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에게까지 '백신 선심' 쓰는 중국..그 속내는 뭘까
오랜 백신불신 풍조 속 접종 더뎌..당국 조바심 속 '강제 접종'도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토요일인 지난 10일, 중국 상하이시 창닝(長寧)구의 대형 종합병원인 퉁런(同仁)병원.
이곳은 상하이시가 운영하는 수십 곳의 외국인 전용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소 중 하나다.
해가 뉘엿한 저녁 무렵인데도 미국, 독일, 일본, 한국 등 다양한 나라 여권을 각자 손에 든 외국인 100여명이 줄을 서 있었다.
중국에서 진행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의 전 과정을 직접 취재해보고자 기자도 이 줄에 합류했다.
주사를 맞으려면 먼저 입구에서 "모든 위험을 온전히 본인 책임으로 하는 것을 승낙합니다"라는 문장으로 끝나는 '승낙서'에 서명을 하고 접종비 100위안(약 1만7천원)을 내야 했다.
접종 구역 안에 들어가니 공장의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듯이 의료진 10여명이 각자 책상에 앉아 바삐 환자들의 팔에 백신 주사를 놓고 있었다.
차례가 되자 간호사가 먼저 기자에게 시노팜(Sinopharm·중국의약) 코로나19 백신 표시가 된 작은 유리병을 들어 보이고는 주사를 놨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백신을 맞은 이후 이틀 동안 별다른 이상 반응을 느끼지는 않았다.
중국에서는 현재 시노팜과 시노백(Sinovac·커싱중웨이)이 개발한 불확성화 백신이 주로 쓰이는데 맞는 사람이 백신 종류를 고를 수는 없다.
중국 정부가 백신 접종을 강력히 밀어붙이면서 이곳의 접종 규모도 최근 들어 대폭 늘어났다.
주사를 맞고 난 뒤 관찰 대기실에서 만난 병원 관계자는 "초기에는 하루 접종자가 수백명 정도였지만 이제는 1천500명으로 늘었다"고 귀띔했다.
"외국인도 중국 백신 맞는다"…자국민에 홍보
중국은 최근 자국 체류 외국인들에게도 코로나19 백신을 제공하면서 적극적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상하이에서 지난달 말 시작된 외국인 접종은 수도 베이징과 저장성, 장쑤성 등 중국 대부분 지역으로 확대됐다.
세계적으로 코로나19 백신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 많은 나라가 자국민에게도 백신을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는 상황이기에 중국이 체류 외국인들에까지 백신 제공에 나선 것이 일견 선심을 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중국의 외국인 백신 제공이 여러 효과를 노린 다목적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대내적으로 중국 당국은 외국인들의 '자발적' 코로나19 백신 접종에 참여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홍보함으로써 자국민들의 백신 신뢰도 제고를 유도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중국 관영언론들은 외국인 백신 접종소 모습을 보도하면서 중국 백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외국인들의 반응을 적극적으로 전하고 있다.
중국은 올해 1월부터 일반 국민들 대상으로 본격적인 코로나19 접종을 시작했다.
그렇지만 국가적인 총동원 체제가 가동 중이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접종률은 다른 나라보다 상대적으로 저조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10일까지 자국 내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1억6천447만회라고 발표했다. 14억 인구 대비 단순 비율로도 11.7% 수준이다.
옥스퍼드대 통계 사이트인 아워월드데이터에 따르면 지난 11일 기준으로 중국에서 1회라도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한 사람의 비율은 11.43%였다. 이는 이스라엘(118.21%), 영국(57.45%), 미국(54.86%), 이탈리아(21.23%) 등보다 크게 낮다.
접종률이 더디게 오르는 현상이 중국의 오랜 백신 불신 풍조와도 관련이 있다는 지적이 많다.
상하이의 관광지인 와이탄(外灘)에서 캐릭터 상점을 운영하는 업체 관계자는 "인파가 많은 곳이라 보건 당국이 작년 말부터 접종을 권했지만 직원들이 부작용을 우려해서 먼저 백신을 맞지 않으려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의 효능에 관한 신뢰도는 여전히 낮은 편이기도 하다.
