는 의회 뿐 아니라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다"며 "이번 청문회는 대북전단금지법과 해당 사안에 대한 우려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기회가 될 것이고, 이는 향후 또 다른 논의나 행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통일부가 랜토스 위원회의 성격을 평가절하한 것을 두고 반발이 나오자, 통일부 이종주 대변인은 오늘(12일) 정례브리핑에서 "통일부 부대변인 발언은 정부의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습니다.

지난해 6월, 북한이 대북전단을 문제 삼아 폭파한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 대북전단 반발했던 북한의 도발 가능성

랜토스 위원회가 다루는 건 한국의 입법이지만, 이 움직임이 북한을 자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애초에 북한이 대북전단에 강하게 반발하고 으름장을 놓아서 우리 정부가 만든 게 대북전단금지법입니다.

북한은 지난해 6월 대북전단 살포를 이유로 개성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습니다. 이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우리 정부를 향해, 대북전단 살포를 저지할 법이라도 만들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우리 정부는 접경지역 주민들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끊임없이 '김여정 하명법'이란 지적이 나오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한국의 '대북전단특별법' 문제가 거론되면서 자연스럽게 북한 인권 상황이 논의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청문회가 열리는 날은 북한이 명절로 지정한 김일성 생일, 태양절입니다. 북한이 불쾌감을 표출하거나 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랜토스 위원회 청문회는 앞으로 바이든 행정부가 밀어붙일 '북한 인권' 의제 설정의 첫발이 되는 셈인데, 우리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김경진 기자 (kj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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