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AI 법률사무소](15)자율주행AI와 도로교통법의 미래
20세기 인류에 많은 피해를 야기한 살인마를 꼽으면 전쟁, 전염병, 화산폭발을 들 수 있다. 그것뿐일까. 경찰청이 지난 2월 24일 발표한 교통사고 사망자는 매년 줄고 있어도 지난 한 해에만 3079명이었다.
18세기 유럽의 교통수단은 말(馬)이었다. 말(馬)이 많아지면서 사람의 말(言)도 많아졌다. 말 소음과 배설물 악취를 견디기가 어려웠다. 마차 수가 늘면서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많았고, 사고를 보고 겁먹은 말이 또 사고를 냈다. 사고를 줄이기 위해 사람이 다니는 길(人道)을 따로 만들었다. 도로교통법 개편은 안전사고를 줄여 나갔다.
자동차가 말을 대체했다. 그러나 말에 비해 불편하고 위험하다며 반대가 컸다. 운전자가 핸들을 잡은 채 계속 앞과 옆을 봐야 하고, 기름을 넣어야 하며,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자동차는 교통·운송·물류 혁신을 주도했고, 사람의 생활방식과 산업구조를 바꿨다.
마차 시대가 끝난 것처럼 자동차 시대도 막을 내린다. 자동차 스스로 운행하는 자율주행 시대다. 2019년 4월 자율주행자동차 상용화촉진 및 지원법이 제정됐다. 운행 최적화를 위해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도로교통법은 교통신호기·안전표지 등 교통안전시설, 자동차의 통행방법, 운전자 의무 등을 정한다. 자율주행 기술발전, 통신시스템 개선, 일반자동차 감소, 도로 등 인프라 개선 정도에 단계별 영향을 받는다. 미국자동차공학회는 자율주행을 조향·가속·감속, 주행환경 주시, 비상 대처를 기준으로 5단계 구분을 했다. 5단계가 완전 자율주행이다. 신속·정확·안전한 자율주행을 위해 차량 간, 차량과 관제시설 간, 차량과 주위 건물 또는 보행자 간 통신도 중요하다. 일정 기간 자율주행차와 일반자동차가 공존한다. 최적 경로로 움직이는 자율주행 특성상 전체 차량이 줄되 전국 어디든 갈 수 있게 된다.
궁금하다. 미래 도로교통법에서 책임 주체인 운전자는 누가 되는가. 에어컨·오디오 조작을 하는 것만으로 운전자가 될 수 없다. 이동경로 관리, 비상대처의무 수행 등 주요 자율주행 과정을 지배한다면 운전대를 놓고 있더라도 운전자다. 운전자가 반드시 1인일 필요도 없다. 논란을 피하기 위해 운전자를 미리 확정해 두는 것이 좋다. 차량 외부의 관제시스템이 자율주행을 통제하고 탑승자가 단순 승객이라면 관제시스템 운용법인이 운전자다. 화물운송 등 무인차량도 마찬가지다.
음주운전은 가능할까. 주요 자율주행 과정을 지배·관여한다면 안전을 위해 허용할 수 없다. 승객은 술을 마셔도 될까. 취한 상태에서 차량에 물리적 가해 행위를 한다면 안전운행을 방해하게 된다. 차량 안에서 마시는 것만큼은 권하고 싶지 않다.
난폭운전은 어떤가. 차량, 탑승자에게 위협을 가하기 때문에 계속 금지하자. 속도 제한은 교통 흐름을 봐서 현재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중앙선 침범은 가능할까. 비상시 중앙선 침범을 할 수 있게 AI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을 탓할 수 없다. 앞지르기, 끼어들기는 어떨까. 차량통신으로 해결하면 좋겠는데 그래도 괘씸하다. 사고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다수를 위해 소수를 희생시킬 수 있을까. 골프선수 최경주는 최고의 벙커샷은 벙커로 공을 날리지 않는 샷이라고 했다. 자율주행도 마찬가지다.
최고의 자율주행은 사람의 생명·신체 안전에 위급한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그래도 위급 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할까. 운전자 스스로 자신에게 불리한 결정을 해야 할까. 아니면 상대적으로 작은 피해를 가져오는 선택을 해야 할까. 사람의 가치는 1명이든 100명이든 차이가 없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 보행자는 자율주행을 위해 양보할 것이 있을까. 없다. 새로운 세상이 와도 보행자 안전은 최우선이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AI-지식재산 특별전문위원회 위원장) sangjik.lee@bk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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