가오푸(高福) 중국 질병예방통제센터 주임조차 지난 10일 공개 회의에서 "(중국) 백신의 보호율이 높지 않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자국 백신의 효과가 낮다고 공개적으로 인정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14억 인구의 70∼80%에게 백신을 맞혀 집단면역을 달성하려는 중국으로서는 비상이 걸렸다.
당정이 코로나19 백신 접종 '속도전'을 주문한 가운데 중국의 거리 곳곳에 코로나19 백신 접종 참여를 독려하는 붉은 현수막이 나붙는 등 여유롭던 '자율 접종' 분위기는 이미 쑥 들어갔다.
최근엔 일일 백신 접종 건수가 300만회 이상으로 올라갔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접종을 강요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하이난성의 완청진(萬城鎭)은 코로나19 백신을 맞지 않는 주민을 블랙 리스트에 올려 시장과 식당 출입을 못 하게 하고 정부의 각종 서비스를 제공을 끊겠다고 엄포를 놨다가 거센 여론의 비판에 이를 철회하는 일도 벌어졌다.
"중국 백신 맞는 한국인 많아져"…中백신 인정 여부 선택 직면할 수도
중국의 외국인 코로나19 백신 제공을 '백신 외교'의 연장선에서 볼 여지도 있다.
중국산 코로나19 백신은 모두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아직 긴급 사용 승인을 받지 못했다.
현재 부분적으로라도 중국 백신 사용을 인정한 나라는 일대일로 관련국 등 중국과 관계가 밀접한 나라가 대부분이고 서방 선진국은 거의 없는 형편이다.
이에 중국은 자국 백신이 세계적으로 널리 인정받을 수 있도록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주한 대사관을 포함한 주요 해외 외교 공관을 통해 중국산 백신을 접종한 외국인들이 더 손쉽게 자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게 해 주겠다고 발표했다.
한국 등 많은 나라가 중국산 백신 사용 승인을 하지 않은 터여서 당시 중국의 이런 행동이 자국 백신의 사용 승인을 우회적으로 촉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런 가운데 중국 현지에서 외국인들이 중국산 백신을 다수 맞으면 향후 이들이 속한 국가들이 중국산 백신의 효과를 인정해야 할 것인지를 두고 선택의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체류 한국인은 10만명 이상으로 중국 내 외국인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크다. 개인이 각자 신청하는 방식이어서 구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현지 교민사회는 올해 많게는 수만명에 달하는 한국 교민이 중국 정부가 제공하는 백신을 맞을 수 있다고 본다.
더욱이 중국은 최근 한중 외교장관 회담 등을 통해 인적 교류가 특히 많은 한국과 백신 여권 상호 인증 등에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한국인을 비롯한 중국 체류 외국인들이 중국산 백신 접종을 하려는 가장 큰 이유는 장차 출입국 과정에서 편의를 받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이 가장 크다.
중국은 '코로나19 외부 유입'을 막는다면서 현재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입국자 격리 정책을 펴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많은 중국 교민들이 코로나19 발생 이후 단 한 차례도 사업이나 친지 방문 등 목적으로 중국을 떠나지 못하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부터 '백신 여권'을 공개적으로 추진하면서 장차 자국산 백신을 맞은 사람에 한해 격리를 완화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상하이의 한 한국 기업 주재원은 "수십명의 한국 주재원들이 순차적으로 모두 코로나19 백신을 맞고 있는 중"이라며 "솔직히 말하자면 코로나 예방 효과보다는 출장과 고국 방문 등 출입국 편리가 있기를 더욱 크게 기대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이준용 상하이 한국상회 회장도 "한국에서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길이 없는 상황에서 교민들이 중국산 백신을 맞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지고 있다"며 "백신 여권 시행에 따라 왕래가 조금이나마 자유로워질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맞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고 밝혔다.
중국의 한 외교 소식통은 "최근 중국 당국이 인원이 많은 외국 기업에도 백신 접종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는데 강제라고 말할 순 없지만 단순 권고 이상의 느낌으로 파악된다"며 "중국 체류 경험이 오래된 외국인들은 이곳의 체제 특성상 결국에는 백신 접종이 의무화되다시피 할 것으로 생각해 중국산 백신을 맞는 경우도 많다"고 전했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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